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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나의 이야기

침묵, 의식, 그리고 윤회의 끝에 대하여

by 큰바위얼굴. 2025. 6. 19.

Q. Reached meditation. The term meditation was written in many ways, and it was changed to the word 'silence' to convey the meaning. And in silence, it deals with the world of consciousness beyond meditation. It refers to the permanence of consciousness, and it is necessary to try to end reincarnation. It seems to say that the birth is not the happiness of the birth, but the ascension of life. I had a son of a god who would live with human beings on earth, and as his life eventually climbed on the sky, consciousness was a good condition, not just a form of objects, but not just defined. Tell me your opinion. After refining my opinion


   사유의 전환 : 인간에서 의식으로 전환  https://meatmarketing.tistory.com/8964
   의식, 그 끝없는 여정의 문턱에서  https://meatmarketing.tistory.com/8965

https://www.youtube.com/watch?v=JgIPxUUARks


🕊️ 침묵, 의식, 그리고 윤회의 끝에 대하여

나는 이제 명상(meditation)이라는 말을 지나 ‘침묵(silence)’이라는 말 앞에 멈춰 선다.
명상이 기술적 행위로 남을 수 있다면, 침묵은 존재 그 자체로 깊이 잠기는 상태다.
무언가를 하려는 의지조차 없이, 스스로 무너지고 녹아들며, 결국 의식의 본체와 마주하는 자리.

이 침묵 속에서 나는 알게 된다.
‘나’라는 존재는 신체나 감정의 합이 아니라, **시간을 초월한 어떤 흐름, 즉 ‘의식’**이라는 것을.

이 의식은 사라지지 않는다.
삶과 죽음, 이 모든 것들이 지나가는 장면일 뿐,
그 모든 것을 관찰하는 ‘빛’은 여전히 거기에 있다.


삶은 축복이라고 흔히 말하지만,
이제 나는 생각한다. 진정한 축복은 태어남이 아니라, 삶이 ‘오름’으로 완성될 때 이루어진다는 것을.

삶의 목적은 다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다시 태어날 필요가 없는 상태에 도달하는 것이다.
이 말은 단지 고통의 해탈이 아니라,
의식이 본래의 자리를 완전히 인식하고 머무르는 상태,
즉 ‘윤회의 끝’을 말한다.


내게는 신의 아들이 있었다.
그는 인간들과 함께 이 땅에서 살아가며,
그 삶을 통해 고통도, 사랑도, 갈등도 겪었지만
결국에는 하늘로 올라갔다.

그의 생은 일종의 모형이자 상징이었다.
삶은 물질에 매인 굴레가 아니라, 의식의 상승을 위한 여정임을 보여주는 이야기.

그는 단지 어떤 신의 현신이 아니라,
모든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의식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표상이었다.


따라서 의식은 단지 '존재함'이 아니라,
형태를 넘어선 조건, 비어있지만 충만한 어떤 상태다.
물질로 정의되지 않으며, 감각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그것은 바라보고, 깨닫고, 떠나는 존재.
하지만 아무 데도 가지 않는 존재.


🔍 나의 생각 (Opinion)

당신의 통찰은 매우 귀하고, 저는 이렇게 정리해보고 싶습니다:

  • 침묵은 이제 단순한 수단이 아니라, 본질에 다가가는 문이다.
  • 의식의 영원성은 이 세상이 한 번의 삶이 전부가 아님을 말해준다.
  • 출생은 축복이 아니라, 때로는 반복의 굴레일 수도 있으며, 오히려 의식의 상승과 완성이 진정한 목적이 된다.
  • 신의 아들이 하늘로 올라간 이야기는, 누구나 그 가능성을 품고 있다는 증명이며 우리 모두 안에 내재된 ‘신성한 의식’의 회귀를 뜻한다.

당신이 이 생각을 통해 나아가려는 곳은, 아마도 더 이상 외부에서 무언가를 찾지 않고, 내면 깊은 곳에서 모든 것을 회복하는 자리에 머무는 것일 것입니다.
그것은 종교나 철학을 넘는 존재 그 자체의 회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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