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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무엇을할것인가

경계인

by 큰바위얼굴. 2024. 4. 6.


“내 생각에 인생은 참 야속해. 우리는 대부분 욕망하는 걸 이루면서 살 수 없잖아? 돈도 못 벌고, 집도 못 사고, 직업도 변변치 않고. 그래서 그림에 떡 보듯 남의 성취만 구경하면서 살지.”

“…….”

“그래도 난 믿어. 인생이 아무리 거지같아도 최소한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 딱 하나 정도는 이룰 수 있다고. 나 같은 경우 그게 책방을 여는 거였지.”

“……네.”

“넌 대체 뭘 원하니?”

담담하고 별것 아닌 질문에 유지훈은 큰 충격을 받았다.

자신의 실존이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음을 깨달았다.

어느 순간부터 관성에 따라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었다. 왜 그림을 그리는 건지도, 그림을 통해 무엇을 이루려는지도 까맣게 잊었다.

그 소중한 비밀은 대체 언제, 어디쯤 버리고 여기까지 온 걸까.

“잘 모르겠어요.”

“그걸 꼭 찾아야 돼. 네가 원하는 걸 찾지 못하면 세상에 휩쓸려 다닐 수밖에 없어. 기껏 한 번 사는 세상인데 남이 시키는 대로만 살면 억울하잖아?”

김윤성이 말을 이었다.

“물론 지금처럼 생활하면 자기만족하며 평화롭게 지내겠지. 아버님은 널 사랑하고 집안이 경제적으로 힘든 것도 아니니까.”

“……네.”

“자기 만족하는 삶, 난 좋다고 생각해. 단, 정말 그걸 네가 선택했다면.”

그가 강렬한 힘을 담아 말을 이었다.

“그런데 만약 네가 도망치고 있는 거라면? 단순히 남에게 평가 받는 게 두려워서 숨어 버린 거라면? 그 때는 이야기는 달라지지. 이도 저도 아닌 경계인이 되는 거야.”

“경계인…….”

“스트릭랜드처럼 살 수 없으면 차라리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기 위해 발버둥 쳐. 그게 꼭 나쁜 건 아니야. 속물이라고 손가락질 받을 일도 아니라고. 어쩌면 예술가에게는 그게 필요한 덕목일 수도 있어.”

“…….”

“다시 한 번 물어 볼게. 너 미술은 왜 시작했어?”

“그게……. 제가 잘 하는 게 별로 없었거든요. 성적도 그저 그렇고…… 성격이 활발해서 다른 친구들이랑 잘 어울렸던 것도 아니고. 다른 재능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유지훈이 추억을 더듬으며 말을 이었다.

- 책 보고 가라 42화



“솔직히 저는 노력이라는 단어 대신, ‘한다’라는 동사를 쓰고 싶습니다. 우리는 항상 어떤 일을 할 뿐입니다. 그 과정에서 성공하고 말고는 우리의 몫이 아닙니다.”

“…….”

“운이 찾아오면 성공하고 아니면 성공하지 못하겠죠. 단순한 겁니다. 성공하지 못했다고 스스로를 탓할 필요 없습니다. 그저 운이 없었을 뿐이니까요.”

“…….”

“성공한 사람을 부러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들의 결과물이 조금 배 아프긴 하겠지만 그들은 운이 좋은 사람이죠. 그 사람 자체가 대단한 건 아니에요. 우러러볼 필요가 손톱만큼도 없는 겁니다.”

그는 헛기침하고 말을 이었다.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신 분들, 모두 성공에 목매달지 말고 그저 할 일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존재 그 자체로 아름답고 존경받을 가치가 있습니다.”

- 책 보고 가라 45화




"내 생각에 인생이란 수없이 많은 이별을 배우고 받아들이는 과정 같아. 그러니까 얼마나 좋은 인생을 살았느냐를 판단하는 건 얼마나 이별을 잘 했느냐가 아닐까?”

“잘 생각해 봐. 오늘만 해도 어제를 떠나보낸 날이잖아. 그렇지?”

“우리는 무언가를 얻으며 산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착각이라고 생각해. 잘 봐.”

“우리는 죽기 전까지 소중한 것들, 이를 테면 건강, 꿈이나 목표가 될 수 있고 사랑하는 연인이나 가족이나 친구가 될 수 있겠지. 이런 것들을 하나둘 잃기 시작해. 그리고 마지막에는 목숨을 잃지.”

“그러니까 잃어버릴 것들에 너무 집착하면 안 돼. 그러면 우리만 손해야. 발버둥을 쳐 봤자 붙잡을 수 없거든. 웃으면서 아름답게 보내 줘야지.”

“나중에 수정이 만나면 오늘 내가 했던 이야기 들려 줘. 그리고 이형기 시인의 낙화를 읽어 보라고 해.”

- 책 보고 가라 57화



우리는 슬픈 상황에 마주쳐서 슬픈 게 아니라 슬퍼하고 싶기 때문에 슬퍼하는 거라고.

- 책 보고 가라 9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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