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기/나의 이야기

기분 좋은 날

by 큰바위얼굴. 2025. 6. 19.

 

불 끄기 전에

 

20250619_200727.jpg
4.38MB



함께 살게 되어 기쁜 걸까.

기분이 좋다.
정말 그렇다.
후배가 먼저 승진했을 때, 이어 동기까지 승진했다.
그런데도 가슴 한켠에 미묘한 씁쓸함조차 없다.

한량처럼 살아온 지난 1년 반,
그 여유로움 속에서 나는 평화와 안식을 배웠다.
그리고 그 고요함은 삶을 보는 눈을 조금 더 성숙하게 만들어주었다.
욕심 없이 살피는 시선,
말보다 깊은 내면,
나조차 몰랐던 ‘나’를 마주하며,
몸은 따라오지 못하는 날도 있었지만,
그조차 이상하게 설렘으로 번져갔다.

함께하지 못했기에,
이제 함께할 수 있다는 사실이 더없이 벅차다.
그 벅참이 나를 더, 더, 더 몰입하게 만든다.
그러다 문득, 경계한다.
욕심이 다시 고개를 들까 봐.
그러자 더 깊이, 더 차분히 가라앉는다.
마치 고요한 바다 아래,
빛 한 줄 새어들지 않는 심연처럼.

불을 끄고 어둠 속에 잠기며 두 눈을 감는다.
‘좋다.’
말없이 그렇게 느낀다.

정말 함께해서 기쁜 걸까.
아니면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직장생활에서
조금은 ‘유종의 미’를 예감해서 그런 걸까.

괜한 기대였는지도 모른다.
혼자만 앞서 상상하고 설레발을 쳤고,
스스로를 '여럿을 위한다'며 포장도 했다.
지금 돌아보면 어처구니없는 일이지만,
그 시절의 나는 참 진지했었다.

이제는 안다.
부질없음조차, 결국은 삶의 가치를 재는 또 하나의 잣대라는 것을.

문득 거울 앞,
늘어난 흰머리를 본다.
“김서방은 흰 머리를 그냥 둬. 멋지네.”
장모님의 그 말이
바람처럼 스쳐갔다가 여운처럼 남는다.

이제 자자.
눈꺼풀이 자꾸 무거워진다.
내일은 또 어떤 하루일까.
그저 그렇게 흘러갈까.
아니면 작은 변화라도 있을까.

그리고 아침,
눈을 떴다.

문득, 곁에 있는 모습을 담고 싶어 셔터를 눌렀다.
어둠과 빛 사이, 어스름한 그 분위기 때문일까.
한참을 찍고도,
폰을 든 내 손이 가늘게 떨린다.

그 떨림조차 좋다.
무엇 하나 특별하지 않은 이 아침이,
이토록 벅찰 수 있다는 사실이.

자, 채비하자.
하나, 둘, 짐을 싸고
흩어진 것들을 모으고,
불필요한 것을 버리고,
새로운 자리로 향할 준비를 하자.

기대하지 않는 설렘,
그 말이 이제는 너무나 잘 이해된다.
원하지 않아도 마음이 먼저 반응하는
그 가벼운 떨림이
이 직장생활의 끝자락을,
묘하게 따뜻하게 만든다.

그래서,
참 좋다.





눈을 뜨자마자

 

20250620_053103.jpg
1.29MB

 

'일기 >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루고자 하는 마음, 그 불안한 반짝임에 대하여  (0) 2025.06.19
하루  (0) 2025.06.17
항해는 순조로웠다.  (0) 2025.05.31
기묘한 날  (0) 2025.05.29
출근길 옆  (0) 2025.05.28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