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양/어떻게살것인가

가스 안전점검

큰바위얼굴. 2024. 3. 13. 19:27

"네. 있어요."

집 안에 들어와 띠~ 소리나는 기기를 댄다. 세군데. "이상없습니다."


전주관사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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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옷을 입고 나선다. 무작정. 누워 있어서야.

'허전함. 바탕을 벗어나 갈피를 잃었다.'

컨퓨즈. 온통 혼란스럽다. 이도저도 아니게 되었다. 닥친 건 아닌데 닥칠 일로 보이니 막연함에서 확 와닿은 느낌이다. 불이 밝혀진 거리로, 사람들 보이는 곳으로 돈다. 닭갈비집, 밥스터 커피숍, 고순이감자탕이 눈에 들어온다. 옹기종기. 도란도란. 빠른 발걸음을 멈추진 않는다. 방향을 틀 뿐. 두 여아와 마주한 강아지. 스쳐지나간다. 상념을 남긴다. 아내와 해나, 예티. 만약 이와같이 일터가 사라지고 사랑꾼이 사라지면 난 도대체 뭘 하고 있을까? 지금처럼 수양을 쌓고 있을까? 메마른 가슴, 뛰는 심장. 의욕은 넘치는데 풀 곳이 마땅찮은. 글로 써볼까? 작품을 만들어볼까? 과연 돌고돌아 현재와 같이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면, 더구나 나이조차 들어 나돌아다닐 몸이 아니게 된다면 어찌할까? 맹목적으로 온 힘을 다하여 일생을 바친 사람으로 남게 될까? 치열하지만 동시에 진지하면서 유쾌한 삶을 그리면서도 사랑 주고받는데 익숙치 못한 채 관념적인 삶을 살게 될까? 아쉽다. 딱히 원하는 게 없어 없이 된 상태가 원한 것임에도 반쪽짜리처럼 외롭다 하면 어찌할까? 외로운 것일까? 관심사를 잃고 방황하는 중인가? 관심 둘 그 무엇조차 한계를 느꼈으니 힘이 빠쳐 그런 것일까?

'상실감. 잃어버릴 아픔을 미리 연습하게 하는 힘.'

관심. 옆에 있을 땐 모르다가도 없이 살다보니 간절해지는 강렬함. 서희가 그렇다. 그래서 다행스럽게도 건강하니까. 서로를 바라보니까. 잃는 게 두렵다. 죽음은 인지하고 넘어설 곳으로 받아들이고 있음에도 정작 죽음에 이르는 전 단계에서 허전함을 몹시 느낀다. 무작정 나서기. 그냥 하기. 난 등산을 즐겨하지 않았다. 좋아한다거나 바란 부분이 없다. 그럼에도 돌고도는 거리 보단 낫기 때문인지 산에 관심 주는 순간 돌고 있다. 사진 찍어 보낼 가족카톡방이 있어 다행이라고 여긴다. 홀로 된 내가 과연 산을 탈까? 반은 폐인이 될까? 그리운 만큼 미치도록 괴로워하며 술을 찾을까? 삭힐까? 시간이 흐르며 약이 되는 건 공동체 생활. 분명 돌아갈 곳이 성당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 절은 아닐 듯. 익숙하고 낯설지 않은, 아마 적을 두지 못한 마음이 허공에 떠돌지 않으려면 아마 당에 두거나 지금부터 찾아나선 곳에서 것들을 하며 죽음에의 받아들임처럼 나름 죽음에 이르는 과정조차 한없이 멋지고 아름다우면서 애잔함을 녹여 허전하지 않도록 충분히 준비할 수 있으리니, 그대여 내 맘 같지 않거든 현실을 즐겨라. 돌고돌아 만나 모른채 일생사 일대희극으로 막을 내린 들, 그렇지 않은 들 그 차이가 무어인가!  김성호.



무용하게도 시간이 무척 빠르다는 걸 간과했다. 피곤해지니 일단 자자고 눕는다.


2024.3.14. 18:47
전북경찰청, KBS, 바위백이공원으로 돌아왔다. 예티를 꾸미면 저럴까 하는 흰 강아지를 안고 검정 하운드는 옆에 서 있는 여아, 한참을 서서 보게 만든, 길게 늘어선 차량임에도 다른 쪽을 먼저 가게 하는 이유를 알게 한 교통순경, 오랜 음식점 궁, 10대 맛집 선정 솔가, 전주식당, BMW를 튀어나오게 한 채 담배 피는 청년...

양말을 벗는데 허리에 신호, 그렇지 그래 하게 만든다. 오늘은 목요일, 내일은 세종시에 간다. 오고가는 길. 다른가? 무엇이 다른가? 여기 민턴을, 거기 민턴을. 어울리고 공들여 만든 작품, 시간이 든 만큼 숙련된 작업능력, 재미붙였다. 둘러나서고 돌아와 먼 발치에서 흔적을 바라보기.

예그리나 아래 오딧세이를 등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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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가스관에 걸린 양압기 호수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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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오늘의 일당인 양, 돌고돌아 8300보에 이른 기록을 보며 만족해 한다. 오늘은 목우촌 직원들과 어울린 호수산장과 카페 달빛이 기억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