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바위얼굴. 2025. 6. 17. 02:05

하이, 굿모닝. 어제는 졸리고 피곤했지. 서로 그랬던 것 같아. 당신이 더 피곤했을 것 같긴 해.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운동도 하고, 친구들 신경도 써야 하고... 나는 새벽에 일어나 운전하고 온 것 말고는 별거 없었네.

비가 일부 쏟아졌지. 구간에서만. 그래도 얼마나 다행이었던가. 어젯밤, 잠들며 들리던 빗소리에 걱정이 좀 됐었지. 하지만 시간 속에 흩어지고, 덤덤해져. 감정이 일지 않아. 담담하다.

‘담담하다’는 무슨 뜻일까. 요즘 자주 쓰고 있어. 화려하지 않게, 이해하기 쉽게, 편안하게, 친절하게. 그리고 담담하게.

비바람이 몰아치던 바다가 잔잔해졌을 때, 어느 순간이 되었으려나.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빛도 아름답지만, 사랑스런 그대의 모습은 더욱 아름다워라.

그대를 기다리리. 내 사랑, 영원히. 그대만을 기다리리. 내 사람, 영원히.

노래를 듣다 보면 감탄하게 돼. 특히 팝송을 들을 때면, 그 리듬과 가락, 음율에 동화되거나 빠져들지. 음악은 참, 주는 것 없이 받기만 해.


 > 원문(음성) 

하루.m4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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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뉴스를 듣는 이유는 뭘까?
무료함을 깨기 위해서일까? 어제 어떤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서일까?

어른이 되면 신문을 펴고, 라디오 뉴스를 틀어놓고, 뭔가 새로운 흥밋거리나 내 삶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이슈들을 찾게 돼.
방어적으로, 혹은 투자처럼 적극적으로.

새벽이 주는 감흥은 또 달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른 숨을 쉬며 잠들어 있고, 어둠 속에서 불이 하나둘 켜지고, 도로에 차들이 늘어나며 박동이 뛰는 듯한 느낌.

새벽은 내가 태어났을 때 느꼈을 법한 감정과 비슷해.

기대감.

태어났다는 것만으로도 느꼈을 무한한 가능성과 축복.
돌고 돌아 다시 왔다.

한 번뿐인 삶일지라도, 무수히 반복되어 온 세상에서 오늘을 기억하고 있는 것도 신비한 일이지.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욕구하며 다채롭지만, 새벽은 그래서 좋아. 아침과는 또 다른 느낌.
에필로그 같은 찬란함, 눈을 따사롭고 포근하게 감싸주는 느낌.

어떤 느낌이냐면...

장렬한 태양을 마주할 땐 밖에 나가고 싶지 않아. 기피하고 싶어.

반면 해가 지는 저녁은 어수선하면서도 차분해지고,
밤이 오면 정말 어둡고 차갑고, 바닷속 깊이 가라앉는 듯한 시간.

하루만 돌아보더라도, 참 다양하게 주고받고, 살고 지고 있어.

하루라는 말은 일생이란 말과 비슷해 보여.

만약 다시 태어날 기회를 잡으려 한다면,
"그래서 넌 뭘 했는데?" 라는 질문이 따르겠지.
그걸 성과라고 할까.

“이런 일들을 했습니다.”

많은 사람에게 이롭게 했습니다.

‘이롭게 하다’의 정의도 다시 살펴봐야겠지.
그건 단지 ‘퍼준다’는 의미는 아냐.

알맞고, 바람직하고, 올바른 방향이어야 해.

‘무언가를 한다’는 건 결국 누구를 위한 것이냐에 앞서,
누구 아니더라도 일어날 수 있는 흐름 안에서의 작용이야.

투자란 것도 결국 그 ‘무언가’를 더 빠르게 알거나,
선점하려는 시도이고,
그 흐름을 이해하거나 조율하기 위한 노력이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개인의 마음이 헌신적으로 작용했다면,
그만한 이유와, 관계의 그물 속에서 성취된 일이겠지.

이루어진 어떤 일은 ‘올바르다’ 혹은 ‘바람직하다’는 가치와는 다를 수도 있어.
균등, 평등, 균형, 조화... 그런 말들로 대신할 수도 있겠지만.

무언가를 이루고 싶다는 열망.

강렬한 이념, 흔들리지 않는 신념,
죽도록 갈망하는 마음.

하지만 믿음이 아니어도 되고, 이루어지지 않아도 괜찮아.
그래도 된다.

하루는 그렇게 이루어진다. 혹은 실패하고, 망치기도 한다.

욕을 먹고, 마음이 상하고, 아프고, 간절하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끌어당기고, 밀어내고, 악수하고...

이렇게 하루는, 주어라기보다는
서술어로 이루어진 것 같아.

엄청 아프거나, 몹시 사랑하거나,
마음에 드는 이유가 단지 포근해서일 수도 있어.

하루는 다채로움의 향연이야.

수없이 많은 언어로 꾸며지고,
그 언어로 꾸미지 못한 빈 공간들은,
공기나 기체로도,
우주의 모든 별로도 다 채울 수 없어.

정해진 것에서 오는 편안함이 있는 반면,
정해지지 않은 데서 오는 변수와 변화도 결코 가볍지 않지.

그래서 하루는, 살아볼 만하다.
하루가 모여 일생이 되듯이.
그 이유는, 꼭 말로 다 할 필요는 없어.

