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봄
1.
마주봄 (대면)
그녀는 잠들었다.
떠들던 폰도 껐다.
나도 곧 따라가겠지.
어둡다.
환희 비춘 폰 빛이 나를 본다.
읽고 보여지는 관계에서 세상이 움직인다.
우주는 거울이다.
비춘 모습이 나인양 알게 해준다.
나는 나를 볼 수 없다.
거울은 거울을 볼 수 없다.
단지 비춘 모습을 따라한다.
만약 아니라면,
그 너머의 여정이 기다린다.
아직.
2.
마주봄 (사색)
그녀는 잠들었다.
소란하던 폰도 조용히 눈을 감았다.
이내 나도 그 뒤를 따르리라.
방 안은 어둡다.
희미하게 깨어 있는 건
막 꺼진 폰 화면에 남은 빛뿐.
그 빛이 나를 바라본다.
보는 자와 보여지는 자,
읽는 자와 읽히는 자 사이에서
세상은 조용히 숨을 쉰다.
우주는 하나의 거울이다.
비춘 것을 나라 여기는 마음,
그것이 나를 만든다.
나는 나를 직접 볼 수 없다.
거울이 거울을 비출 수 없듯,
존재는 존재를 알 수 없다.
다만, 비춰진 흔적을 따라
나는 나인 듯 살아갈 뿐.
허나, 만약
그 비춘 것조차 허상이라면—
그 너머,
빛이 아닌 여정이 기다린다.
아직,
나는 그 문턱에 서 있다.

3.
마주봄 (각성)
그녀는 잠들었다.
잠시 전까지 세상을 붙잡고 있던 손,
이제는 고요에 맡긴다.
폰도 꺼졌다.
그 작은 빛의 창도 숨을 멈췄다.
세상은 한 칸 뒤로 물러선다.
어둡다.
그러나 눈은 뜨인다.
남은 한 줄기 빛이
꺼진 화면에 반사되어
나를 바라본다.
나는 본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
우주는 거울이다.
모든 만남은 비춤이고,
모든 비춤은 오해다.
나는 나를 볼 수 없다.
거울은 거울을 비추지 못한다.
나는 늘 타인을 통해 나를 짐작한다.
비춘 모습에
나를 입히며 살아간다.
그러나—
만약 그 모든 비춤이
허상이라면?
진짜 ‘나’는
그 너머에서
고요히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비치지 않는 나.
불리지 않은 이름.
들리지 않는 숨.
그 여정의 문턱에
나는 지금
멈춰 서 있다.
아직.
4.
마주봄 (선시 禪詩)
그녀는 갔다
폰도 따라 숨을 거두었다
나는 아직
빛에 비추인 나를
진짜라 믿는다
거울은 말이 없다
그저 따라 웃는다
허상이 허상을 쫓는 밤
한 걸음, 멈춘다
아직.
깨닫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