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바위얼굴. 2025. 4. 9. 22:02

나는 좋다. 내가. 지금의 내가. 고맙고 미안하고 감사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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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당신이 자기 자신에게 전하는 긴 러브레터입니다.
시간 날 때마다 꺼내 읽어도 좋아요.
마치 오래된 와인처럼, 읽을수록 향이 깊어질 거예요.

혹시 여기에 담고 싶은 또 다른 이야기나 감정이 있다면, 이어서 더 써드릴게요.
언제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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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의 고백: 지금의 나를 사랑한다

난 좋다. 내가. 지금의 내가.
오랜 세월을 지나 이 자리까지 온, 상처받고 웃고 사랑하고 버텨낸, 이 몸뚱아리와 마음,
그 모든 과정이 고맙고, 미안하고, 그저 감사하다.

이 말이 나 자신에게서 튀어나오기까지 참 많은 시간이 걸렸다.
젊은 날엔 나를 증명하느라 바빴고,
중년엔 지켜야 할 것을 안고 치열하게 살아냈으며,
이제는 퇴직이 가까운 시간 앞에서
슬며시 내 어깨를 두드려주는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다.

"수고했어, 성호야. 네가 좋다."


내 삶의 지도 위를 걸어온 나

가만히 돌아본다.
나는 세 아들의 아버지고, 한 여자의 남편이며, 어떤 이의 형이고 또 동생이다.
그리고 한 어머니의 아들이기도 하다.

이렇게 많은 관계 속에 파묻혀 살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모든 이름들이 하나의 이름으로 통합되었다.
바로 ‘나’.
그렇다. 나는 결국 나 하나로 이 모든 사랑의 축을 버티며 살아낸 것이다.
아,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었구나.
이제 와서야 좀 이해가 된다.


가족이라는 우주 속의 나

서희,
내 사랑, 내 평생 동반자.
함께한 세월이 20년, 30년을 넘어
삶의 무게를 반씩 나누어 지며 살아온 여인.
요즘엔 앨범 정리를 하면서 과거의 시간들을 다시 꺼내어
"이 때 당신 진짜 말랐지?",
"이건 우리 치형이 돌 사진인데, 내가 밤새 울었었잖아" 하며 웃는다.

당신이 보낸 셀카 한 장에도,
백화점에서 커피 마시자던 그 말 한마디에도
나는 소년처럼 설레는 걸 보면,
아직도 내 마음속엔 첫사랑이란 것이
조용히 살아 숨 쉬는 모양이다.

치형이, 영탁이, 영록이
세 아들을 키우며 나는 자주 혼란스러웠다.
무엇이 옳은지, 어떤 길이 너희에게 더 나은 선택일지
확신이 없을 때도 많았다.
하지만 너희는 너희 나름대로 잘 자라고 있었다.

치형이는 엉뚱한 상상력과 약간의 비뚤어진 기질로
내게 매일매일 문제를 일으키지만,
그 안에 흐르는 감정의 복잡함과 예민한 감수성은
나를 닮았구나 싶기도 하다.
나는 그를 혼내면서도, 동시에 감탄한다.
‘어떻게 저렇게 솔직하고도 자유로울까.’

군에 있는 영탁이는
이제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
편지 한 줄, 휴가 중 나온 말투 하나에서도
삶을 진지하게 마주하려는 태도가 묻어난다.
실연의 아픔을 꾹꾹 눌러 담은 그 마음도,
나는 기특해서 자꾸 안아주고 싶다.

첫째 영록이는
동생들을 보고 자란 덕분에 애처럼 크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세상을 관찰하는 눈이 있다.
때론 나보다 더 깊은 질문을 던지곤 한다.
그런 아이들이 있어
내 인생이 정말 영화 같다는 생각을 한다.
주인공은 나지만, 매 장면마다
주연은 이들이다.


고향의 향기, 어머니, 그리고 동생들

진잠 집에서 혼자 지내는 어머니,
그분이 있는 그 집은
언제 가도 내 어린 시절을 데려다 준다.
어머니의 밥솥 소리,
차가운 골목길에 퍼지는 된장국 냄새.
나는 그 향기 하나에도 눈물이 난다.

동생 정아,
그녀의 인생에도 굽이굽이 사연이 많다.
사랑과 상처, 화해와 거리두기,
그 모든 걸 안고
자기 삶을 꾸역꾸역 살아낸다.
그런 그녀에게 나는 늘 미안하다.
오빠지만, 오빠답지 못했던 시간들이 많아서.
하지만 오늘, 나는 말하고 싶다.

"정아야, 너도 참 잘 살아냈어."


퇴직을 앞두고, 삶을 곱씹는 시간

나는 이제 곧 퇴직을 앞두고 있다.
직장생활 30년.
그 시간 동안 내게 가장 중요했던 가치는
'내가 옳다고 여기는 것을 지키며 살아내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미움도 사고, 소외도 당하고,
때론 오해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돌아보면
나는 내가 견딘 그 고독이 좋다.
그 속에서 나를 더 깊이 만날 수 있었으니까.

나는 이제 바쁨에서 한가함으로
경쟁에서 수양으로
성과에서 만족으로
슬며시 중심을 옮기고 있다.


그리고 이제 나는 나를 사랑하려 한다

과거엔
‘내가 왜 이 모양일까’ 하며
자책하고 조바심 내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이 모양이어서 좋다. 이 꼴이라서 다행이다.

내가 아니었다면
이 아내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고,
이 아이들을 품지 못했을 것이며,
이 삶의 냄새를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 나는
강아지들과 산책을 나서며,
아이들과 장난을 치며,
오감 훈련을 하며,
가족사 전시회를 준비하며,
블로그에 글을 올리며
아주 가볍게, 그러나 깊이
세상을 살아내고 있다.


그리워하고, 아쉬워하면서도 기꺼이 살아간다

물론 그리움은 있다.
돌아갈 수 없는 젊은 날들,
이미 지나가버린 순간들.
때론 아무 일도 없던 평범한 하루가
가장 그리운 순간으로 남는다.

그리고 아쉬움도 있다.
못해본 일들,
더 잘해줄 수 있었던 말과 행동,
지나치고 만 인연들.

하지만 나는
그 모든 그리움과 아쉬움에도
기꺼이 살아간다.
오늘을 살고,
내일을 궁금해하며,
삶의 끝자락까지
나를 사랑하며 가려 한다.


끝으로, 나는 내게 이렇게 말한다

"성호야,
너는 참 멋지게 살아냈다.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가자.
진지하게, 슬기롭게,
그리고 유쾌하게."

"네가 참 좋다.
지금의 너,
그리고 앞으로의 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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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중에 몇 개는 이미 진행중에 있다.
50대 부부, 나이가 더 들어 움직이지 못하기 전에 반드시 해야 할 경험 100가지  https://meatmarketing.tistory.com/7834
삶을 기록하기, 가족 전시회 준비하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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