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어둑어둑한 거리에서
새벽, 어둑어둑한 거리에서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미끄러워 넘어질 뻔했다. 발길을 조심스럽게 옮기며 갈까 말까 고민하던 찰나, 비가 한두 방울 흩날리기 시작했다. 어둡고 축축한 길바닥은 미끄러웠고, 해나와 예티를 데리고 산책에 나섰지만 발걸음이 계속 조심스러웠다. 나왔으니 한 번 돌아보기로 했으나, 길 위에 뿌려진 염화칼슘을 피해 돌아가다 보니 평소 다니던 배수지가 있는 산을 향한 길이 아닌 동사무소, 아니 이제는 복합커뮤니티센터라 불리는 방향으로 접어들었다. 예상과 달리 그 길도 미끄러워 한 발 한 발 더욱 신중히 걸었다. 비는 조금 더 내리고 있었다.
흩날리는 비 속에서 한 바퀴만 더 걷자고 했으나, 해나가 주저앉았다. 가자며 채근하니 조심스레 산책을 이어갔다. 멀리 가지 못하고 동그랗게 돌아 다시 출발지로 향했다. 때로는 길이 괜찮아 안심하며 걷다가도 갑작스러운 미끄러움에 휘청거리곤 했다. 가온유치원 앞을 지날 땐 평소처럼 발걸음이 편안해졌고, 몸의 긴장감도 풀렸다. 신호를 기다리며 새벽 일찍 나선 차량들이 대기하는 교차로에 서서 잠시 멈추었다. 빗방울이 조금씩 더 굵어지면서 해나와 예티의 머리에도 비에 살짝 젖었다. 갈림길에 서서 양쪽 중 어느 쪽으로 갈지 잠시 고민했다.
바깥 길은 미끄러우니 아파트 안쪽 길로 접어들었다. 아파트 정원의 길은 상대적으로 덜 미끄러웠지만, 순간적으로 미끄러워 조심조심 걸어야 했다. 그때 연못풍경 앞에서 지쿠터를 탄 사람이 갑자기 미끄러져 넘어졌다. 천천히 다가가 괜찮은지 물어보려 했으나 그는 벌떡 일어나 다시 지쿠터에 올라타고 떠났다. 이미 가버린 그를 바라보며 마음으로나마 무사하길 바랐다. 빗길이 미끄러워 걱정스럽기도 했지만, 오늘 산책이 그에게 작은 복선이 되어 조심하기를 바라며 한 바퀴 더 걸었다.
돌아가는 길에 찍은 사진들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비 내린 거리와 살짝 낀 안개, 그리고 은은한 빛이 만들어낸 풍경은 아름다웠다. 그 순간들을 담고자 셔터를 누르며 나 자신도 그 풍경 속 일부가 된 듯한 기분에 빠졌다. 젖은 거리와 흐릿한 빛이 어우러진 장면들은 산책의 끝에 남은 조용한 감동으로 이어졌다.
오늘 돌아다니면 여러 사진을 찍었는데, 배경 안에 있고 이를 바라봄에 담고자 하는 마음이 들어 나를 집어넣으니는 그 찰나 순간들에 감상 에 젖어 감정으로 이어져 연결됨을 느낀다. 멋지다 아름답다 역시 비가 내린 날의 풍경에 찍은 사진이 최고야, 살짝 안개가 끼고 젖은 듯한 거리 아스라의 빛에 오른 빛이 여러 사진들을 길목에 남기도록 했다.
군 휴가 나온 영탁이 2박3일 여행을 배웅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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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지 않았다. 각인이 삶의 흔적으로 남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이제는 자기 자신을 기록하고 표현하는 것이 기본이 되는 세상이다. 우리는 더 늦기 전에 우리만의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 아니면, 누군가가 대신 써주길 바라며 기다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선택조차도 결국 우리의 몫이다."
- 김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