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였던 마냥, 오늘과 같았던 과거를 회상한다.
갈색 빛으로 물든 유럽풍의 거리가 마음에 들었던 곳, 관사가 자리하고 있었다.
저녁 산책 길에 배부른 속을 달래고 푸른 하늘 아래 어제도 돌았던 곳을 오늘은 다를 것이라며 다시 돈다.
문득 '나'를 찍고 싶을 때가 있다. 아주 가끔.
그렇게 남겨진 사진 하나.
일터 속 내 모습을 담고 있다.
이제는 떠나온 곳, 매일 같이 서둘러 출근하면 옥상 체력단련실에서 런닝머신과 스트레칭을 했다.
세종 제2배수지 길, 마치 익숙한 듯 따라 나서는 해나와 예티.
소리 높혀 외치고 싶게 만드는 길,
ㅏ ㅏ ㅏ
그래서 소리친다.
다음날 새벽, 이번엔 집을 나서 정면으로 향한다.
예티에게 묻는다.
"오늘은 어느 쪽으로 갈까?"
어찌 어찌 눌렸는지 몰랐다.
카메라에 날짜가 새겨지지 않았다. 한 참 후에야 알았다.
동트는 새벽을 그래서 좋아한다.
곡식이 익어가는 계절,
난 오늘 다짐한다. 점심 때 낮잠 만 자다가는 배만 부른 비육돈이 되고 말꺼라고.
그래서 나선 길에 마주했다. 푸르른 벼, 바람에 살랑 거리며 반겨준다.
저 멀리 보이는 건물,
일터다.
곡선이 예뻐서, 그리고 적을 둔 곳을 담고 싶어서.
오늘은 이쪽으로 가보자며 선택한다.
그리고 나중엔 도로와 마주해서 지나가는 차량과 충돌 위험 때문에 다시 가지 않은 길이 되었지만, 이 날 만큼은 내게 최고의 길이요 모험이 되어 주었다.
다시 내 모습을 담았다.
마치 반복되는 테이프엣 배경 만 바꾼 듯.
그리고 내 옆엔 기계가 놓여있다.
오늘은 조금 더 멀리 나섰다.
저 저 멀리 일터를 담았다.
갈까 말까 망설이다가 넘어서게 되는 순간을 담았다.
도로 너머 엔 뭐가 있을까?
궁금하면서 호기심이 불쑥 치솟았다.
가는 중, 혹은 돌아오는 중.
아마 돌아오는 중이지 않을까 싶다.
개 짖는 소리에 다시 그 길을 가지 않으리 하고 여겼던,
아직은 내 마음을 편히 두고 산책을 모색할 길을 찾지 못했다.
한쪽은 도로와 만나고, 다른 길은 개 짖는 집을 지나가야 한다.
뭘까?
뭔가를 담고자 찍었는데 분명!
잠자리를 담아 냈다.
하늘 거리며 내 눈 앞을 어른 거리길래.
다시 나를 담았다.
여기에 왔다는 흔적일까?
다시 오게 되었을 때 달라진 모습을 알아차리기 위한 기록인가?
곡식이 무쩍 익었다.
누렇게 물든 벼, 푸른 하늘과 녹색 숲과 대비되어 입체감을 준다. 과연,
하나의 작품처럼,
새롭다 신선하다 라는 느낌에 카메라 줌을 잡아당겼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넝쿨 진 모습을 담고자 했다.
이질적이면서도 어우러진, 겨울 나기 하면 없어질까 궁금했지만 끈질긴 생명력에 다시금 주변 식물을 올라타서 괴롭히는 존재. 과연,
구름,
오늘은 왠지 녹음 보다는 청음을 담고 싶었다.
연한 푸른 빛, 나는 분명 마주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해가 뜨겁다.
우산을 들고 와야 하겠다.
오늘은 여기까지 올라왔다.
아직 뒤로 올라갈 길이 있음에, 그럼에도 오늘은 여기까지 라며 마침표를 찍는다.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이다.
정면 방향으로, 여러 채의 가옥들을 지나 산 속으로 들어갈 꺼다.
이 길엔 마주하는 주택과 사람들이 있다. 며칠을 지나치니 어느 한 분이 묻는다.
"어디 가는 거요?"
나중엔 또 묻더라. 그래서 답했다. 산책 중이라고.
그랬더니 나중 다시 만났을 때엔 아하! 저기 도축장에서 오신 분이구만. 맞아요 했더니 그럼 그럼 그제서야 이해가 간다는 듯 이방인의 방문을 이상치 않다 여기고 받아들인다. 아직은 몇 날 며칠을 더 지나가야 일어날 일이지만.
비가 내리고 흐릿한 날씨, 진잠에서 돌아오는 길이었으리라.
유성IC 앞 도로표시판 아래 횡단보도의 군상을 담았다.
이때 카메라에 날짜를 새길 수 있었다. 다시 눌린 버튼을 해제하는 그 날까지 꺼진 줄 모르고 있다가.
가을, 낙엽..
저녁, 가을..
나를 담았다. 지하로부터 올라가는 중.
새벽?
저녁?
저녁과 새벽 길은 다르다. 냄새 부터.
다시 마주한 녹음, 마음 또한 푸르러진다.
울창한, 넝쿨진 모습. 경이롭다.
줌을 당겨 본다.
넝쿨 진 모습 앞에 선다.
맞아, 이 날 이었구나!
아직 보련산으로 향하기 전, 마을을 가로질러 도로 언덕을 넘어서니 마주한 곳.
대기 중이다.
좌회전 예정.
흐린 하늘 아래
고발을 할까 사진에 담아본다.
