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비를 좋아하는 이유
비가 내릴 때는 여러 모습을 보여준다. 소리없이 내리는가 하면 우르릉 쾅쾅 큰 소리를 내기도 하고 어느샌가 옷이 흠뻑 젖어들게도 한다. 첫 눈을 보고 뛰어나가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처럼 어떤 형태의 비가 오더라도 내 마음은 젖어든다. 아마 너두 그렇겠지.
비는 일상을 깬다. 아, 내가 살아는 있구나 하는 감상을 불러온다. 그래 열심히 살았구나 만족한다. 강아지처럼 뛰어나가고 싶어진다. 이유없이. 반갑다.
출처 : http://m.blog.daum.net/paion03/129?tp_nil_a=1
“아빠, 또 비볐어요?”
오늘아침, 영탁이의 첫 인사말이다. 처음엔 좋아하더니 십여번 반복하니 이젠 싫증을 낸다. 그런데 이와 똑같은 말을 이미 아내에게서 들었다. 어쩌면 치형이도 일어나서 똑같은 말로 반응할지도 모른다.
비빔밥을 좋아하는 교수님이 계신다. 매주 토요일 그분과의 수업이 끝난 후의 점심식사는 매번 비빔밥이다. 비빔밥은 고른 영양식이라는 게 그분의 지론이요, 암 예방에 이것만한 거 없다고 하신다. 일면 동의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 비빈다. 비비고 있다. 아마 100% 공감했었나 보다.
이처럼 매번 비빔밥을 즐겨먹는 교수, 가족들의 싫증에도 불구하고 종종 비빔밥으로 아침을 대접하는 아빠, 비가 오면 선뜻 반기는 마음은 마치 삶이 정체된 듯한 반복적인 일상 속에서 접하는 아주 흔한 일이다. 먹고 일하고 싸고 잔다. 본질은 변하지 않았지만, 만약 여기에 의미를 부여하지 못했다면 누구나 싫증과 짜증을 내세울지 모른다.
동봉한 시집은 하루 8시간 중 4시간만 일하기로 근로계약을 하고 입사한 직원이 선물로 준 것이다. 길지 않아서 좋다. 곱씹을 수 있어 더욱 좋다. 짧은 문장 속에 내 삶이 투영되니 더더욱 좋다. 일상이 지루하거나 따분해서 비를 맞고 싶다면 그러면 된다. 자기 자신이 좋아하는 걸 그냥 한다. 이 정도 쯤이야. 이해 못하는 동무들과 선생님은 당연하다. 누군가는 집안일로 누군가는 교우관계로 누군가는 게임으로 누군가는 먹을 생각으로 그리고 대부분의 누군가는 아무생각없이 비를 맞이 할 것이다.
비를 좋아하는 이유는 너무 외로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내의 품에 안기는 걸 무척 좋아한다. 그렇다고 애인 가슴을 너무 좋아하지는 말고 네가 잘하는 대화로 풀어내면 좋겠다. 외로움은 나누고 즐거움도 나누고 나누다보면 외로움은 깍아지고 즐거움은 배가 된다고 한다. 인생길, 다채로움이 있기 때문에 즐겁지 아니할까! 외로움도 즐거움도 막연함도 막막함도 괴로움도 걱정도 아픔도 고통도 모두 받아들이고 담대하게 대하면 좋겠어. 사실 숨길 일도 아니고. 먼 미래에 대한 준비 때문에 현재의 고교시절과 동무들, 선생님들과의 삶이 충분히 즐거울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놓치지는 말기를 바래. 더구나 특정인을 좋아하는 마음이 크다면 특정인 보다는 눈여겨 보지 않았던 친구에게 말을 걸어보는 노력도 삶의 다채로움을 더할 거야.
뻔하다 라거나 반복적이라서 지루해 라고 말을 하려면 매일 비빔밥을 비벼놓고 (왜 그럴까?) 비빔밥을 즐겨 먹는 아빠를 떠올려 봐. 사실, 밥과 반찬을 따로 먹나 비벼서 먹나 매 한가지인 것을 혹시나 받아들이는 차이가 아닐는지. 영탁이가 비빔밥을 싫어한 면은 혹시나 먹기싫은 반찬이 다수 포함된 것은 아닌지, 그것도 아니면 이유야 어찌 되었든 비빔밥 자체에 그렇게 큰 이유를 붙이지는 말자.
한 번 떠올려봐.
아침에 일어나니 반찬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곰곰이 보다가 그래 비벼먹자고 결정한다. 비빔 그릇에 밥을 떠넣는다. 한 주걱, 두 주걱. 아! 치형이. 그래서 반 주걱 더 넣고. 아! 영탁이. 그래서 한 주걱 더 넣고. 에이, 알아서 먹겠지 하면서 4인분에 딱 맞게 비빈다.
아빠가 비빔밥을 좋아하는 또다른 이유는 밥과 반찬이 어우러진 비빔밥은 한 공기가 한 공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절대적인 밥량을 줄일 수 있다. 그래서, 지금 배가 고파. 아침 9시. 공복감이 좋은거래 하는 걸 믿어보는 중이다. 그래, 건강검진 했더니 세 자리가 아니라는 사실에 만족했었지. ㅎㅎ
엄마가 보여준 카톡 메시를 본 지 이틀 정도 지난 아침에,
아빠가.
2018. 7.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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