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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어떻게살것인가

밤 11시, ‘쥐뿔도 없는 회귀’를 읽으며

by 큰바위얼굴. 2025. 5.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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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1시, ‘쥐뿔도 없는 회귀’를 읽으며

밤 11시에 깨어났다.
집 안은 적막했고, 창밖은 낮게 드리운 어둠에 모든 형체가 묻혀 있었다.
나는 전날 미처 덮지 못한 책을 다시 펼쳤다.
‘쥐뿔도 없는 회귀’.
차분한 공기와 한낮의 열기를 잊은 밤의 고요가 어우러져서였을까.
글자 하나하나가 더 깊게 마음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그 문장을 만났다.

"돌아오기 시작했다면, 돌아와야 할 만한 일이 벌어진다는 것이겠지."

나는 그 말을 읽고, 한참을 멈췄다.
그 말 한 줄이 뇌리에 강하게 남았다.
마치 오래전부터 누군가 내게 건네려 했던 말을 이제야 들은 듯이.
그 순간, 나라는 인간이 어떤 존재로 이 세계에 서 있는가를 다시 그리게 되었다.

나는 돌아온 것인가, 아니면 새로 시작한 것인가.
혹은 그저 이어온 것인가.
확신은 없다.
하지만 확실한 한 가지는 있다.
나는 돌아와 있고, 그리고 살아가고 있다.
아니, 살아내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어쩌면 충분하다.

그 다음 펼쳐진 장에서는 아주 명료한 한 마디가 적혀 있었다.
"혼자 살 수는 없다."
삶이라는 여정 속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
우연처럼 보이지만 실은 필연이었던 그 기연들.
그 인연 하나하나가 쥐뿔도 없는 내 회귀에 생기를 불어넣었고,
그 만남들 덕분에 나는 오늘의 이 자리에 서 있다.
누구도 이런 식으로 이어지긴 쉽지 않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 단언할 수도 없다.

나는 문득 생각했다.
혹시 이것이 내가 돌아온 이유는 아닐까.
이렇게 탐구하고, 되새기고, 살아 있음을 곱씹는 지금 이 모습이
이미 그 대답인 건 아닐까.

일상에 매몰되지 말아야 한다는 책 속의 경구가 떠올랐다.
우습게도, 나는 일상에서 잠시 비켜섰을 때에야 비로소 ‘돌아봄’을 할 수 있었다.
거기엔 어떤 실수도, 후회도 담겨 있지 않았다.
오히려 그러했기에 지금의 이 진실된 나를 만나게 된 것이니,
그 모든 과정은 감사한 일이다.
돌이킬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도 없다.
그 길이 나를 만들었고, 지금 나는 그 길 위에 있으니.

어떤 사람들은 내 과거를 철없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딱 그만큼의 어리석음과 한계를 품고 있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내가 감히 말하자면,
그런 미성숙의 시간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처럼 뜨겁고도 맑은 마음을 갖지 못했을 것이다.
가슴은 뜨겁게, 머리는 차갑게.
그 말의 무게를 이제는 안다.

가슴을 뜨겁게 만든다는 것,
그건 단지 감정의 격류에 휘말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향한 깊은 이해와 받아들임에서 오는 뜨거움이다.
그것이 일상을 생존이 아닌 ‘삶’으로 바꾸는 것이다.
미생의 삶에서 완생의 삶으로.
이해받지 못해도 괜찮다는 마음,
달라진 나로 인해 달라지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그것이 아마도 내가 이 책을 놓지 못하는 이유일 것이다.

“나가 달라지면서 세상이 변한다.”
이 얼마나 깊고 단순한 진리인가.

비록 나는 위지호연도 아니고, 백소고도 아니며,
무공을 익혀 세상을 뒤흔드는 영웅이 아니지만,
그 허구의 세계 속에서도 나는 나의 진실을 발견했다.
그들의 성장 이야기가 설득의 도구일지라도,
나는 그 어설픈 기쁨 속에서 작은 감동을 받았다.
바로 나의 이야기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득 스스로에게 묻는다.
“너는 원하는 것을 얻었느냐?”

지금 나는, 가로로 잘려진 참외를 치아의 불편함을 무시하며
조심스레 씹고 있다.
그 과정 속에도 삶이 있다.
삶의 결이 스며 있다.

나는,
원하는 것을 얻었다.

"네."      - 김성호 E/ ChatG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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