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23시에 눈을 떴다. 깊은 잠결을 헤치고 나온 듯, 창밖의 어둠은 여전히 묵직했고, 방 안 공기는 온통 정적이었다. 말소리 하나 없이 고요했고, 문득 손에 쥐어진 책 한 권이 빛을 발하는 것 같았다. 쥐뿔도 없는 회귀. 그 제목이 밤의 고요함과 유난히 잘 어울렸다. 깨어 있는 이 시간, 마치 세상이 멈춰 있는 듯한 이 순간에 이 책을 읽는다는 건, 어쩌면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요함이 내 안에 천천히 스며들며, 문장 하나하나가 내 삶의 결을 어루만졌다.
“돌아오기 시작했다면 돌아와야 할 만한 일이 벌어진다는 것이겠지.”
이 한 문장에서 시선이 멎었다. 뭔가를 찌르는 듯한 이 짧은 말이, 어느 순간 나의 태초와 현재를 연결짓는 다리가 되어 주었다. 돌아온 건지, 새로운 시작인지, 그저 이어짐인지—솔직히 말해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하나만큼은 분명하다. 나는 지금, 돌아왔고, 살고 있다. 어디선가 멀리서 걸어 들어와 다시 이곳에 앉아, 호흡하고, 생각하고, 살아 있는 나 자신을 느낀다. 그 자체로 어떤 서사의 클라이맥스처럼 여겨졌다.
책은 이어서 말한다. “혼자 살 수는 없다.” 당연한 듯 들리지만, 이 당연함이 진리처럼 다가오는 순간이 있다. 쥐뿔도 없이 시작된 회귀였지만, 그 속에서 피어난 만남이 곧 기연이 되는 이야기는 어쩐지 내 삶의 장면들과 겹쳐졌다. 아무도 쉽게 연결되지 않고, 그 누구도 쉽게 엮이지 않는 세상인데, 그럼에도 우연처럼, 필연처럼 누군가와 연결된다는 건 기적에 가깝지 않을까. 그런 일이 내게도 일어난다면, 아니, 어쩌면 이미 일어나고 있다면—그건 분명 이유가 있는 일이겠지.
내게 주어진 소명이라고 해야 할까. 돌아온 이유, 그건 아마도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 탐구, 이 자각, 이 고요한 사유 속에 담겨 있는 게 아닐까. 일상에 매몰되지 말라는 경고처럼, 일상에서 비껴난 어딘가에서야 비로소 '돌아봄'이 가능했다. 멈추지 않았다면 몰랐을, 멀어지지 않았다면 보이지 않았을 것들 말이다. 더 이상은 다시 그 방향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아쉬우냐고? 아니다. 감사하다. 그 철없던 사람들, 그 조각조각 흩어진 인연들, 그 시절의 나조차도,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한 장면이었기에.
'가슴은 뜨겁게, 머리는 차갑게'—누군가 말했지. 그런데 내게 있어 그 가슴을 뜨겁게 만든 건 무엇이었을까. 그건 다름 아닌, 내가 '미생'이 아님을 자각하는 순간이었다. 그저 살아내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것임을 인정하게 되는 때. 이 책의 한 문장 한 문장이 그런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그 말, “나가 달라지면서 세상이 변한다.” 얼마나 단순하면서도 강한 말인가. 맞다. '나'가 달라지면, 진심으로 달라지면, 세상은 반드시 달라진다. 나는 그것을 이제 믿는다.
비록 책 속 인물들이 설정된 세계에서 위지호연, 백소고, 무공 같은 이상을 좇으며 움직이고 있다 해도, 그리고 그것이 서사를 위한 장치라고 해도, 괜찮다. 설득력을 갖추려는 무리수조차 이질감보다 정이 간다. 어설픔 속에 피어난 기쁨은, 어쩌면 현실에서 더 와닿는지도 모른다. 완벽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위로가 되듯 말이다.
“너는 원하는 것을 얻었느냐?”라는 질문이 마음속에서 울렸다. 나는 천재가 아니며, 그 무엇도 쉽게 얻어낸 적 없다. 치아가 불편한 이 밤, 가로로 잘려진 참외 한 조각을 조심스럽게 씹으며 묻는다. 너는 원하는 것을 얻었느냐?
잠시 뜸을 들이다가, 아주 조용히, 하지만 흔들림 없이 대답했다.
“네.”
- 김성호 E/ ChatGPT.
'실천 > 읽기(도서 추천), 2022.4.16.~'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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