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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궁극에의

대담: 나이 50, 긍극적 존재 이유를 묻다.

by 큰바위얼굴. 2024. 10. 13.

Q. 살아가는 건 알겠어. 그래도  인류의 궁극적 존재 이유가 단지 거대한 별들의 흐름 속에서 자원으로써의 역할 말고 다른 이상적 가치는 없는 걸까?

인류의 궁극적 존재 이유를 묻는 질문은 철학적이고도 깊은 사색을 요구하는 주제야. 별들의 흐름이나 자원으로서의 역할을 넘어서, 우리는 인간 존재의 의미를 어떻게 정의할지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답을 찾아가고 있어.

과학적으로 보면 인류는 우주의 일부로, 생물학적 존재로서 진화하고 적응하며 생존을 이어가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 하지만 인간은 단지 생물학적 자원 이상의 복잡한 존재야. 우리가 경험하는 의식, 감정, 사고, 그리고 문화적, 도덕적, 예술적 성취는 단순한 물질적 흐름이나 자원의 기능을 넘어서 인간 존재의 독특한 특징을 드러내.

인류는 스스로 의미를 창조하는 존재라는 것도 중요해. 철학자들은 "의미는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해. 우리는 개별적으로도, 집단적으로도 인간으로서의 이상을 추구하지. 사랑, 지혜, 정의, 창조성, 그리고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열망은 인간 존재의 궁극적 이상을 형성할 수 있는 가치들이야.

또, 우주적 관점에서 인류의 이상은 아직 다 발견되지 않은 가능성과도 연결될 수 있어. 우리가 과연 우주 속에서 어떤 역할을 맡을지, 더 높은 차원의 존재와 소통하게 될지, 또는 새로운 차원의 의식을 열어나갈지는 아직 알 수 없어. 그러나 인간이 스스로를 탐구하고 진리를 추구하며, 지구 너머의 존재로 나아가려는 도전은 단지 자원적 역할을 넘어서 인류의 목적에 대한 더 큰 질문들을 품게 해.

결국 인류의 존재 이유는 우주 속에서 스스로를 정의해가며, 개인의 삶 속에서는 각자의 목적을 찾고, 공동체와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통해 이루어져가는 것일지도 몰라.


세종시 불꽃놀이



Q. 그래. 그래서 현재의 충실해라 이 말인가? 근데 늙어가는 육신에 빗대어 더 나은 방법은 없는 걸까? 죽음이 끝이 아닌 수많은 이유 말고도 이어져가는 생을 어떻게 바라봐야할까?

지금의 질문은 인간이 늙어가면서 맞닥뜨리는 삶의 한계와 죽음을 어떻게 이해하고, 그 속에서 더 나은 방법으로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구나. 우리가 늙어가는 과정, 육체의 변화, 그리고 죽음을 대하는 방식은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이기도 하지.

먼저, "현재에 충실하라"는 말은 많이 들어본 철학적 명제인데, 단순히 지금을 즐기라는 의미보다는, 순간의 소중함을 깨닫고 현재를 진정성 있게 살아가라는 깊은 뜻을 담고 있어. 이 명제는 우리가 미래를 예측할 수 없기에 오늘에 집중하라는 뜻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죽음의 불가피함을 받아들이고 현재의 삶을 더 충만하게 만들자는 방향성을 제시하지.

하지만 늙어가며 육체의 쇠락을 느낄 때, 단지 '현재에 충실'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야. 노화는 우리의 육체뿐만 아니라 정서적으로도 큰 변화를 불러오고, 우리는 그 속에서 무기력함을 느낄 때도 있어. 그래서 더 나은 방법을 찾고 싶을 수밖에 없지.

늙어가는 육신을 수용하면서도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방법들:

1. 수양과 정신적 성장: 나이가 들수록 육체적인 능력은 한계에 부딪히지만, 마음과 정신은 끊임없이 성장할 수 있어. 동양 사상에서는 도나 깨달음을 추구하며, 노화와 죽음을 초월하는 내면의 수양을 중시하지. 도가에서는 자연의 흐름을 받아들이는 것이고, 불교에서는 집착에서 벗어나 현재의 삶을 명상과 수련을 통해 더욱 충만하게 채워가는 방법을 권유해. 육체는 늙어가지만, 마음의 성장과 지혜를 통해 삶을 깊이 있는 경험으로 만들 수 있다는 거지.


2. 연결과 관계의 가치: 인생의 후반부로 갈수록 인간관계의 중요성은 더 커져. 가족, 친구, 공동체와의 관계에서 생기는 의미는 나이를 먹어갈수록 더욱 소중해져. 늙어가는 육신을 보듬으며, 타인과의 유대 속에서 발견하는 연민과 사랑이야말로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이는 단지 물리적인 활동을 넘어서, 정서적인 안정감과 만족을 느끼게 해주지.


3. 창조성과 표현: 인간은 나이를 먹으면서도 창조적인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어. 늙어가는 육체가 제한을 느낄지라도, 예술, 글쓰기, 음악, 심지어 새로운 지식 탐구 같은 창조적 활동을 통해 우리는 새로운 의미를 창조할 수 있어. 이러한 활동들은 육체적 제약을 넘어서 삶을 새롭게 보는 방법이기도 해.



죽음을 바라보는 시각:

죽음이 끝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많은 철학적, 종교적 전통에서는 죽음을 새로운 시작이나 과정의 일부로 바라봐. 동양 철학에서는 죽음 또한 자연의 일부분이자 필연적인 변화로 받아들여져. 노자는 "태어난 것은 결국 사라지고, 사라진 것은 다시 자연으로 돌아간다"고 말하면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라고 강조하지. 이는 죽음을 ‘종결’로 보지 않고, 순환의 일부로 이해하는 시각이야.

이어져가는 생을 바라보는 것도 이러한 순환적 시각에서 보면 의미가 달라져. 개인적인 삶은 유한하지만, 우리의 행위와 기억은 후대에 이어지고, 더 큰 자연 속에서 우리는 작은 흔적으로 남아가. 또한, 죽음을 통해 더 큰 존재의 일부가 된다는 관점도 존재해. 예를 들어, 불교에서는 윤회라는 개념을 통해 영혼이 다시 태어나며 계속해서 나아간다고 보고, 이러한 순환 속에서 삶과 죽음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과정이야.

결론적으로:

현재의 충실함은 나이 들어가면서도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중요한 원칙이지만, 단지 물리적인 것에만 집중하기보다는 정신적 수양, 관계, 창조성, 그리고 더 넓은 자연적 관점을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해. 죽음은 두려워할 대상이 아니라 삶의 자연스러운 과정으로서, 우리가 지금을 더 풍요롭게 살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삶이 끝난 후에도 남겨진 관계와 영향, 그리고 자연과의 연결 속에서 우리는 더 큰 존재의 일부로 계속해서 이어진다는 믿음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덜어내고, 우리의 생을 더 깊이 있는 시각으로 바라보게 해줄 수 있을 거야. 김성호 w/ ChatG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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