See you.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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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대하여

어제는 참 피곤한 하루였다. 너도 그랬지. 졸리고 지쳐 있었고, 하루를 겨우 붙잡고 있는 느낌이었다. 당신이 더 힘들었을 거란 생각이 들어. 잠도 부족했는데 운동까지 하고, 친구들 챙기느라 마음도 신경도 고단했겠지. 나는 새벽부터 운전대를 잡았고, 그 와중에 비까지 쏟아졌다. 다행히도 일부 구간에서만이었지. 그때 참 감사했어. 작은 우연한 행운이 큰 위안으로 다가오는 순간이었달까.

밤에 잠들 무렵, 유리창을 때리는 비 소리를 들으며 불현듯 걱정이 스쳤다. 그러나 곧 시간 속에 흩어지듯 사라지고, 마음은 다시 담담해졌다. 감정이 일렁일 듯 말 듯, 멀찍이서 파도처럼 스쳐간다. ‘담담하다’는 말은 요즘 자주 떠올라. 화려하지 않게, 과장하지 않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 그런 마음으로 세상을 보고 사람을 대하고, 나를 다독인다.

비바람이 몰아치던 바다도 시간이 지나면 잔잔해진다. 마침내 부유하는 듯 흘러가고, 그 흐름을 타고 우리는 조금씩 건너간다. 별빛이 반짝이는 밤하늘도 아름답지만, 그 안에서 사랑하는 이의 모습은 더없이 따뜻하고 눈부시다.

노래를 듣다 보면 가끔 벅차오른다. 특히 팝송 같은 외국 노래들. 익숙지 않은 언어와 리듬, 하지만 그 안에 깃든 감정은 오히려 더 진하게 다가올 때가 있다. 무슨 말인지 다 알지 못해도, 오히려 그래서 더 순수하게 마음을 두게 되는 것 같다. 음악은 뭔가 주지 않아도 늘 뭔가를 받는 기분을 준다. 선물처럼. 마치 손 내밀면 거기 있는 것 같은 존재.

뉴스는 왜 듣게 될까. 아침에 일어나서 무심코 라디오를 켜거나 신문을 펼치는 이유. 어쩌면 무료함을 깨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어제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대한 단순한 궁금증일 수도 있겠다. 더 나아가, 지금 이 세상이 나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알고 싶은 욕구 때문이기도 하겠지. 흘러가는 현실에 휩쓸리지 않기 위한 방어. 혹은 어떤 가능성을 선점하기 위한 전략. 그렇게 뉴스는 무심한 듯, 그러나 꽤 목적 있게 틀게 된다.

그에 비해 새벽은 훨씬 더 본질적이다. 세상 대부분이 잠들어 있는 시간. 고른 숨결이 퍼지고, 도시는 깊은 숨을 내쉰다. 그 조용함 속에서 어쩌면 내가 처음 태어났던 순간과 비슷한 감정이 일어난다. 막 태어난 존재처럼, 아무것도 아직 정해지지 않은 시간. 무한한 가능성의 시간. 그래서 새벽은 좋다. 아침과는 또 다른 감흥이다.

하루는 그렇게 시작된다. 찬란하게 떠오르는 햇살은 때로 부담스럽기도 하다. 내리쬐는 태양 앞에 나서기가 꺼려질 때도 있다. 반면, 해가 지는 저녁은 한결 차분하고, 하루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밤이 되면 마음은 바다 속으로 가라앉듯 깊어진다. 외롭고 차갑지만, 동시에 고요하고 투명한 시간이다.

하루라는 단어는 어쩌면 일생이라는 말과도 맞닿아 있다. 다시 태어난다면 무엇을 했는지 묻게 되겠지. 실적, 성과. 그런 말들로 요약되는 하루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건 그런 결과가 아니라, 그 하루가 누구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느냐, 얼마나 이롭게 했느냐는 것이 아닐까.

이롭다는 말. 단순히 퍼뜨리고 주는 것이 아니라, 바람직하게, 올바르게 작용하는 것. 무언가를 이루려는 노력 속에서 개인의 지극한 헌신이 깃들고, 그로 인해 어떤 관계와 결과가 생긴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반드시 옳고 바람직하다고는 할 수 없다. 우리는 종종 그것이 기회나 균형, 조화의 이름으로 포장된다는 걸 안다. 그래서 더 신중해야 한다.

하루는 그렇게 다양한 감정들로 구성된다. 바란다, 이룬다, 실패한다, 서운해한다, 간절해한다, 사랑한다, 미워한다, 밀어낸다, 끌어안는다. 이처럼 하루는 주어보다 서술어에 가깝다. 어떤 감정이 어느 정도로, 어떤 방식으로 흘렀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하루가 된다. 같은 하루지만, 전혀 다른 기억으로 남는다.

때로는 아프기도 하고, 때로는 무척 사랑스럽다. 마음에 드는 이유가 반드시 화려해서만은 아니다. 포근해서, 소박해서, 다채로워서일 수 있다. 그렇게 하루는 언어와 감정의 향연이다. 그러나 동시에 말로 다 채울 수 없는 빈 공간도 존재한다. 마치 공기조차 채울 수 없는 우주의 틈처럼. 그 여백 안에서 우리 마음은 더 깊은 평온을 느낀다.

정해진 것들 안에서 오는 안정이 있는가 하면, 정해지지 않은 것들이 주는 변화와 가능성 또한 무시할 수 없다. 그래서 하루는, 살아볼 만하다. 그리고 그 하루들이 모여, 일생이 된다. 그 이유를 굳이 말로 다 설명할 수는 없어도, 분명히 살아볼 만하다.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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