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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우리가족 이야기

'내여자'에게 보낸 편지

by 큰바위얼굴. 2014. 8. 22.

거짓말 한 아이들(http://blog.daum.net/meatmarketing/1772)이 불거졌다. 10권 안팎 쌓인 첫째 아들의 수학교재를 보면서 과거에 답지 보고 베낀 사실에 대해 또다시 베끼지 않았다고 거짓말 했다는데, 베낀 건 과거의 거짓말이요, 베끼지 않았어요는 현재의 거짓말인데 그것으로 부부간에 날이서고 감정이 격해진다. 오늘은 3일차. 아내의 카톡 메시지에 대해 e메일로 답변한 글이다. 김성호.

 

 

내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내용은...

 

   "누구의 잘잘못이 아니야" 라는 말과 "누구를 탓하기 위해 꺼내거나 부모로서 자식을 위한다고 하는 어떤 입장을 위해 자식을 나무라는 것은 아니야" 라는 말이다.

 

   너는 어머니로서 그것 밖에 안된다거나 너의 한계는 역시 그 정도야 라고 하는 말은 절대 아님에도, 자꾸만 니탓내탓을 하는 듯하다.

 

 

 네가 얼마나 훌륭한 어머니인지, 주부인지, 교육자인지, 내조자인지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충분히 전달될 것이라 믿는다.

 

   그런데, "그걸 어떻게 알아?" 라는 반문을 듣게 되고 한숨이 나온다.

 

   말로하지 않아도 말을 놓쳤다해도 심지어 어머니가 우는데 아는 척하지 않는 아이라 해도 그 마음이 어디 갈까 싶다.

 

 

 비록 내 말이 착각일 수 있을 지언정 그렇지 않다고 여기는 순간(마치 네가 쓴 글처럼) 참으로 재미없겠다 싶다. 그래서 미안하고 안타깝다.

 

 내가 부족한 면은 분명히 있다. 잘 못하는 사항이 있다. 기분에 따라 행동하기도 한다. 묵묵부답하는 습관도 있다. 이불에 코를 파묻고 책에 눈을 꽂고 니가 말하는 것처럼 딴 짓을 할지언정

 그래도 네가 옆에 있음에 항상 감사한다.

 

   내가 회피하거나 눈을 감는 이유는 그렇다. 멍해지고 갈수록 헝클어진 머리속, 도대체 뭣뭣을 하길래 이렇지 하는 생각이 맴돌고 나의 말과 하고싶은 말이 헛돈다.

   귀에서는 윙윙거리고 두뇌는 멈추고 그러면 정체된 무게감에 눈은 감기고 눕고 싶어진다.

 

 여보,

 너와 나의 차이가 있다. 내가 볼 때 너는 예의바르고 예의를 중시하며 누가보지 않더라도 바른 생활을 강조한다.

 그에 비해, 나는 유연한 사고를 중시하고 누가보든 보지않든 내가 바라는 길을 가고자 한다.

 나는 나의 삶과 누리는 행복을 즐긴다. 간혹 흘겨본 아내의 예쁜 얼굴에서 "제가 내 아내가 맞어?" 하는 순간도 있고, 뭔가 하고자 할 때 당연스레 올려진 허리의 굴곡에서는 충만감을 느낀다.

 

 교감은 따따따로 해결될 일이라기 보다는 그럴 수 있다는 여지를 열어두고 잘못에 대한 반성과 뉘우침, 그리고 재발방지 방향으로 가닥을 잡으면 좋겠다.

 영록이의 인생을 책임질 일이 아니라 영록이의 인생은 본인이 책임질 수 있도록 지도하고 안내해주고 보여주며 체감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이 부모라고 본다.

 나 또한 유혹에 넘어가 아빠의 지갑을 열었던 적이 있고, 몰래 숨어서 먹어본 적도 있으며, 기억나지 않는 부정한 행동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싶다. 그런데..

 그 모습으로 인해 현재의 내가 있는 것이고 앞으로 나아갈 지침이 된다고 본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는 기준이 된다.

 나의 자식 또한 그럴 수도 있다는 여지는 열어두되, 잘잘못의 체벌 보다는 잘잘못한 이유와 잘잘못할 때의 마음, 그리고 재발방지하기 위한 자세와 환경을 만들어주는 일

 그래서, 그때 너무 흥분했었지. 학원을 끊고 교재도 끊고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난 해보지 못했으니까. 너무 좋은 의견이고 아이의 홀로서기에 굉장히 도움이 된다 생각했었다.

