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시 50분.
금요일.
일어나면서 오늘의 요일을 떠올려 본다. 금요일.
평소와 다른 점은 이불과 옷과 빨랫감들을 챙겨야 한다는 거 그 생각에 서둘러 일어났다. 땀이 흠뻑 젖은 침대 커버를 놓고 잠시 고민하기를, 빨기로 하고 베개 커버와 침대 커버를 벗긴다. 주섬 주섬 빨래를 담으려고 하는 그때 뭔가 비어 있다.
큰 쇼핑백, 보통 때 사용하던 빨랫감을 담아갔던 쇼핑백이 보이지 않았다.
옷가지만 챙겨서 왔던 탓이겠지. 2주간의 병가 그 전에 장인상, 그로 인한 바빠서 짐들을 수북히 많이 쌓아 가지고 왔고, 다시금 넉넉한 짐 넉넉하게 쌓아왔기 때문일까? 특히나 옷, 땀에 젖은 옷이 생각보다 많이 나와 있었다.
잠시 떠오른 생각이 있었지만 스쳐 지나가며 보니 아니나 다를까? 하얀색 강아지, 하얗게 부풀린, 내가 볼 때 원숭이를 닮은 뽀송? 아무튼 그런 이름의 강아지가 5시 50분 산책을 나오다니 주인이 강아지를 참으로 사랑하는가?
여름이니까, 뜨거우니까, 사랑하니까, 기꺼우니까.
아닌들 그런들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점차 변해가고 있음을 느꼈다. 하나를 알고 둘을 알게 되고, 하나의 시작이 둘이 되고 둘이 다시 하나가 돼야 될 때 느끼는 어떤 그런 파장들, 그렇다면 가만히 머물러 있을 때 갖게 되는 그 힘이라고 할까? 에너지 혹은 머물고자 하는 의지, 또는 그저 가만히 있는 어떤, 가만히 있고자 하는 의지, 그것도 좀 말이 아리송하긴 하나 가만히 있지 못한다라고 전제한다면, 가만히 있고자 하는 건 의지요 힘이요,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무엇 하나 다르지 않다 운전하고 운전하여 지금 어느 작업장을 향해 가고 있는 지금의 내 모습이 다시 몇 시 몇 분에 일이 끝나고 세종시로 돌아가는 내 모습과 다를 바가 뭘까?
저녁엔 뭐 먹을까?
뭐 해주고 싶어? 뭐 먹고싶어라고 묻는 아내의 그 마음이 돌아가 치형이와 영록이와 혹은 영탁이가 와 있는 그 반가움이, 어떠한 기대와 어떤 바램이, 이루고자 하는 의지와 바라고 바라는 어떤 소망이, 그래서 니 꿈은 뭐니 라고 하는 물음이, 살아가려고 살아 보려고 죽지 못해 혹은 마지못 해 혹은 치열하게 혹은 뜨겁게 가슴이 뛰게 살고자 하는, 어떠한 형태의 마음과 모습과 행동이 다르지 않다.
저 높이높이 우주 밖에서 볼 때 지구는 하나의 티끌, 우주에서 일어나는 일을 볼 때 나의 존재는 티클이나 점조차 되지 못한다.
만물은 흘러가는 대로 흘러가는 대로 순환이 될 뿐, 여기에는 어떤 존재로서의 의미나 의의를 찾을 필요는 없다. 하다 보니, 있게 되어보니 흘러가는, 다만 한 가지는, 있게 되었으니 의미를 찾게 되었고, 쫓게 되었고, 부여하게 되었고, 그로 인한 자각이나 생각 등 어떤 것들이 다시금 생성되었고, 그 생성된 것이 다시금 무생물을 혹은 반복적인 어떤 행위에 AI라는 이름으로 붙은 인공지능이 태동하고 있다.
이는 생명이 창조된 그 바탕의 근원이 무한히 반복되면 뭔가가 된다리는 사실을 말해준다. 순환의 고리에 조금 더 의지를 갖는다고 할까, 혹은 개체로서의 의미를 갖는다고 할까, 그 개체로서의 부여된 의미를 갖기 위해 끊임없이 탐구하고 지향하고 나아가려고 한다.
