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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세상보기

각기 다른 세상 속의 나

by 아리빛 하나 2025. 10. 20.

미혹. 정신이 헷갈려서 갈팡질팡하는 것. 뚜렷하지 못한 것. 흔들린 것. 흔적. 여운. 잔상. 그림자. 아련함. 그리움. 안타까움. 감사함. 미안함. 되돌아봄. 되새김. 다짐. 바람. 기도. 언약. 내면. 흐름. 허. 공. . 

치형이 수학여행 준비겸 긴팔 옷을 사러 들른 모다아울렛. 그리고 어머니께 인사차 방문. 대추를 싸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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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기 다른 세상, 
각기 다른 세상.
내가 보고, 듣고, 말하고, 어울리고, 함께하는 이 세상은
어쩌면 각자가 느끼고, 바라고, 원한 대로 만들어낸 세계일지도 모른다.

혹은 반대로, 싫어하기 때문에 더 노력하고 애쓰는 모습들.
그 하나하나가 사실은 제각각이다.

그래서 우리는 부딪히고, 갈등을 겪고, 때로는 확인하며 소통한다.
다르기 때문이다. 같은 것을 보고도 서로 다른 생각을 떠올리고,
같은 이름으로 부르더라도 그 의미는 조금씩 다르다.
결국, 우리는 각기 다른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일하는 방식, 바라보는 시선,
나 자신을 보는 눈길조차 매 순간 달라진다.
누군가가 나를 바라볼 때와 내가 나를 바라볼 때가 다르고,
또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나 또한 같을 수 없다.

불안감, 안온함, 기쁨, 만족감…
그 모든 감정이 뒤섞여 만들어내는 평형,
하지만 그 평형이란 것도 실은 늘 흔들린다.
감정은 들쑥날쑥 요동치고,
때로는 꿈속에서조차 죽음을 맞이하기도 한다.

그건 불편함이 아니라,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한
방책과 노력들이 또 다른 생의 일부로 따라오는 것이다.

각기 다른 세상은 결국, 각기 다른 시선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시선에는 내가 나를 바라보는 방식조차 포함된다.
감정에 휘말리면 온전히 하나일 수 없고,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다르다.

평화롭다.
오늘은, 지금은.
그러나 내일은 또 다를 것이다.
‘없다’라는 말은 어쩌면
입김처럼, 허공에 머무는 존재와도 같다.
마치 죽은 듯 고요하게.

오늘 또한 형형색색, 면면이 다른 인생의 파노라마.
어느 하나를 건드려도 모든 것이 펼쳐지는 무한한 변화의 세계.
야, 이게 정말 말이 되나?
그러니까 인생은 정말 다이나믹하다.

내가 어떤 생각을 하든, 상상하든,
그 모든 것이 가능할 것 같다.
내 생각의 범주에는 한계가 없다.
내가 정하지 않는 한, 한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죽음의 한계를 무릅쓰고도 말이다.
죽음의 한계란 육체의 구속일 뿐,
생각과 상상은 결코 죽지 않는다.
잠을 잘 때조차 의식은 이어진다.
불멸이며, 어쩌면 영원의 조각이다.

현생의 삶은 어쩌면 꿈으로의 여행일지도 모르겠다.
의식은 여러 차례 이어지고,
그것은 이성적 판단이나 선택보다도
잔재, 흔적, 기록된 감정과 더 가깝다.
사실적 묘사나 풍경은 우주 만물이 대신 만들어내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감정’은 인간의 영역이다.

우주의 거대한 법칙 속에서
감정은 아주 작은 입자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만물은 감정을 넘어,
스스로의 리듬으로 돌아간다.
시계 바퀴처럼 째깍째깍,
맞물린 세계가 다채롭지만 조화롭게 흐른다.

우리는 그 흐름 속에서 의식을 시간으로 인식한다.
의식이란 뜻을 세우고 가꾸는 능동적인 행위인 반면,
인식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수동적 작용이다.
자신의 의지와 생각이 들어간 의식,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여 새로이 형성하는 인식.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멀리 바라보되, 관조하듯이.
그리고 동시에 내면을 들여다보며,
아주 가까운 것에 깊이 몰입해야 한다.

감정이란 다채롭고, 변화무쌍하다.
그 흐름 속에는 원소와 원자가 분해되어 남긴
DNA의 코드 같은 흔적이 있다.
의식이 흐른다면, 원자들은 그 의식을 담은
하나의 형상을 이루는 존재다.

존재란 단순히 눈에 보이는 물리적 실체가 아니다.
의식이 있다면, 그것은 ‘있다’라고 말할 수 있다.
상상도 마찬가지다.
형체가 없더라도 우리가 ‘있다’고 믿는 순간,
그것은 존재한다.
신 또한 그렇다.
‘있다’고 믿는 그 순간, 신은 존재하게 된다.

결국 ‘있다’와 ‘없다’는 분리된 개념이 아니라
서로 맞닿은 양면이다.
지금 내가 존재하기에,
나는 머물러 있고, 움직인다.

없는 미래는 없다.
존재란, 단순히 ‘있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없음을 채워나가기 위한’ 과정이다.
우리는 시간을 따라 늙고, 나아가고, 행한다.
행한다는 것은 움직이는 것,
움직임은 곧 생명이다.

그러니 ‘없음’조차도 살아 있는 것이다.
간질간질하게, 좋다.
그리고 문득—배가 고프다.
졸리기도 하네.  김성호.


 > 원문(음성)

다채.m4a
11.98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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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주된 사유는 “존재와 인식, 감정과 의식의 흐름 속에서 서로 다른 세계를 살아가는 자아의 성찰”입니다.
본문을 통해 강조된 바는,

‘같은 세계를 살고 있어도 각자의 시선과 감정에 따라 전혀 다른 세계를 본다’는 것,

‘존재와 부재는 분리된 것이 아니라 상호 의존적이다’는 통찰,

‘의식과 인식의 차이’를 통해 인간의 자아가 끊임없이 변화하고 확장된다는 깨달음입니다. 분석 by ChatG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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