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11시까지 공부해도 행복해지지 않는 (교육현실)
교육의 미래를 묻는다] "한국 학교, 학부모들 의식 변화 못 따라가… 교육현장의 革新 시급"
조선일보 2015.5.20
김용(55) 세계은행 총재는 그동안 '교육'에 큰 관심을 보여왔다. 세계교육포럼 참석차 방한한 김 총재와 지영석 엘스비어 회장이 지난 18일 만나 한국 교육과 미래 교육을 주제로 대담했다. 지 회장은 현재 교육부 산하 '미래교육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한국 교육의 문제와 비전
▲김용 총재(이하 김)=한국은 구두닦이도 서울대에 갈 수 있는 나라라고 본다. 한국에서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접근성은 매우 좋다. 선생님들의 수준이 매우 뛰어나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에 비하면 가난한 학생들도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전 세계 모든 나라에서 교육은 엄청난 평등 장치(equalizer)라고 생각한다. '결과의 평등'이 아니라 '기회의 균등'을 만들자는 것이다. 세계은행도 모든 국가가 교육에서 기회의 균등을 갖는 것을 중요한 목표로 본다. 다만 한국 상황에서는 좋은 학원에 갈 수 있느냐가 가정 형편에 달려 있고, 여기서 불평등이 발생하고 있다.
김용(왼쪽) 세계은행 총재와 지영석 엘스비어 회장이 지난 18일 오후 인천 송도 쉐라톤호텔에서 한국 교육의 현재와 미래를 주제로 대담을 나눴다. /장련성 객원기자
김용(왼쪽) 세계은행 총재와 지영석 엘스비어 회장이 지난 18일 오후 인천 송도 쉐라톤호텔에서 한국 교육의 현재와 미래를 주제로 대담을 나눴다. /장련성 객원기자
▲지영석 회장(이하 지)=교육은 분명히 평등 장치이고, 사회를 쇄신하는 장치다. 나와 김용 총재 모두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이 혜택을 봤다. 대학 다니면서 장학금을 받고 다녔다. 김 총재 얘기대로, 한국의 공립 교육은 질이 높지만, 교육의 기회균등을 위해 학원에 대한 접근성 문제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학원 안 가고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다면 이걸 왜 신경 쓰겠는가. 한국의 공립 교육 시스템은 학원 없이 사회 쇄신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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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성적, 그러나 행복하지 않은 한국 학생
▲김=삶에서 무언가를 성취하는 데는 두 가지 중요한 요소가 있다. 하나는 타고난 지능인데, 이걸 바꾸는 건 힘들다. 둘째는 의지력, 근성이라고 불리는 것들이다. 한국 학생들은 이걸 갖고 있다. 싸이 같은 가수가 성공한 이유를 보면 훈련 덕분이다. 한국 학생들의 학력이 높은 것도 이 훈련 덕분이다. 하지만 학생 개개인은 행복하지 않다고 한다. 내가 동료한테 '한국 학생들은 8시에 학교 가서 11시까지 공부한다'고 말했더니 동료가 "학교가 오전 11시에 끝난다고?" 하더라. 그래서 내가 "아니. 밤 11시에 끝난다고" 했더니 안 믿더라. 한국 학교 시스템은 어린 친구들에게 너무 힘들다. 이는 개선돼야 한다.
▲지=학생들에게 다양성과 선택 사항을 주면 행복에 대한 생각은 바뀔 수 있을 것이다. 모든 학생이 한 가지 목표를 가지고 달려가는 것이 문제인 것 같다. 경제가 이만큼 성장했으니까 학생들에게 모두 고속도로를 타라고 할 필요는 없다. 학생들이 국도로도 가고, 자전거도 타는 다양한 선택 기회를 가져야 한다.
