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락을 싸주는 서희,
맛있게 먹었다며 댓글로 화답하는 성호.
머리를 깍았고,
새로운 일터로 향한다.
정말 시원한 아침이야. 바람이 제법 선선해. 유독 차 소리가 크게 들려서 그런가, 왠지 하루가 다르게 다가와. 엔화의 티를 챙겨 아침 일찍 집을 나섰어. 현관문을 열고 나올 때 불어온 바람의 온도와 세기, 아 이 정도면 괜찮겠다 싶었지. 그런 기분으로 오늘 하루를 시작했어. 어디를 가볼까. 5시 알람은 금세 껐고, 5시 반 알람에는 깜짝 놀라 눈을 떴던 것 같아. 정신이 번쩍 들었지.
가볍게 세수하고 나니, 뭔가 시간이 평소보다 앞당겨진 듯한 느낌이 들었어. 오늘은 아파트 주위를 걷지 않고, 저기 세종 제2배수지 쪽으로 가보기로 했지. 일부러 시계를 보지 않았어. 괜히 시계를 보면 합리적인 판단, 습관적인 결정으로 발걸음을 멈출까 봐. 그냥 몸 가는 대로 걷고 싶었어.
뭘 싸들고 나섰지. 사람들 하나둘 보이고, 걸으며 이런저런 생각들이 스쳐 갔어. 헤라 아이에티의 길라섬, 낯선 냄새, 익숙한 풍경… 자연스럽게 떠오르더라고. 굳이 기록하지 않아도 괜찮은 삶, 그저 느끼고 지나가는 삶. 그런 여유로움이 좋았어. 무릎 상태도 살피며 천천히 걸었지.
집에선 아내가 도시락을 싸고 있겠지. 오늘 아침은 김밥일까, 샌드위치일까. 샌드위치 두 개면 적당할 것 같기도 하고. 요즘 아내가 많이 피곤해 보여. 전주와 김제 쪽에 다녀온 뒤로는 아침마다 힘들어하는 게 느껴져. 6월 말에 돌아왔으니 오늘이 7월 1일이네. 돌아온 지 얼마 안 된 거지.
출근길에 아침 김밥을 사먹기 시작한 것도 그쯤이었어. 아마 새벽에 일어나는 게 꽤 피곤할 거야. 어제도 맥주 한 캔 마셨다고 하더라. 속이 안 좋다며 “마시지 말걸 그랬어.” 그러면서도 그 순간엔 괜찮았을 거야. 아마 기분이라도 좀 나아졌겠지.
엘리베이터 문이 닫힐 때 “내 맘이지”라고 장난스레 말했어. 그 순간 어스름하게 빛나던 태양이 산 뒤에서 떠오르던 중이었지. 돌아와 똥봉지를 버리고 현관 앞에 서서 바라본 태양은, 이제 완연히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고.
모든 걸 다 해낼 수는 없어. 완벽이라는 것도 결국 해석의 차이일 테고, 부족함도 그저 내가 받아들이는 방식일 뿐. 우리 각자가 채우려는 틈, 그 사이사이에 물이 흐르듯이. 물이 흐르며 틈을 메우고, 돌을 닦고, 길을 내듯이. 인생도 그렇게 흐르는 게 아닐까. 잔잔한 물 위를 떠가는 배, 바닥을 적시는 물살, 또 물길이 빠른 급류들… 다 있지.
다양한 물의 흐름처럼 마음도 그렇더라. 어느 날은 풍랑이 치고, 또 어느 날은 잔잔하고. 내일을 떠올리며 다시 길을 나서려는데, 아내가 다가와 안아주고 오늘은 뽀뽀도 했지. 가슴에 와 닿는 감촉, 살짝 마른 입술의 느낌까지 생생하게 남아. “좀 쉬어”라며 건넨 말도 기억나.
