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은 수요일, 민탄의 레슨이 있는 날이다. 날씨 탓인지 차들이 유독 잘 보이지 않는다. 어제는 그렇지 않았는데, 오늘만 유난히 흐린 것 같다.
나는 어젯밤 꿈을 꿨다. 얼마나 재밌었던지 기억이 또렷한 듯하다가도, 막상 자세한 내용은 잘 나지 않는다. 다만 ‘문제 해결 과정에서의 몰입과 집중’이 주는 쾌감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지금 읽고 있는 웹소설 처럼, 헬 레벨의 도전을 극복해 나가는 느낌이었다.
어제 회의에서도 아이디어를 내고, 내가 알고 있는 것을 펼쳐 보이며 꽤 신나 있었다. 그 영향인지 꿈에서도 문제 해결의 쾌감이 다시 떠올랐다. 좀비 사태 같은 장면이 스쳐갔던 것 같지만, 정확한 스토리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꿈에서 느낀 감정과 몇 가지 장면은 인식의 ‘각인’처럼 가져올 수 있었다.
꿈은 긴 시간 동안 펼쳐진 것처럼 보이지만, 깨어나서 문장으로 표현하면 찰나 같다. 광활한 우주가 순간순간 다르게 보이듯, 꿈도 임팩트가 강한 순간만 기억될 뿐이다.
운전하다 보니 앞에 무거운 짐을 실은 트럭이 있어 속도가 잘 나지 않는다. 나는 차선을 바꿔 들어오며, 삶이란 결국 이런 순간들의 연속이라고 생각했다. ‘기원한다’는 행위가 어떻게 대가성과 연결되는지도 떠올랐다. 어떤 소망이든 관계 속에서 주고받음이 있고, 그 대가조차 완전히 없는 것은 아예 관계가 끊어져 버린 경우일 것이다. 한쪽 끈이 끊어져도 여파는 다른 쪽에서 계속 오며, 그 여파가 엉키고 부풀기도 한다. 하지만 관계 자체가 완전히 단절된다면 그 여파조차 무의미해질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꿈에서 가져온 ‘스토리의 개념’이다. 꿈은 형상이 뚜렷하지 않아도 감정은 생생하다. 감정은 반드시 분명한 형상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의식도 마찬가지일까? 의식을 살아있는 존재의 자존감, 생명력으로 본다면, 의식은 죽음 이후에도 어떤 방식으로든 이어지는 흐름일 수 있다. 간격이 수십 년, 수천 년일지라도 의식은 재조합을 통해 계속된다는 관점이다.
우주가 하나의 몸처럼 움직인다면, 의식 또한 분리된 개인의 것이 아니라 연결된 흐름일 수 있다. 의식이 하나만 있을 때는 의미가 크지 않지만, 여럿이 어울릴 때 상대적 가치와 역할이 드러난다. 이것이 의식의 ‘수준’에 대한 설명일 것이다.
하지만 삶을 살아가는 우리는 물질, 형상, 환경에 쉽게 휘둘린다. 그래서 수양을 통해 흔들리지 않는 ‘나’를 찾으려 한다. 의식이라는 단어를 통해 존재, 생명, 세상의 의미를 하나로 설명하려 하지만, 결국 존재는 설명 이전에 그냥 “있는 것”이다. 거울 속의 나는 온전한 나가 아니며, 거울과 나 사이의 간극처럼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에도 늘 시간차와 왜곡이 존재한다.
결국 진정한 나를 알고자 한다면, 거울이 아닌 나 자체를 들여다봐야 한다. 그러나 이는 매우 어렵다. 과거 수많은 인물들이 자기 안에서 신성함을 보거나 성찰을 시도했지만, 그마저도 하나의 거울일 수 있다.
우리는 환경과 나 사이의 간극을 줄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그러나 모든 간극이 사라져 하나로 합쳐진 세상이 바람직한가 하면, 그 또한 논쟁적이다. 오히려 그때는 삶의 긴장과 의미가 사라질 수도 있다.
지금 운전하며 문득 든 생각은, 우주에 떠 있는 수많은 존재의 움직임이 우리가 도로에서 차를 몰고 있는 모습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행성의 움직임이든 자동차의 움직임이든, 관찰하는 순간 어떤 성질과 존재감이 규정된다. 양자 세계나 거시 세계나 비슷한 원리가 작동한다는 것이 밝혀졌고, 양자 컴퓨터가 그 원리를 실용화한 사례다. 그러나 이 이론들이 완전히 현상을 해석하는 데에는 아직 엉뚱하고 모자란 부분도 남아 있다.
본문 답변
① “감정은 형상이 없어도 존재할 수 있는가?” → 예.
감정은 시각적 형상 없이도 존재한다.
뇌는 실제 형상보다 정서적 자극, 의미, 기억의 단편을 우선적으로 저장한다.
그래서 꿈의 장면이 흐릿해도 감정은 진하게 남는다.
② “의식은 죽음 이후에도 연결될 수 있는가?” → 철학적 가능성은 있으나 과학적 증거는 없음.
- 불교·힌두교: 의식의 연속성(윤회·명식)
- 스토아·신플라톤주의: 우주적 이성(Logos)
- 현대 과학: 의식은 신경 시스템의 산물이라는 입장이 일반적
→ “의식의 흐름이 재조합된다”는 주장은 철학적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함.
③ “거울을 통한 자아 인식은 왜 온전하지 않은가?”
- 거울은 빛의 반사를 거친 지연된 정보
- 심리학적으로도 “거울 자아”는 타인의 시선이 내면화된 결과
즉, 외부의 매개를 통해 본 나이므로 온전한 자기 인식이 될 수 없다.
④ “관찰하는 순간 존재가 규정된다는 것의 의미는?”
이는 양자역학의 관찰자 효과와 철학적 관점이 결합된 개념이다.
- 미시 세계: 측정이 상태를 결정
- 거시 세계: 관찰자가 의미·해석을 부여해 존재 방식이 달라짐
즉, “보는 방식이 세계를 만든다”는 통찰.
종합 정리
- 글 전반은 꿈, 의식, 존재, 자아 인식을 중심으로 흐르는 철학적 독백이다.
- 꿈에서 느낀 몰입과 문제 해결의 쾌감이 실제 삶의 경험과 연결되며, 그 감정이 형상과 무관하게 강하게 남는 이유를 탐구한다.
- 이어서 의식이 개인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우주적 흐름 속에서 연결된 존재일 수 있다는 사고가 전개된다.
- 그러나 일상에서 인간은 환경·물질·관계에 휘둘리므로, 흔들리지 않는 ‘나’를 찾기 위한 **수양(修養)**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 존재는 설명하기 전에 “그냥 있는 것”이며, 거울 같은 매개를 통해 본 자신은 온전하지 않다는 통찰이 펼쳐진다.
- 마지막에는 미시세계(양자)와 거시세계(우주)가 유사한 원리를 공유한다는 현대 과학의 발견이 언급되지만, 실용성의 발전에 비해 ‘존재의 의미’에 대한 이해는 여전히 부족하다는 한계도 짚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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