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사람.
살아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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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고 숨이 돌아오면서 다시 한번 기회가 주어졌음에 감사하다. 단지 눈을 뜬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기쁨이 차오르고,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면 반갑다. 살아있다는 걸 느끼게 해준 신호이기 때문이고, 살아가는 이유이자 목적이 되었기 때문이다.
어느 곳 하나 온전치 못하지만 점점 또렷해지는 세상을 보며 참으로 다행스럽다고 여긴다. 빈 자리가 아쉬워 눈물로 지세우길 몇 십년, 이제 잊을 만도 하구만 찰나에 불과했던 순간순간들이 가슴을 옥죄인다.
뭘 그렇게 바란 건데, 뭘 그리 원했건데 그 찰나의 순간들에서 내가 선택한 수많은 잘잘못들이 내 빈 자리만큼이나 빈 공간처럼 허전하다.
어느새 함께 늙어버린 해나와 예티. 줄을 잡고 같이 뛰던 때가 그리워질 때, 낯선 강아지들을 보면 헥헥거리며 달려들던 모습이, 바닥에 코를 박고 킁킁거리면서 다니던 갈색 빛에 하얀 털이 어울려 해가 나듯이 따뜻함이라는 이름을 지은 해나, 새하얀 털이 귀엽고 예뻐, 먼 나라의 설산에 있는 설인처럼 이름을 지은 예티. 우리 가족에게 온 첫날, 밤새워 이름을 지으면서 재고 빼고 넣고 밤새 이름을 지었던 순간이 떠오른다.
다리를 한껏 올려 헬스 기구에 몸을 맡긴 채 스트레칭을 하는 늙은 사람, 두런두런 얘기를 하며 옆 사람과 걸어가는 사람들, 겉보기엔 나만치 젊어 보이는 뛰어가는 사람들.
바닥에 움푹함 때문인지 뒤에서 달려와 쌩하고 지나가면서 놀래키는 자전거, 헥헥거리고 이제 돌아갈 길만 남았다라며 안심을 주건만 빠진 혀는 들어가질 못한 채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모양이 정말 많이 더운가 보다 했던 그 새벽, 5시 반이면 어김없이 일어나 주섬주섬 양압기를 챙기고 닦고 널어놓고, 해나와 예티의 물그릇을 다시 채우고 옷을 입고 현관으로 향하면 졸래졸래 쫓아오는 그때, 벤치에 앉아있는 노인은 저만치 앞에서 걸어오는 노인과의 짝. 하염없이 기다리는 모습이, 그 나이가, 앉아있는 품새가 많은 시간이 흘렀음을 알게 해 주고 그럼에도 안쓰럽거나 딱한 모습이라고 느껴지지 않는 건 아마도 그가 앉아있는 벤치로 다가오는 그녀 때문이겠지.
빈 곳, 빈 구석. 지금 쏟아붓는 정 만큼이나 깊고 넓게 패일꺼다.
"22층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온갖 잡생각이 나더라도 다시 눈을 뜨고 마주한 세상이, 내 눈에 비친 세상이 한낯 찰라와 같이 압축된다 하더라도 수없이 펼쳐진, 펼쳐왔고 나아가 그 삶의 순간순간들을 단 하나의 점으로 찍더라도 살아있음에 감사하다. See U.
> 골프연습장으로 가는 차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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