대수시 오르막을 오르다 문득 시계를 봤는데, 5시 56분이더라. 놀랐지. 6시까지는 집에 도착해야 샤워도 하고 여유가 있을 텐데, 이미 시간이 그렇게 흘러 있었던 거야. 내려오면서 무릎에서 ‘뜨그덕’하는 소리가 들렸고, 통증이라기보단 묘한 느낌이 있었어. 그 감각을 느끼며 다시 생각에 잠겼지.
다시 출근길로 나서는데, 이번엔 태양이 정면에서 나를 마주했어. 그 빛을 피해 옆길로 걸었지. 앞에 포크레인이라도 서 있다면 꽤 난감할 뻔했어. 트럭도 무겁게 굴러가고 있었고.
“여보, 금요일엔 우리끼리 조용히 보내자. 좀 쉬자.” 요즘 아내가 배드민턴 친구들과 어울릴 때 내가 빠진 듯한 느낌을 자주 받는 것 같아. 대회에 나가거나, “같이 갈래?” 같은 말 없이 그들끼리 대화하는 모습들.
나는 괜찮은데, 실력껏 어울리는 거 아니야? 가볍게 넘기려 하지만, 자꾸 마음에 여운이 남아. 내가 마음을 썼는데도, 그 안에서 배제된 느낌. ‘그들끼리만’이라는 생각이 문득문득 올라와.
이런 감정들, 결국은 내가 노력한 만큼, 그에 대한 반향—그 울림이 얼마나 내게 돌아오고 충족되는가, 하는 문제일지도 몰라. 굳이 따지지 않으려 해도 마음 한켠은 여전히 서운하지.
“야, 너희는 어떻게 연락 한 번 없냐.” 이런 말 하고 싶지만, 꾹 참고 있어. 관계라는 건 억지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니까. 배우는 거야. 오늘 아침처럼, 굳이 기록하려 애쓰지 않아도 괜찮은 날이 있다는 걸. 마음이 편하고 가벼워졌어.
“괜찮아, 여보. 그래도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잘 해나가고 있잖아.” 어제 채영이가 “아빠, 5분만 만져달라”고 조르더라. 등을 쓰다듬어 줄까 했는데, 막상 나온 말은 “야, 소파에서 자지 마. 자세 망가져.” 그랬더니 아침에 마지막으로 본 모습은, 소파 위에서 뒹굴며 “안 고맙습니다” 하더라. 그래도 푹신한 소파 위에서 뒹군 게 몸엔 좋았을까?
왠지 더 편해 보이긴 했어. 구겨진 소파에 몸을 맞추고 자는 모습, 편안해 보였지만 몸엔 좋진 않아 보여. 그래서 자꾸 말리게 돼. 어제도 잠들기 전, “여보, 다음부턴 우리 돌아가면서 채영이 재우자”고 했지. 여보가 “혼자 하면 안 돼?” 하고 되묻더라.
그래서 아침, 현관문 앞에서 배웅 나온 아내에게 말했어.
“여보, 오늘은 회 먹을까?”
“왜, 회 먹고 싶어?”
“그냥… 지영이랑 먹었을 때 좋았잖아. 한 번 더, 그 느낌을 느끼고 싶어서.”
그리고 말했지. “정이 잘 때도, 5분씩 돌아가며 함께하자.”
여전히 태양은 뜨겁고, 카메라가 없기를 바랐어. 아직은 이 상황이 낯설거든. 없는 것 같긴 한데, 어쩌면 억울할 수도. 그래도 받아들이게 되겠지.
세상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라이브한 삶을 살아. 가볍게 살아가려 할수록, 그 속에 더 많은 여운과 고요함이 들어오는 것 같아.
뭔들 아쉽지 않을까. 뭔들 말하고 싶지 않을까. 어떤 주제든 꺼내고 싶은 마음이 있어. “나 여기 있어. 나 괜찮지 않아.” 그 말을 하고 싶어진다. 우리 모두 그런 거잖아. 다 살리진 못했지만, 그 감정들, 그 순간들은… 다음으로 이어지는 계약처럼. 그래, 수육이나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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