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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우리가족 이야기

연못풍경에서 피어난 정(情)

by 아리빛 하나 2026. 4. 30.

"여보, 오늘 민턴 친구들이랑 번개팅 어때?"

"그럴까?"

세탁기가 고장나서 수리할 지, 중고품을 살 지 톡을 주고 받는 중에 얘기를 꺼냈다. 그렇다. 오늘은 민턴을 치지 않는 날, 그러므로 이벤트를 생각하는 날. 그런 마음으로 하루의 마무리를 하고픈 날이기에. 출발이 좋았다.

서희와 함께 강아지 산책 겸 계란을 사러 싱싱장터에 갔다.


강아지와 산책하던 중에, 장보고 나온 서희를 담았다. 멀리서 봐도 아름다운 그녀, 내 마음에 들어온다.



19:00
번개팅 시작!


19:23
"응, 응. 그래. 종원아, 집에 일 생겼다고 하고 좀 일찍 오면 안 될까?" 라는 말이 무색하게 땀을 뻘뻘 흘리며 도착한 종원. 다행히 많이 늦진 않았다.

 

제일 먼저 도착한 건 지숙이와 현미였다. 손에 들린 봉투에서 살구색 병이 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살구맛 소주야. 요새 이게 유행이래."

"살구맛이요?" 다들 고개를 갸웃했다.

"한 번 마셔봐. 의외로 괜찮아."


서희는 두 손 가득 들고 나타났다. 셀러드 한 통, 잡채 한 그릇. 묵직한 자태였다.

"나 혼자 다 만든 거야, 이거." 서희가 가슴을 폈다. 잡채는 며칠 전에 해놨긴 했는데, 맛은 괜찮을 거야.

 

푸라닥 치킨마요. 처음 시켜보는 메뉴였다.

"이거 처음 먹어보는 건데," 성호가 신발 주머니를 뜯으며 말했다.

"어때?"

한 조각 집어 든 사람들이 거의 동시에 눈썹을 올렸다.

"오, 이거 맛있는데요?"

"마요 소스가 이렇게 들어가는 거야?"

푸라닥이 그날 저녁 가장 빠르게 동이 났다.

 



그때였다.

어둠 속에서 낯선 얼굴들이 불빛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보영이 딸 예원이와 지숙이 딸 민솔이, 두 아이가 수줍게 고개를 끄덕이며 나타난 것이다.

"어머, 왔어?"

"깜짝이야!"

어머니들이 손을 내밀었고, 아이들은 그 옆에 나란히 서서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잠시 후 자전거 소리가 들렸다.

유정이 아들이 자전거를 세우고 수줍게 손을 들었다. 지나가다 들렀다는 표정이었지만, 눈빛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어머니를 향해 곧장 걸어갔다.

"왔어?" 어머니가 치킨 한 조각을 쥐여줬다.

아들은 수줍은 듯 아무 말 없이 받아 먹었다. 자, 포즈 라는 말에 어머니 뒤에 서서 자세를 잡는다. 놓칠 새라 카메라에 얼릉 담았다.

1 Pick

 

현미가 딱딱하다며 성호에게 선물로 준 노가리.

안주가 다 떨어져서, "이거 구워 먹을까?" 라며 의견을 나눴고, 용돈 주께 하는 말과 함께 영탁이 운동 가는 길에 불판을 가져다 주었다. 지글지글. 연못가에 고소한 냄새가 퍼졌다.

"이거 먹을 수 있어?" 반신반의하며 집어 든 사람이, 씹더니 말했다.

"어, 맛있는데?"

"방금까지 딱딱해서 못 먹겠다더니." 성호가 웃었다.

쥐포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살구맛 소주가 돌고, 셀러드와 잡채가 비워지고, 쥐포 연기가 흩어지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연못 수면 위를 가로질렀다.

연못풍경은 그날 저녁, 

부모가 자식에게, 자식이 부모에게 건네는 말들이 — 말이 아닌 형태로 — 조용히 쌓이는 곳이었다. 치킨 한 조각, 불판 세팅, 자전거를 세우고 들어오는 발걸음, 쥐여주는 손.

그런 것들이 모여 만드는 온도가 있다.

그게 정(情)이라는 것을, 연못 위 가로등 불빛은 아무 말 없이 알고 있었다.


화장실 다녀오는 길에 많이 보던 아이들과 다시 마주쳤다.


돌아와 재밌어 보이는 공간에 들어서기에 앞서, 찰칵!


뒤를 돌려 내 모습도 찰칵!

 

저녁 밤 공기는 따스했다.

아니, 원래 따스했는지, 취기가 그렇게 느끼게 한 건지, 아무도 굳이 따지지 않았다. 살구맛 소주가 몸속을 돌고, 치킨 기름이 손끝에 남아 있고, 불판 위 쥐포 냄새가 옷깃에 배어 있는 채로 — 그냥, 좋았다. 충만했다. 이 밤이 조금만 더 길었으면 싶은 종류의 충만함이었다.

연못 위 가로등은 여전히 수면을 흔들고 있었고, 사람들은 자리를 털고 일어서면서도 발걸음이 쉬 떨어지지 않았으리라.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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