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대박
응원한다.
영록아, 힘내~
07:25
충주 대성실업(도축장) 사무실에 출근하여 가스히터를 켜고 환기차 창문을 여니 파리가 망에 붙는다.
이는 본능인가봐. 추위를 피하든 따뜻한 곳을 찾았든
이처럼 세상은 본능처럼 순리대로 흐른다. 파리 또한 본능에 이끌리듯이 사람이라고 다를까!
그런데, 그 흐름을 비틀거나 꺽기 위해서는 그 만한 노력이 수반된다. 나는 충분히 잘했어. 나는 열심히 했어 하는 말은 자신에게 들려주는 메시지이면서 남과 다르지 않은 마음이라고 봐. 옆에 친구가 좌절하거나 우울하면 다가가서 토닥거리면서 "힘내"하는 말이 본능처럼 당연하듯이 나와 다르지 않은 친구들이 많고도 많다. 가깝게는 기숙학원 내에서 멀게는 전국에 많은 경쟁자라고 이름 붙여진 친구들이 있는 것처럼
마치, 세상을 내가 이기겠어 라고 마음 먹는 순간 경쟁자는 생기기 마련이고 그 중에는 적대적 관계를 비롯해서 어쩔 수 없이 반대편에 선 이가 생기기 마련이다. 이는 내가 원해서 라기 보다는 지극히 순리적인 상황인 거지. 난 가만 있었는데 어찌 나를 모함할까? 이처럼 멍청한 자문자답은 없다. 세상에 가만있는 이는 없고 무언가 했으니 흐름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지. 아빠 또한 멍청한 면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지 하나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때문에 시간을 냈다.
우리는 본능처럼, 마치 본능이 이끄는 대로 살아간다. 마치 그래야 하는 것처럼. 때론 그게 진리면서 상황이 무척 호의적인 결과를 만든다. 마치 멋모르고 살았는데 지금의 나처럼 말이지.^^
모르는 것이 답인 경우가 있고, 잘 하기 위해 만들어 낸 결과가 답인 경우가 있는데 어떤 경우의 수를 선택할래?
사람은 항시 긴장할 수 없고 긴장한 채 살아갈 수는 없어. 이는 답이지. 하지만 집중할 때가 있고 긴장을 풀 때가 있고 그 상황이 반복되면서 삶이 이어지지. 그 속에서 자기절제나 자기극복이란 말처럼 자신을 돌아보는 말이 항상 따라붙는다.
오늘의 주제가 본능처럼 순리대로 살아간다 라는 걸 아마 이제는 눈치 챘을 꺼야. 누구나 노력은 하고 이 순간에도 엄청난 성과를 만들어 내는 또 다른 이가 있지. 분명히. 내가 아니어도 세상은 흘러가는 것 또한 맞고. 그렇다면 나 란 사람은 어떤 포지션을 취해야 할까? 뭐. 사실 답은 간단해. 즐기면 돼. (즐기면 돼 라는 말을 조금 음미한다)
... (숨을 한 모금 들이킨다)
다만, 즐긴다는 말은 상황을 대하는 태도와 자세에 근접한 말이니 우리가 흔히 말하는 미래지향적이지는 않아 보인다. 마치 미래지향적이어야 한다는 말처럼 우리는 항시 앞을 내다보길 원하고 불안해 하면서 긴장을 하잖아. 지금의 나는 부족해. 그러니 앞을 위해 지금 노력해야 해. 앞은 분명 밝을꺼야. 마치 이렇게 다짐하듯이.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즐기면서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은 기대감은 좀 내려놓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서야. 막연한 기대감은 자신을 힘들게 해. 그냥 넌 최고야. 너를 만나 정말 좋아. 너 만한 놈 보기 어려워. 난 니가 참 좋아. 라는 말을 자신에게 들려주면 족하다고 봐. 앞은 그냥 앞일 뿐이거든
지금까지의 굴곡이 언덕으로 비유되든 큰 산에 비유되든 그건 자신이 정한 테두리 안에 있듯이 가장 중요한 건 큰 마음을 먹는 거다. 자신을 믿고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을 아끼는 거지. 세상에 실패는 없지. 만족하지 못할 뿐.
학교에 반항(?) 할 때조차 꾸려진 체계 속에 한 번 흔들어 보려 했지만 세상은 내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보질 않잖아. 물론 배운 바가 많고 세상의 꽉 짜여진 판이 단단하지 않음을 알고 있으면서 정답이 아니라는 걸 알았듯이 - 밑줄 쫙. 아빠가 주고자 했던 건 반항이 아니라 세상에 정답은 없다 라는 걸 알았으면 했어. 살아가는 것이지 맞춰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 그러니 기꺼이 자퇴든 반항이든 뭐든 믿고 지켜보는 것이지. ㅎㅎ - 사실 굉장히 쉬운 일이야. 그냥 난 널 믿고 지켜보면 되는 문제거든. 엄마의 걱정도 이해는 가. 평시 대화가 부족하니까. 이건 사실 많이 부족해
다만, 부족한 만큼 믿음이 굳건하다면 믿을 수 있겠어? ^^
굳이 변명하자면, 난 그를 믿어. 이 한 마디로 세상을 살아보고자 했던 마음이 컸던 듯. 그 만큼 최근 상처를 깊게 입었고 지금은 대체로 아물었다고 볼 수 있지만 내가 믿는 세상이 어쩌면 나 만의 착각일 수도 있다 라는 중요한 사실을 알았고, 되돌아 본 삶은 내게 메시지를 던지더만. 니 삶을 살아 라고.