▲김=이번에 한국에서 열리는 '세계교육포럼'은 15년에 한 번씩 한다. 나는 교육 장관들이 매년 만나면 안 되느냐고 질문해 왔다. 세계교육포럼이 15년 만에 한 번씩 열리는 것은, 교육이 (사회 변화에 맞춰) 빨리 변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교육에서의 혁신은 중요하다.
▲지=지난 2월부터 교육부 '미래교육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한국 교육이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 고민하고 토론 중이다. 기본적으로 우리 학교가 사회에 많이 뒤처져 있는 것 같다. 한국 사회와 학부모들의 의식은 매우 빨리 변하는데, 학교라는 시스템은 예전 그대로다. 그러니 학생과 학부모는 사교육으로 빠져나가고, 일부 학생들은 외국의 교육기관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고교생 80%가 대학 가는 사회
▲김=최근 한국에서 대학 입학 정원을 줄이는 구조조정을 추진하는데 이는 졸업생 취업난과 인구 구성 변화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에 앞서 취업 시장의 현실이 어떤지 정확히 따져봐야 한다. 예를 들어 독일에선 고교 졸업생 40%만 대학 가고 나머지 40%는 기술학교에 간다. 한국은 80%가 대학에 가지만, 대학이 모든 학생을 (산업 현장의) 기준에 맞게 잘 교육시키기 힘들 것 같다. 대졸 취업 시장의 규모가 어디까지인지 잘 살펴보라는 점을 조언하고 싶다.
▲지=대학이 취업 시장과 별개로 운영되면 안 된다. 4년제 대학을 안 나오면 직장에 지원조차 못한다. 지원자의 태도나 적성이 이 일을 잘할지 여부는 잘 안 본다. 우리 사회에서 대학 학위와 취업의 미스매치(불일치)를 없애려면 대학 학위가 없는 데 대한 낙인을 없애야 한다. 요리사나 사진사가 되는데 왜 반드시 4년제 대학을 나와야 하나.
◇교육은 미래 경제의 나침반
▲김=세계은행 총재로서 '교육' 문제에 늘 관심을 기울여 왔다. 사람에게 투자하는 교육은 미래 경제 성장에 엄청난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경제 성장에 관심을 쏟는 중동과 북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사람들이 나와 이야기할 때 첫째로 꺼내는 이슈가 바로 교육이다. 경제성장을 도모하려면, 교육에 투자해야 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김=여러 한국 젊은이를 만나봤는데, 한국 학생들에게 창의성이 없지 않다. 한국 시스템에 창의력이 없다. 왜냐하면, 시스템이 한국 학생들이 목소리 내는 것을 막는다. 내가 25세 때 처음 한국 왔을 때 무조건 "예예예. 그렇습니다" 하는 것만 배웠다. 나이로 젊은 학생들을 억누르는 것이다. 한국 사회의 큰 변화는 어떤 세대가 "우리부터 나이에서 오는 특권을 포기하겠다"고 말할 때 시작될 것이다. 나이와 성(性)에서 오는 특권을 버려야 한다.
▲지=작년에 발생한 '땅콩 회항 사건'도 다 그 문제에서 오는 것이다. 나이나 직책을 기반으로 존경심이 나오는 시스템은 창의성을 억누른다. 엄청난 아이디어가 있고 위험을 무릅쓰려는 마음도 있는데, 이런 시스템에선 그런 것들이 안 나온다. 그게 바로 창조 경제의 핵심이다.
☞김용 세계은행 총재
하버드대에서 의학과 인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하버드 의대 교수를 거쳐 세계보건기구(WHO) 에이즈국장, 다트머스대 총장을 지낸 후 2012년 7월부터 세계은행 총재로 재임 중이다.
☞지영석 엘스비어 회장
교육부 산하 '미래교육특별위원회' 위원장. 프린스턴대 출신으로 랜덤하우스 회장을 지냈고, 현재는 글로벌 출판기업 엘스비어 회장이다. 동양인 최초로 국제출판협회(IPA) 회장직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