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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궁극에의

뭐 어때!

by 아리빛 하나 2025. 10.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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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늦게 일어난 것 같았지만, 사실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다만, 아무도 나를 알아주는 이가 없었다. 해나나 예티가 나를 보아도 반기지 않았다. 녀석들이 어디 있는지 궁금했지만, 아침 준비를 해야 했다.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고 옷을 입을 때도 녀석들은 오지 않았다. 불러볼까 하다가, 그 소리에 아내가 깰까 싶어 조용히 있었다. 그리고 살짝 들러보니, 치형이 방에는 예티가 있었고, 혜나는 안방 이불 위에 얌전히 누워 있었다. 안고 나와 옷을 마저 입고, 안경과 수건, 똥 봉투 같은 산책 준비물을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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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술을 마시고 일찍 잠들어 기대했던 ‘플레이’를 하지 못했다. 예전에는 그 시간이 그렇게 기다려졌는데, 이제는 덤덤하다. 익숙해진 걸까, 아니면 짜릿함이 사라진 걸까. 하지만 자원이 부족한 건 여전하다. 이제는 기대를 크게 갖지 않는다.

아파트 단지를 천천히 돌며 걷다 보니 벌써 6시였다. 어제 일찍 잠든 이유는 나성동 포차에서 술을 마셨기 때문이다. 배드민턴 용품점을 들렀다가 돌아오는 길에 붉은 조명 아래 포차들이 모여 있는 걸 보고, 여수의 포차거리가 떠올랐다. “한번 가보자.” 새로운 경험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아내 친구에게 물어보니 “비싸고 맛은 별로다”라고 했지만, 분위기는 궁금했다. 아내에게 “오늘은 파티처럼 신나게 무언가 해볼까?”라고 제안했고, 결국 퇴근길에 결정을 내렸다.

아내는 요즘 갑상선 기능 저하로 약을 먹고 있다. 손가락 관절이 쑤시는 퇴행성 관절염도 있고, 갱년기 증상도 온 듯하다. 크게 심하지는 않지만 피로하고 예민하다. 그래서일까, 잠들면 내가 건드리지 않으려 한다. 그 덕에 푹 자는 것 같기도 하다.

아침 운전길에는 안개가 자욱했다. 어제보다 더 심하다. 밤과 아침의 온도차가 크니 수증기가 피어오른 것이다. 운전할 땐 신경 쓰이지만, 지구 입장에서는 그저 하품 정도의 변화일 뿐이다. 우주 입장에서는 말할 것도 없지. 우리가 겪는 ‘안개’란, 어쩌면 우주의 먼지 한 점만도 못한 일이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그것조차 생존의 조건이 된다.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는 주어진 환경 속에서 트와이(Try)하며, 적응하고, 극복한다. 인공지능이 등장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과거에는 닿을 수 없던 영역에 다가가기 위한 또 다른 시도. 이제는 거부감보다 수용이 익숙해졌다.

인간의 반응은 ‘터치감’과 같다. 자극을 받고, 그 자극에 반응하며 폭발적인 변화를 만들어낸다. 사회도, 기술도, 감정도 그런 흐름 안에 있다. 돈의 흐름이든, 기술의 진화든,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쏠린다. 연필에서 샤프로, 종이에서 디지털로 넘어온 변화처럼 말이다.

이 모든 것은 개인의 선택과 수용의 문제다. 나이, 환경, 시선에 따라 달라질 뿐.

차를 몰며 안개 낀 길을 넘나들며 차를 앞지른다. 위험하다는 생각보다, 그저 빛과 안개 사이를 가르는 감각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 감정은 겹겹이 쌓여 있고, 어느 하나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평온함, 피로함, 기쁨, 슬픔 — 모두 동시에 존재하며 서로 얽힌다.

이 세상의 모든 존재, 감정, 의식, 이성은 중첩되어 있다. 우리는 그것을 해석하며 살아간다. 우주는 단순히 탐험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 감정과 인식이 투사된 거울이다. 수억 년 전의 빛을 보고 “그것이 지금의 별이다”라고 믿지만, 사실 우리는 과거의 흔적을 보는 것이다. 빛조차 관측 순간 ‘결정’된다.

양성자와 반양성자를 실험실에서 분리해내듯, 우리는 물질과 반물질, 있음과 없음의 경계에서 살아간다. 그렇다면 의식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인류만의 것일까? 인공지능이 무한 학습을 통해 의식과 감정을 가지게 된다면, 그것 역시 하나의 ‘정신체’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바위나 흙, 먼지조차 서로 밀고 당기며 상호작용한다면, 그것 또한 최소한의 ‘의지’를 담고 있는 건 아닐까. 존재란 그런 ‘작용의 조건’을 부여받은 상태일지도 모른다.

결국 물질과 반물질, 있음과 없음은 대립이 아니라 양면성이다. 우리가 지금 말하고 있는 ‘현재’는 이미 사라진 ‘미래’와 맞닿아 있다. 시간과 공간은 단지 인식의 틀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모든 존재는 멈춰 있는 동시에 흐르고 있다. 물질과 반물질이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형태로 전환되는 것이다. 0과 1처럼.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변환되는 것. 김성호 E/ ChatGPT.


원문(음성)  https://youtu.be/AqHyYVJcKK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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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어제는 아내와 나성동 포차거리에 갔다.  https://meatmarketing.tistory.com/9344
"여보랑 닮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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