회사는 절대 가치가 아니야. 라는 메시지는 내 삶을 온통 흔들었어. 마치 정체성이 흔들리듯이 공허함 속에 정처없이 1시간 2시간 씩 걷고 또 걸었지. 다행이라고 할까? 슬프다고 해야 할까? 이만큼 성장한 만큼 꼬꾸라지는 데 걸린 시간은 1달도 채 걸리지 않았다는 것이고 물론 이는 그들의 착각이겠지만. 아무튼 내 성장 만큼 굳건히 준 마음이 흔들리니 기준이 없어지더만. 난 그렇지 않다고 하면서도 회사와 회사 일을 무척 좋아했나봐. 애정을 갖고서.
여기에서 들려주고 싶은 건 회사 라는 것 또한 조직이면서 구성원이 있고 그 안에 많은 생각들과 그 생각들이 얽히다보면 흐름은 굴곡을 만들고, 때론 격랑을, 때론 잔잔함을 만들어낸다는 것이고, 그 속에 속하든 속하지 않든 무언가 다른 것을 바라든 그 속에서 최고의 성과를 내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든, 해볼 테면 해도 좋지만 애정을 준 만큼 상처 또한 깊다는 걸 잊지 말았으면 해. 그런데 웃긴 건 너에게 이건 한 참 있어야 하는 일이라는 거야.
물론, 당장 이런 경험을 해볼 수도 있겠고 그걸 바라마지 않지만 아마 현 세상의 시스템에서는 군대도 가야하고 그렇다면 또 미루게 되고 대학이란 걸 다니고 그러면 또 다시 미루고 그 다음 한 6년 정도 후에 맞이하게 되는 세상은 지금 말한 세상이 아닐 꺼야. 물론 사람은 비슷하니 이해갈등과 상호조화는 편 먹고 경쟁하는 모습을 마주하고 뛰어들꺼야. 음. 잠시만.
살짝 벗어났네. (숨을 한 모금 들이킨다. 잠시 쉬고)
우리는 본능처럼, 마치 본능이 이끄는 대로 살아간다. 마치 그래야 하는 것처럼. 이를 부인하지는 말자. 다만, 자신을 아끼자. 자신에게 위로를 주고 자신에게 격려를 하자. 얼마나 불쌍한지 얼마나 굉장한지는 자신에게 대해주는 그 마음에서 비롯된다고 봐. 지금은 딱 하나!
수고했어. 너도 참 고생이다. 라는 말을 들려주자. 자신에게.
그리고, 결과는 그냥 앞으로 있을 수 있는 수많은 결과들 처럼 그저 왔다가 기쁨이나 슬픔을 남기고 사라져 가는 것처럼 받아들이는 태도의 문제이지, 결과는 결코 삶을 좌우하는 기준이 될 수는 없다는 거지. 그걸 이번에 실천했으면 해. 넌 열심히 했고 그거면 되는 거지. 대학을 몇 번에 걸쳐 갈 만큼의 목표는 아니잖아. 삶의 길이 모두 다르듯이. 가는 길, 그 문 또한 모두 다르다. 내 생각이 정답이 아니듯이 마치 만들어졌다는 길을 가지 않고 다른 길을 굳이 선택하듯이 어쩌면 내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것이야 말로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절대명제가 아닐까 해. 일등대학이 아니라.
내 생각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세상은 살아볼 만한거야.
내 생각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세상이 있는 거야.
내 생각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재밌는 거지.
만약 내 생각대로 된다면 그 얼마나 재미없고 식상할까. 그냥 뚝딱 만들어내고 좋았더라 할 껀 아니잖아. 아담과 이브를 만들어 그들에게 맡겼듯이. 뭐 한 번은 개입했지만. 오죽했을까. 그래도 그 개입은 쫌 그래. 아무튼, 그저 조금 큰 눈을 뜨고 조금 큰 마음으로 세상을 대하면 충분하지 않을까?
- 아빠가. 사랑한다. 영록아. 수고했어.
-
스스로 `自`2020.12.02 08:23
"부끄럽게도 난 아빠잖아. 걱정은 하지 않지만 저번 쪼금 성의없던 동영상 때문은 아니구.
그냥 망에 앉은 파리 탓이야 하고 싶군."
카톡 가족방에 올리면서 남긴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