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나의 이야기

"더 늦기 전에, 네 손을 잡아도 될까."

큰바위얼굴. 2024. 11. 12. 02:03

늦은 밤, 고요한 전주의 골목길을 홀로 산책하며 걸었다. 차가운 공기가 스며들었지만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차분했다. 집에 돌아와 책을 펴고는 오래전에 '연(連)'이라고 표시해 둔 구절들을 다시금 찾아보았다. 무언가를 나중에 꼭 다시 보고 싶을 때 붙이곤 했던 표시다. 책을 넘기다가 눈에 띈 제목,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 그 이야기 속 대목들에서 나는 자신과 닮은 그림자를 보았다. 
 


 

 

1막. 그러나, 가까이 갈수록 그의 인생이 보이고, 신념이 보였다.


50대가 되면 사람을 보는 눈이 변한다. 젊은 시절에는 좋고 싫음이 분명했고, 그 경계를 쉽게 넘나들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사람마다 고유한 이유와 사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와 가까운 사람, 나와 멀어진 사람, 모두 자신만의 방식으로 생을 버텨가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내가 함께 일했던 동료, 오래된 친구, 지나친 인연들... 각자 고군분투하는 모습 속에서 신념이 보였다. 그 신념은 누가 옳고 누가 그르다고 말할 수 없는, 저마다의 인생에서 꺼내든 무기 같은 것이었다. "모두 저마다의 덤벨을 들고 있다"는 구절을 읽으며 떠올랐다. 삶은, 법을 어기는 일이 아니라면 정해진 답이 없는 여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각자 나름의 이유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 그게 그저 삶일 뿐이라는 깨달음이 지금의 나를 조금 더 부드럽게 만들었다.


2막. 어느 날인가, 나 또한 누군가의 덤벨을 잡아줄 테고.

살다 보면 기댈 곳이 필요해진다. 내가 젊었을 때는 그걸 몰랐다. 주변의 도움이 그리 필요하지도 않았고, 설사 필요한 순간이 와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인생의 무게는 나이가 들수록 더 묵직하게 느껴졌다.

어느 날은 문득, 나도 누군가의 덤벨을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누군가가 있고, 내가 그의 무게를 조금 덜어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나 역시 기댈 누군가가 필요했지만, 그런 기대는 내려놓고 다른 이의 무게를 감싸안는 것도 나름의 위로가 될 것 같았다. 언젠가 나의 덤벨도 누군가 잡아주리라 믿으며.


 

 
 
3막. 더 늦기 전에, 네 손을 잡아도 될까.

가끔 뒤돌아보면, 내가 붙잡지 못한 손들이 떠오른다. 삶에서 지나친 선택들, 뒤늦게 다가온 후회들. 다시 한 번 기회를 준다면, 그때는 좀 더 따뜻하게 손을 잡아줄 수 있을 것만 같다.

소설 속 구절, "더 늦기 전에, 네 작은 손 한 번 붙잡아도 되겠니"라는 문장이 가슴에 남았다. 인생은 반복할 수 없고, 언제나 처음이라는 것을 나이 들어가며 절실히 느낀다. 지나온 시간들은 되돌릴 수 없기에, 한 번 더 손을 잡고 기회를 주고 싶다는 마음이 커진다.

모두가 각자의 시작과 끝을 향해 걷고 있지만, 그 끝에 다다르기 전에 내게 주어진 소중한 인연들과 한 번 더 손을 맞잡을 수 있기를 바라며, 오늘도 나는 덤벨을 함께 들 준비를 한다.

 

 

마흔을 지나 쉰에 이르니, 삶이란 정교하게 짜인 패턴보다는 크고 작은 실수와 반복 속에서 지나는 것임을 점점 더 느끼게 된다. 어릴 적에는 세상 모든 것이 새로웠고, 늘 새로운 시작에 가슴이 뛰곤 했지만, 이제는 그 시작조차 익숙해진다. 그러면서도 아직도 많은 부분에서 갈팡질팡하곤 한다. 마치 매번 무언가를 다시 배워야만 하는 나날들처럼, 실수와 고뇌가 자주 밀려온다.

익숙한 길을 걷다가도 문득, 스쳐가는 바람에 지난 시간들이 겹쳐 보인다. 가족과의 시간 속에서도 그렇다. 아침 일찍 아이의 작은 손을 잡고 등원하던 날들, 함께 손잡고 걷던 수많은 골목들이 떠오른다. 다 지나가버린 그 순간들이, 어쩌면 조금 더 소중히 간직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일까, 때로는 아무도 없는 방에 홀로 앉아, 다시 한번 그 손을 잡아보고 싶다는 아쉬움이 밀려오곤 한다.

