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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무엇을할것인가

무료함

by 큰바위얼굴. 2021. 5. 13.

무료하다 못해 지루하다. 일상은 뻔하고 뻔한 가운데 여럿 '그만' 둔다는 얘기가 쏠쏠한 재미(?)가 있긴 하지만, 그 정도로는 일상의 지루함을 지우기는 한참 멀었다. 따분하기도 하다. 땀땀을 뻘뻘 흘릴 차 뜨거운 태양을 욕한다. 너무 뜨겁다고. 스쳐지나가는 굴다리 그늘에서 시원함을 느낀다. 너무 짧다. 다시 지글지글 끓어오르는 듯 아지렁이가 일렁이는 길에 내 딛는다. '개미의 일생'이 그러했을까? 고추했던 수 많은 사념들이 그러했을까? 마주친 채소들의 쑥쑥 큰 모습은 내게 싱그러움으로 다가온다. 한참 보면서 걷는다.

 

책을 펼쳐든다. 아, 하품이 나온다.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분명 재밌을 거 같은데 기분이 나지 않는다. 책 조차 나를 외면한다. 아니, 내가 외면한 걸까?

 

팟빵을 듣는다. 이진우의 손에 잡히는 경제를 듣는다. 굿모닝뉴스 이명희 입니다를 듣는다. 그때 뿐이다. 나랑 무슨 상관이랴. 뉴스조차 재미가 없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조차 나를 잡아당기지 못한다.

 

선택을 한다. 놀이도 이만한 게 없을 거다. 선택에 따라 잃기도 하고 따기도 한다. 근데 이제 없다. 벌써!

도대체 뭘 한 거지? 다 갖기라도 하겠다는 거냐? 하다보면 갖다보면 어느새 내 손엔 남은 게 없다.

 

삼선짬뽕을 먹는다. 정말 오랜 만이다. 맛있다. 국물도. 건데기도. 모두 맛있다. 땀이 흘러내린다. 계속 휴지로 땀을 훔쳐도 계속 흘러내린다. 건데기를 싹 다 비우니 대화의 끝이 보인다. "그래서, 혼자 여행한다는 기분이 뭔데?" 혼자 산다는 게 뭔데? 혼자 뭔가를 한다는 걸 잊은 나는 그 기분이 궁금하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충주에서 동네를 돌고돌 일이 아니라면 탄금대라도 가고 찾아다녀도 충분할 것을, 어찌 이리 궁상일까? 가봐야 숙소와 일터, 그리고 동네가 전부다. 단조롭다. 무료할 수 밖에 없다. 

 

한 잔의 술이 생각난다. 다만, 입술이 바싹 마른지 며칠 되어 자제하고 있다. 고순도의 술 때문인지 알았는데 불연듯 그게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의 기운을 빼앗으면 이럴까 하는 거, 그런데 빼앗는 건 지구? 아니면 지구조차 기운을 우주에게 빼앗기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뭐 그런저런 쓰잘데 없는 사념들.

 

무료해서 쓴다. 타이핑을 친다. 언제까지 키보드를 두드릴까 마는 끝나는 날까지 난 이 맛에 살련다.. 할까? 설마. 가장 먼저 버리겠지. 더 편한 걸 찾아서.. 아마! 이젠 심지어 산책길에서 혼자 주저리주저리 떠드는 것이 익숙해졌기 때문일까 뭔가를 친다기 보다는 뭔가를 말하면 입력되는 걸 바란다. 그리고 대화의 주체가 A.I.이길 기대한다. 난 말하고 A.I.는 실행하는 그런 관계. 물론 모두 A.I.가 다 해줄 수도 있겠지만 그럼, 너무 너무 따분하고 지루해서 미칠 지도 모를 일이니 기대치 말자. A.I.는 딱 그 만큼만 내게 이로울 그 만큼만! 나머지 선택이라거나 결정이라거나 혹은 함께 고민했다거나 그런 거는 남겨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무료하다 못해 지루하다고 쓴 글이 몇 분째 지나가고 있는데, 갑자기 "여보, 우린 큰 모험을 하진 말자. 알았지? 이젠 지키는 게 더 중한 일인거여." 한 말에 "당근." 이란 대화가 떠오른다.

 

무료하다 못해 지루하고 따분한 지금, 모험을 찾아 책목록을 쓱싹 넘기고 넘겨봐도 내 기대에 차는 건 보이질 않아 (정말 내가 써야 하는 건 아니겠지..) 팟빵에서 뮤직팟을 틀고 귀에 꽂아 조금이나마 리듬에 맞춰봐.

 

오늘은 목요일, 곧 퇴근. 밥그릇, 반찬그릇을 챙기고 빨래감도 챙기고 머리 가려울 때 바르는 것도 꼭 챙기고 그러면 저녁. 창문을 열어 내 몸의 열기를 식힐 테고, 추위를 느끼는 순간 얼릉 닫아 걸고 맨 몸에 빈둥빈둥 뒹굴뒹굴 하겠지. 뒹굴거리다가 뒤룩 거리는 몸매가 걱정되는 찰라 벌떡 일어나 푸쉬업을 하겠지.. 아마!