보련산 깊이 들어선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보련산 산책길, 점심 마다.
낙엽이 떨어진 길에 눈길이 머무는 이유를 알 수 없어 그냥 손이 하는 대로 둔다.
아련한 추억 마냥,
다시금 되돌아 보게 될 때를 위한 것인 마냥,
그렇게 가끔 지나간 길을 남기고 싶을 때가 있다.
내가 여기 요로콤 있었노라 하고.
마치 내 모습을 새겨놓으려는 것 마냥.
며칠 남지 않았다. 추수 할 날이.
아쉽다면 아쉽고 베어진 황토빛 땅이 다시 줄 축복을 마주할, 다시 돌아올 그 때를 떠올리기란 쉽진 않았다.
그럼에도 지금 마주한 누런 벼의 향연을 즐거이 마주한다.
이제 눌린 버튼을 풀었다. 카메라.
"난방을 입어, 당신과 어울려"
그래서 새로 사서 입고 온 날, 머리까지 깍은.
새벽,
내가 가고자 하는 길,
혹은 지나온 길,
눈길이 머문 그 자리가 왠지 멋스러웠다.
완성되지 못한,
풍경 만 있는,
배경은 배경으로 그래서 예티를 함께 담았다.
달린다. 달리고 있다.
다시 '나'의 일상을 담았다.
오랜만에 1차 순번을 맞았다.
달을 담고자 했다.
배드민턴 치러 가는 길에, 딴짓 하는 서희는 여전히 모른다. 가는 내내 딴짓해서 내가 토라진 줄.
그래 수고했어.
그래서 돌아오는 길에 거리가 예쁘다는 핑계로 둘을 하나로 담았다.
별이 빛나듯
하루 아침에 사라질 망정
빛이 나는 하루를 살겠노라
당신과 함께 그 빛을 만들어 빛내리라
해나와 예티 또한 함께 다.
자욱한 안개,
뿌연 가운데 빛나는 불빛.
우주에 대해 알아가고 있다.
.
🌿 자화상 – 시간 위를 걷는 나
어제였던 마냥, 오늘과 같았던 과거를 떠올린다.
갈색빛으로 물든 거리, 유럽풍의 건물들이 줄지어 있던 그곳에 내 관사가 있었다.
퇴근 후 산책길에 나서면, 배부른 속을 달래며 어제 걸었던 길을 다시 걷곤 했다.
달라질 리 없는 풍경 속에서도, 오늘은 다를 것이라 믿으며 한 걸음 내딛었다.
문득 ‘나’를 찍고 싶을 때가 있다.
가끔은 카메라 속에 남은 내 모습이 낯설다.
일터의 복도, 체력단련실, 달리던 옥상 위의 바람 속에 나는 늘 비슷한 표정으로 서 있다.
반복되는 하루 속에서도, 미묘하게 달라진 눈빛 하나가 그날의 기분을 대신 말한다.
세종의 제2배수지 길, 해나와 예티가 앞서 뛰고 나는 그 뒤를 따른다.
소리 높여 외쳐본다. “아—아—아—”
그 울림은 들판을 넘어 내 안으로 돌아온다.
그렇게 또 다른 하루의 ‘시작’을 선언한다.
곡식이 익어가는 계절이 오면, 나는 다짐한다.
게으름의 늪에 빠지지 않겠다고, 낮잠으로만 채워진 오후를 허락하지 않겠다고.
그래서 길 위에 선다.
바람에 흔들리는 벼 이삭이 내 결심을 비추듯 살랑인다.
산책길엔 늘 마주치는 건물과 풍경이 있다.
곡선이 예뻐서 찍은 일터의 외벽, 더 이상 가지 않는 위험한 길,
그리고 되돌아온 길 위의 개 짖는 소리.
나는 아직 완전한 평온을 찾지 못했지만, 그 길 위에서 나를 닮은 인내를 배운다.
잠자리의 날개, 누렇게 물든 들녘, 넝쿨진 숲담장.
자연의 반복은 지루하지 않다.
어제 본 그대로의 모습이 오늘은 조금 다르게 다가온다.
내가 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보련산 자락에 들어서면 낙엽이 쌓인 길에 발걸음이 멈춘다.
손이 알아서 셔터를 누른다.
이유는 묻지 않는다.
그저, 언젠가 다시 돌아볼 나를 위해 남겨두는 흔적일 뿐.
가을의 공기 속에서 나는 조금씩 투명해진다.
추수의 끝자락, 비워진 논밭을 보며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을 곱씹는다.
베어진 자리에도 다시 곡식이 자라나듯,
내 안에서도 또 다른 계절이 준비되고 있을 것이다.
어느 날, 새로 산 옷을 입고 머리를 다듬었다.
거울 속의 나는 낯설면서도 익숙했다.
‘이게 지금의 나구나.’
그 순간, 카메라보다 선명하게 나를 담아낸 것은 바로 내 눈이었다.
그리고 또 다른 새벽, 안개 자욱한 길 위에서 불빛 하나가 깜빡인다.
나는 우주에 대해, 존재에 대해, 나에 대해 생각한다.
수많은 날들이 겹쳐 하나의 초상화를 그려낸다.
그 그림 속 나는 달리고, 걷고, 머물고,
때로는 빛나며, 때로는 흐릿하다.
그러나 분명히 ‘살아 있음’으로 빛나는 하나의 존재다.
오늘도 다시 걷는다.
빛이 나는 하루를 살겠노라 다짐하며,
당신과 함께 그 빛을 만들어 나아간다.
그것이 내가 그리는, 나의 자화상이다. 김성호 E/ ChatG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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