삶의 무게는 늘 곁에 있지만, 그 무게 속에서 사랑하는 이의 손을 잡는 일은 마음을 따뜻하게 만든다. 사랑과 후회, 용서와 고집이 뒤엉켜 있는 나이지만, 그런 마음에 위로가 되는 건 여전히 누군가의 손을 꼭 잡는 일이다. 나의 실수와 후회 속에서도 곁에 있어준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늦기 전에 그 손을 다시 한번 잡고 싶다는 마음이 절실해진다.

삶의 마지막까지, 내 곁에 남을 손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오늘도 나는 그 손을 놓지 않으려 한다. 더 늦기 전에, 비록 자주 흔들리고 돌아서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 손을 잡고 싶다. 마치 매일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한 번 더 다가가 손을 내밀어 본다. 김성호 w/ ChatGPT.
 

...


마루에 새것 냄새가 나는 난방 텐트를 처음 펼쳐 놓았다. 겨울이 다가오며 더 따뜻하게 지낼 방법을 고민하다가 선택한 난방 텐트. 새 제품 특유의 신선한 냄새가 집 안에 퍼져, 평소와는 다른 기분을 느끼게 한다. 

아늑한 텐트 안에서는 온기를 더 가까이 느낄 수 있을테고, 마치 작은 캠핑을 떠난 듯한 설렘도 들겠지. 바깥은 차가웠지만 텐트 속은 금세 훈훈해질 것이고, 무심코 올려다본 천장이 막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어딘가 위안을 받지는 않을까. 모든 것이 나를 감싸주고 있는 이 공간 안에서, 그저 잠시 머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순간일테지.

난방텐트를 구입했다.

 
... 

그리고 다음 날, 평소보다 조금 늦은 6시에 일어나 서둘러 양압기를 씻고 샤워를 마친 뒤 출근길에 나섰다. "오늘은 운동을 쉴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작업장 사무실에 들어서서 로그인을 하는 순간 그 마음은 사라졌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운동을 하고 가기로 했다. 조금 늦은 시간이라 불이 꺼져 있었지만, 나만의 조용한 시간을 시작하기에 오히려 더 좋았다.

 
Q. 
'모두 시작이 있고 끝이 있어" 라는 생각이 들게 되었어.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만들어보려 해. 늦은 밤, 전주에서 산책을 하고 돌아왔고 홀로 있는 시간 속에서 책을 읽고 있지. 과거 읽었던 소설 중에서 혹시나 '(연)'이라고 붙여놓은 것 중에서 마저 읽지 못한 글이 있는가 찾아보았어. (연) 이란 연속이란 말의 표시이고, 나중에 꼭 찾아보겠다는 표시였지.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 란 소설이지. 다음 1막부터 3막까지 와닿은 대목이야. 이를 토대로 모두 시작이 있고 끝이 있다는 느낌에 비추어 볼 때 연연함이나 고집스러움, 관계, 의미 부여, 수용 등 마음이 가는 대로 때론 흔들리게 될 때 봐라보게 되는 자조적인 맥락에서의 문구라고 여겨지지. 이런 심정을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만들어줘. 읽기 편하게. 맞닿드린 상황과 배경 설명을 곁들여서 설득력 있게. 나이 50대 남성이 주인공이야. 1막. 그러나. 가까이 갈수록 그의 인생이 보이고, 신념이 보였다. 만약 사이가 좋지 않았다면, 평생 모를 일이었겠지. 이런 것처럼...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의 사정과 가치관을 갖고 살아간다. 생을 거슬러 오른 후에야 알았다. 문득 삶이라는 건, 법률을 거스는 게 아니라면, 옳고 그름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각자만의 삶을 열심이 살아가는 거니까. 그래, 다들 살고자 그러는 걸 거다. 이 세계는 어떻게든 살아남아야만 하니까... 그렇게. 현승은 살고자 하는 이들이, 힘겹게 들고 있는 인생이란 '덤벨'을 같이 들어줄 뿐이었다." 2막. 선생님, 똑바로 받쳐주세요. 받치고 있어. 어느 날인가는... 손만 대고 있는 거 다 알아요. 이놈이? 내 덤벨 또한 누군가 잡아줄 테고. 3막. 더 늦기 전에, 네 작은 손 함 번 붙잡아도 되겠니. 그 순간, 장내에 단 둘만이 남은 것 같은 기분에 휩싸였다. 모든 게 처음인 인생에서, 다시 한번만 기회를 주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