 

 이렇게 이야기를 풀어나갈 때에 허리가 아파 눕겠다는 아이의 말과 그럴수도 있지 하는 아빠의 말은 "아이와 함께 거짓말하지 않기"를 이야기 하는 순간 별거로 여긴다.

 물론, 너의 말처럼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 라는 말에 공감을 한다. 맞다. 그러지 않았으면 더욱 좋은 일이다. 그렇지만 그럴 수 있는 아이이기 때문에 더 소중할 수 있지 않을까?

 

 살아가면서 긴장된 순간, 결정의 순간, 판단해야 하는 순간순간이 닥칠 텐데 그때 마다 자신을 돌보지 못함은, 그리고 "부모와 함께 거짓말하지 않기"를 이야기 하는 순간을 더 집중하기 위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데, 이런 나의 말에 상처입는 너를 보니 내 잘못과 실수를 알게된다.

 

 서희는 상처 받기 쉽고 (날카롭고 지적인 모습과는 달리) 감성이 풍부한 (영화보며 우는 등) 여자다.

 그러하다고 대하면서 "어! 요즘 생활관이 바뀌었나봐" 하는 말을 듣는다. 그런데, 사실 내가 바뀐 것이라기 보다는 너의 받아들임이 달라진 것이 아닐까 싶다.

 물론, 나 또한 빠르게 걷던 걸음을 일부러 느리게 걷고 샤워하지 않았던 긴박감을 샤워를 통해 몸을 차갑게 식히면서 가라앉히고

 일의 주어짐에 강약을 조절하며 어차피 해야할 일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도록 기한은 관리하면서 나 자신을 믿고 내버려 둔다.

 

 하루가 하루 같지 않기를 바라면서 가끔 윗층 배란다에 올라가 토닥토닥 거리기도 하고 어쩌면 그런 여유와 영위 속에서 변화를 느꼈었나 생각해보았다.

 

 여보,

 내 글은 "너와 나의 거리감을 줄이기"를 위한 것과 "교감을 늘리고 행복하기"를 위한 것이라는 말.

 내가 부족한 부문과 네가 쉬이 상처받는 말과 행동들에 대해 나 스스로 바뀌도록 노력해야지 하고 다짐해보면서,

 또한 가족이벤트 라는 폴더가 있는 것처럼

 "우리 이번주에 어디 갈까?" 하는 가족여행과 벗어남에 대한 말을 자주 하게 된 것처럼

 땅에 메이지 않고 일에 치우치지 않도록, 그리고 혼자 즐기는 책이나 기타등등에 쏠리지 않도록

 "우리 영화 볼까?", "우리 치맥 할까?", "우리 모레놀이하러 바다 갈까?" 말한다.

 

 여보,

 행복은 오는 것이 아닐 것이고

 상처는 쉽게 오는 것인데

 난 너를 이렇게 사랑하고 존중하는데

 너는 조금 표현이 서툰가 보다.

 나와 같은 걸 바라면서 조금 다른 시각에서 조금 다른 결론을 내리고 어쩌면 긍정 보다는 체념과 맺음으로 끝내려하는 걸 보니 말야.

 

 여보,

 "내가 잘 할께" 라는 말은 내가 너에게 주는 선물이라는 것을

 "내가 잘 할께" 라는 말을 굉장히 듣고 싶어도

 "내가 잘 할께" 라는 말 속에 내 마음과 미안함, 그리고 약속까지 포함되어 있음을

 

 여보,

 내가 잘 할께. 아니, 우리 잘하자. 서로 아껴주고 칭찬해주고 함께 뭐할까 즐거운 고민을 하자.

 그렇게 살기도 아까운 시간이잖아. 그렇지?

 

 

    교육방식에 대해, 선행학습에 대해, 학업태도와 아이들이 느낄 학습과 바라는 마음을 보는 아빠의 생각에 대해

    정해진 것을 따르리라 하기 보다는

    아이들이 마음껏 본인들이 생각하고 바라는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해주는 방향으로

    그리고, 그런 아이들의 자라남을 보면서 "우리 참 잘 살았다. 그치?" 하는 말로 마감할 수 있도록

 

    나의 부족함으로 인해 너에게 상처준 모든 것에 대해 용서를 빌께.

 

 

 한 여자의 남편이요, 동반자요, 일꾼이면서 리더로서 아이들의 지침이 되도록 도움자로

 이 글을 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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