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양/어떻게살것인가

삶의 흐름과 성장

큰바위얼굴. 2025. 4. 13.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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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삶의 모습에 대해 생각해본다. 요즘 읽고 있는 책이 ‘아포칼립스의 고인물’이다. 처음 접했을 때 왠지 익숙한 기분이 들었고, 예전에 봤던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목록을 뒤져봤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차근차근 읽어가면서, 만약 예전에 읽었다면 떠오르겠지 싶었는데, 제목은 익숙한데 내용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은 그냥 재밌게 읽고 있다.

이 책의 설정은 게임 속 세계가 현실에 반영되는 이야기다. 게임 안에서의 어떤 진행이 현실에서도 그대로 나타나는 거지. 그리고 게임을 오래 해온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또 하나의 이야기다. 죽고 죽이는 상황, 어쩔 수 없는 환경을 강조하면서 전개된다. 이야기에 빠져든다는 것, 그 안에서 이야기를 듣고 생각한다는 건 정말 흥미로운 일이다.

또 다른 면은 블로그다. 내가 살아온 기록들이 사진을 중심으로 남겨져 있다. 다시 본다 해도 아쉽지 않은 이유는, 이미 ‘내가 해왔다’는 사실이 기록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과거엔 다이어리나 회사 수첩에 메모를 했었다. 주로 일 중심이었지. 지금처럼 활동, 마음, 감정, 관계 중심이 아니라, 무엇을 했고 할 것인지, 그런 식의 기록이었다. 회사에서 하나씩 모아두었던 수첩들도 마찬가지고, 블로그도 결국 하나의 세상을 이루고 있다.

꾸준히 해왔던 것들이,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여러 면들이 쌓여 있다.

그리고 또 하나, 결국 모든 건 이야기다. 소설 속 이야기든, 블로그에 남긴 기록이든, 블로그의 원천이 되는 현실의 활동과 관계, 마음, 그 모든 삶의 모습들이 다 이야기인 셈이다. 이야기라는 건 시대적 배경, 인과관계, 사건, 사고, 그리고 그걸 이끄는 흐름과 줄거리로 구성된다.

현실에서도 관계, 사건, 사고, 줄거리들이 흘러간다. 새벽에 “여보, 다음부턴 안 돼.”라는 말을 했고, 아침에도 또 했고, “응 알았어.”라고 대답했었다. 물론 또 같은 얘기를 반복하게 될 거고.

그러다 꾸준이라는 말을 되새기며, 지금은 가로등 불빛이 노랗게 빛나는 어두운 길을 달리고 있다. 전방 신호등은 초록이 아니라 파랑색이고, 그 신호에 따라 길을 진행 중이다. 거리는 어둡고 비가 살짝 내려서 공기가 서늘하다. 저번 주에도 지났던 길. 어떤 의미를 부여하기보다는 단순한 ‘가는 과정’일 뿐일 수도 있다. 목적지에 도달한다고 해도, 그 목적지가 끝은 아니니까. 그냥 큰 흐름 속 하나의 과정일 뿐이다.

세상은 그렇게 흘러가고, 끝이 없는 것처럼 반복되고, 반복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사실은 일정한 패턴을 따라 흐르고 있는 거다. 그 안에서 인간은 조금씩 성장한다. 여기서 성장이라는 게 지적인 발전일 수도 있고, 감정적인 깊이일 수도 있고, 일의 진척일 수도 있고, 마음의 수양일 수도 있다.

만약 발전과 성장이라는 개념이 없다면, 이 반복되는 삶을 견디는 게 훨씬 더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아침, 점심, 저녁이 없고 그냥 낮만 계속된다면 어떨까? 게다가 나이가 들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변화 없는 세계일 거다.

그러다가 갑자기 길 위에서 상황이 바뀌었다. 속도가 줄고, 도시락통이 엎어졌다. 그래서 도시락을 다시 확인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국물이 동물류한테 흘렀을까 싶어서.

오늘따라 차들이 좀 빠르게 달린다. 내가 속도를 내지 못하는 건, 단속 카메라 때문이다. 위치가 부정확하게 두 군데, 세 군데 잡혀 있어서 조심하고 있다. 고속도로를 타기 전까지는 계속 신경 써야 한다.

그런데 살아오면서 이런 모습들, 이런 풍경들이 너무도 당연하게 느껴졌다. 다들 이렇게 살아가고 있을 거라고 여겨졌고, 나도 예외 없이 이 환경 속에서 살아왔다. 하지만 이게 어디서나 같진 않다. 다른 나라를 가도, 시골을 가도, 심지어 똑같은 환경이어도 그 순간 느끼는 감정은 또 다르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한다. 세상을 구성하는 ‘면들’이라는 게 흥미롭다. 공기, 바람, 거리, 그리고 시간이 흘러가는 방식. 일정한 패턴 안에서도 변화가 일어나고, 그 변화는 상대적이라고 할 수 있다.

상대적이라는 말도 흥미롭다. 상대라는 게 있어야만 가능한 표현이다. 결국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인식되는 거다. 내 시선으로 보고, 느끼고, 생각한다. 관계성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와의 관계, 내 안과 밖의 경계, 그리고 그 관계 안에서 벌어지는 변화들.

운전을 하고 있다면, 나는 운전 중이고, 차는 도로 위를 달리고 있고, 동시에 머릿속으로는 온갖 생각을 하고 있고, 상상도 하고, 말도 하고 있다. 같은 순간 안에서도 여러 활동이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다.

결국 세상이라는 건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그걸 생각하다 보면, 삶이라는 건 흐름 속에서 유연함을 배우고 받아들이는 과정인 것 같다.

세상은 흘러가고, 나는 그 안에서 바라보고, 느끼고, 때로는 충만함을 느끼고, 그렇게 하루를 보낸다. 지금 도로를 달려서 일터로 향하고 있지만, 일터가 목적지는 아니다. 일터를 지나 다시 집으로 돌아가고, 집도 또 영원한 목적지는 아니다.

집이라는 공간은 안정감을 주긴 하지만, 길게 본다면 그저 잠시 머무는 거점일 뿐이다. 결국 인생은 거점을 옮겨 다니는 여정이다. 누군가와 함께하느냐, 아니면 혼자이냐, 그런 것들이 삶을 채운다.

가족이라는 고리, 그 중에서도 ‘당신만 있으면 충분해’라는 약속 같은 걸로 묶여 살아간다고 할 때, 이 세상은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만약 배드민턴이라는 취미가 없었다면, 무척 무료했을 것이다. 삶에서 뭔가 징검다리가 필요한 순간들, 그런 걸 찾지 못했다면 방황했을지도 모르겠다.

반복되는 일상 안에서도 지루함이 생긴다. 관계, 목표, 지향하는 것들이 있어도 때로는 지루함을 느끼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배움, 다른 관계를 원하게 되는 건, 지금 이 자리가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겠지.

목적지가 아닌 여정. 흘러 흘러 어디로 갈지 모르는 길.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옆에 있는 사람과의 갈등, 내면의 생각들, 그 모든 걸 견디고 함께 나아가며 세상을 만들어가는 거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얻는 만족, 보람, 그런 것들이 삶을 살아가게 한다. 누군가는 이 삶을 만족스럽게 여기고, 누군가는 만족을 찾으려 계속 움직인다.

이 길도 영원하지 않다. 이 길을 영원할 거라 믿어선 안 된다. 지금은 이 길이 유일한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언제든 다른 길로 갈아탈 수 있다. 인생이란 게 다 그런 거니까. 김성호.


* 원문(음성)
https://youtu.be/xj0dGoFJAUw?si=7mEyqS6nHnQ6tRS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