푸쉬업 숫자가 곧 내 남은 수명이다. 라는 생각으로 헉! 아직 30개도 충분히 하지 못하는데 그런 생각 저런 생각하면서 잡생각이 많아지고 그러다보면 스무개 중반쯤 아 이젠 더이상 하기 보다는 뒹굴구 싶어지지.

물을 벌컥벌컥 마시고 소화는 알아서 하는 걸루 하고 다시 누워 빈둥거린다. 내곁엔 없다.

슬퍼. 생각지 않으려 해. 외면했던 감정들이 밤 공기의 차가움 때문인지 두렵게 되면 두꺼운 이불을 똘똘 말아 몸을 덥히지. 일상은 치열하지 않아도 돼? 맞어. 일상은 일상일 뿐. 어디로 가는지 돈 버는 게 목적인지 이 또한 지나가는 세월인지 그런 거지 뭐 해야 하는지 아니면 오늘 궁상맞게 계속 젊은 직원에게 물었던 것처럼 혼자 사는 건 어떤 기분이지? 혼자 좋은가? 혼자 여행하면 어떤 기분이지? 결국, 뭐가 다를까 마는 하는 뭐 그런 척 할 수는 있겠는데 잘 모르겠다. 혼자라. 업을 버린. 업을 찾는. 막상 좌충우돌 하지 않고 일상이 무료하다 못해 지루하다. 돌아간 주거지는 또 다시 반복일 뿐 새로움은 없다. 없다고 본다. 없는 건 아닌데 뭘 기대하는 걸까? 자극적인거? 내 기분에 딱 맞춘거? 혹시 영화? 아님, 여행? 글쎄. 딱히 그건 아닌 듯해. 돈? 플레이가 즐거우면 그 뿐이지 벌면 뭐하나 싶다. 쓸 걸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여전히 벌 생각만 가득하다. 언제까지 벌어야 할까? 혹시 죽는 순간 멈출까? 죽은 후에도 계속 벌어야 하는 건 아니겠지..

 

일상은 무료하다 못해 지루해. 따분해서 기지개를 켠다. 팔을 하늘로 곧게 뻗어 팽팽하게 구부리면서 몸에 힘을 넣는다. 우두둑 뼈들이 펴지고 시원해진다. 이 맛이지. 목이 묵직해서 거꾸리를 찾고 있는 지금, 다른 어떤 것 보다 시급한 일이 되었다. 관조코자 하나 관조하도록 두지 않는 자극적인 일들이 즐비하다. 어쩌면 일상과 멀어지게 하는 것이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 책에서 들려주는 이야기에 빠지다 보면 나만 좋아하는 건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이 든다. 더구나 듣고 보고 느끼는 거의 대부분이 모두 내게 향해 있으니 막상 일상이 무료하다 못해 지루하고 따분하다고 하는 지금, 난 찾지 않는다. 

 

나 또한 이미 다르지 않다. 귀찮은지 불편한지 신경쓰기 싫은건지 몰라도 혼자가 편하다는 걸 잘 안다. 그런 내가 계속 "혼자인게 좋아?"라고 묻는 건 실례인 듯하다. 난 뭐 랬더라? 홀로 살아가는 중에 만나 함께 하는 거라구 했던 걸 실천하고 있는 것일까? 일상이 행복이도록 가족을 그리워 하고 생각하면서 쓴 많은 글들이 내게 축적된 기쁨을 주고 있듯이 삶의 가치는 멀리 있지 않음을 자각했음을, 그래서 행복하다고 말하고 있음을 알면서 투정 부리듯이 행복하다 못해 지루하다고 말한다. 이 말이 내게 위로가 아닌 거짓이 아니길 바란다. 켜켜이 쌓여 추억이 되고 그리움이 되는 인생처럼, 마치 'UP'이란 영화의 첫 5분만에 눈물이 흘러내렸듯이 살아 뭐하게? 라는 물음에 대한 답은 잘 알고 있다. 내 죽은 다음... 살아생전 이런저런 기분과 마음 또한 삶의 모습이겠지. 고마워 하고 감사하고 칭찬하고 격려하고 위로하고 격려하고 그런 일련의 일들이 이어지면 족하다는 걸. 그래서 결론이 뭐야?

 

단디 먹어라. 일상이 반복되더라도 변화와 새로움은 내 마음에 달렸으니 필요하다면 마시고 먹고 돌고 가고 하면 된다. 마치 연애하는 그 때처럼. 너무 생각지 마. 그냥 해. 마음이 이끄는 대로 해. 사고 싶으면 사고 팔고 싶으면 팔고 함께 하면서 만들어 가면 충분해. 쫌 비우고 쫌 채우고 그럼 족해!!

 

퇴근 시간이 넘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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