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와 손자
"외롭지 않으신가요?"
할머니 미안해요. 그리고,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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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심코 또 하루를 시작한다. 무심코 이불을 걷어내고, 무심코 세수를 하고, 무심코 거울을 바라본다. 거울 속에는 이제 머리카락이 희끗해진 중년 남자가 서 있다. 그런데도, 어떤 날에는 여전히 어린아이 같은 기분이 든다. 할머니가 삶아 주던 고구마 냄새가 떠오를 때면 더욱 그렇다.
어릴 적, 할머니와 함께 지내던 방은 오래된 기와집의 작은 한구석이었다. 대가족이었기 때문에 난 주로 할머니 방에서 살았다. 습기 먹은 벽지는 군데군데 곰팡이가 슬어 있었고, 창문 틀에는 시간이 새겨져 있었다. 이불장은 커다랗고 단단했으며, 그 안에서 나는 가끔 숨바꼭질을 했다. 서랍장은 작은 보물창고였다. 할머니는 언제나 나를 감싸 안으며, "어여, 너만 먹어라" 하며 주전부리를 내 손에 쥐여 주곤 했다.
나는 대가족의 장남이라는 이유로 더 많은 사랑을 받았다. 부모님과는 다른 할머니 품 만의 따뜻함과 넉넉함을 받았다. 할머니는 작은 손으로 나를 감싸며, 고구마를 까서 한입 크기로 잘라 손에 쥐여 주셨다. 나는 그 작은 손이 내게 세상의 전부 같았다.
그러나 할머니는 어느 날 사고를 당하셨고, 나는 미안함에 울부짖었다. 할머니는 나를 두고 떠났다. 그 후로 나는 삶의 굴곡을 지나왔다. 직장을 다니고, 가정을 이루고, 세상의 무게를 짊어지며 살아왔다. 바쁘게 살면서도, 문득문득 그 시절이 떠오른다. 마치 잊히지 않는 멜로디처럼.
할머니의 사진을 찾으려 서랍장을 뒤적여 보지만, 어디에도 없다. 기억 속에서조차 점점 희미해지는 그녀의 얼굴. 하지만 나는 안다. 그녀의 모습은 내 마음속에서 여전히 따뜻한 손길로 남아 있다는 것을.
나는 무심코 숨을 들이마신다. 그리고 바람 소리가 들려온다. 내게도 사랑이 있다. 할머니가 내게 준 그 사랑이, 아직도 내 안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그래서 아직은 더 살아야 하겠다고 다짐한다. 그의 몫까지. 김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