헌데, 없이 있어 우주가 탄생되었다고 했을 때 우주의 이면 바탕에는 없이 있게 되었으니 다시 없이 돌아가기 싫어 할 수도 있는 면이 있고, 있게 되었으니 있기 위해 나아가는 어떤 면에서의 의지 혹은 그 순환의 고리들이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논리. 있게 되었으니 벌어지게 된 것들, 나는 죽는다, 세상의 만물은 생성되고 소멸되고 반복되고 순환하고, 산소를 내뿜는 나무에게, 오늘 하루를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나에게,
세상을 이롭게 하고자 했다.
나에게 앞으로 삶이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나에게, 그리고 나와 연관된 가족과 친구와 지인들에게,
난 결코 성인이 아니다.
감정이 있고, 선과 악이 있으며, 잘잘못이 있고, 반성을 할 줄 알고, 생각을 하며 본능에 맡기기도 하고, 기꺼이 기뻐할 줄 알며 기꺼이 슬퍼 할 줄도 알고, 함께 어울리며 어설픈 면도 있고, 바보처럼 혹은 멍청한 멍청하게 혹은 뻘짓을 하기도 하고, 부러워하기도 하며 욕심도 부리고 그 어느 것 하나,
내가 아닌 게 없다.
내가 논하고자 하는 바는 그래서 라는 면이 아니라 그렇기 때문에 라는 면 또한 아니라는 점이다.
왔다 가는 인생, 돌고도는 인생, 없이 있게 되었으니 살아가는 인생, 감사한 마음으로 세상의 이치와 삶의 방향과 더불어 사는 사람과 충만한 행복감과 짜릿함과 슬픔과 이별, 이 모든 것들이 점점 나이가 들어 가면서 좀 더 진솔하고 가슴 깊숙히 바라봄의 측은지심과 안타까움과 동병상련이 슬픔을 더욱 일깨운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누군가의 삶을 축복한 지는 꽤 되었다.
내가 좋았더라 라는 이기심이 드는 건 왜일까? 그 공간(성당)에 놓인 내 모습이 참으로 참으로 시간이 아깝다 한 적도 있지. 거기에 머물렀던 그 평화로움과 안식은 정처 없이 떠돌고 돌고 돌고 돌아가는 세상을 살면서 가끔씩 맛보는 위안과 평화의 내게 혹은 내가 돌아갈 곳은 분명 정해져 있겠지 하는 화살.
다만 서두르지는 않으려고 한다.
이기적이라고 봐도 좋겠다. 마음 한편에 품었으니 이 또한 이루어질 것이고. 바라면 이루어진다 라는 것을 알려주고 깨닫게 해준 그 바탕에 있다.
있어 없이 있게 되었으니 머물고자 하는 내 마음이 나아가고자 하는 내 마음과 대칭되듯이 나아감의 연속이 삶에 다채로운 수난의 고리를 만들기 위한 동력이듯이, 나아감에 대한 머물고자 하는 그 반발에 대한 고뇌 또한 타당하다.
머무는 것이 어찌 가만히 있는 것이겠는가라는 말처럼 없고 있고는 종이의 앞뒤 면, 앞뒤 장의 면에 불과하다. 있다를 없다를 한 몸인 양 붙어 있되, 서로 다른 방향을 보고 있을 뿐. 그래서 없다구 팔랑팔랑 종이를 앞뒤를 보면 그래서 있어 없어라는 말에 대한 것처럼 달리 볼 이유가 없이 수긍한다.
가만히 있겠다 라는 것이 아니고, 살아감에 있어 오늘 하루를 바라보고 함께하고 그렇다 느끼고 체감하겠다. 도착했다. 주차장 앞에 차를 댈 수 있어서 기분이 좋다. 씨유. 성호.
(참고) Daglo 요약본
금요일 아침의 현실과 고민
- 금요일 아침 이불과 옷, 빨래 챙기기
- 빨래를 담으려던 쇼핑백이 사라짐
- 강아지가 사랑받는 산책을 함
순환의 고리와 인공지능의 의미
- 무생물에서 AI로 변화
- 끊임없이 추구하고 방향을 지향
- 순환과 반복의 의미
삶의 방향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의 즐거움
- 살아가는 인생과 감사한 마음
- 동참하는 슬픔과 이별의 심정
- 달라져가는 삶과 즐거움의 연속
'일기 >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 얼굴을 마주할 용기 (1) | 2024.07.19 |
---|---|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며 (0) | 2024.07.12 |
비둘 (0) | 2024.07.06 |
길 (0) | 2024.07.06 |
생각 (0) | 2024.07.0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