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 저녁이었다.
선거운동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서희와 영탁은 저녁 6시 40분쯤 일을 마치고 온다고 했다. 나는 그 시간에 맞춰 국물떡볶이와 온니김밥을 사러 집을 나섰다. 한 손에는 미리 주문해 둔 교촌치킨 허니콤보와 레드 한 마리가 들려 있었다.
해나와 예티는 저녁을 일찍 먹었다. 함께 나가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쉬웠는지, 오랜만에 껌을 하나씩 주었더니 세상을 다 가진 듯 좋아한다. 물고 뜯고 던지고 쫓아다니며 한바탕 소란을 피운다.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온니김밥에 전화를 했는데 받지 않았다.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직접 가 보았다. 예상대로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잠시 서서 생각했다.
'그럼 어떻게 하지?'
근처 동네카츠에서 모밀소바를 사 갈까 싶었다. 서희가 좋아하니까. 그런데 치킨과 함께 먹기엔 왠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GS25로 향했다. 삼각김밥 몇 개를 집어 들었다.
컵라면도 살까?
몇 번이나 고민했다. 카카오톡으로 물어볼까 생각도 했다. 하지만 결국 연락도 하지 않았고 주문도 하지 않았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그렇게 연못풍경으로 향했다.
이른 오후 잡은 자리에서 상을 차렸다. 신문지를 펼치고 그 위에 치킨을 올리고, 수박을 꺼내고, 삼각김밥과 맥주, 소주를 하나씩 내려놓았다. 아사히 맥주 한 캔을 따서 잔에 천천히 따랐다.
기다림도 나름의 즐거움이었다.
먼저 도착한 사람은 치형이었다.
친구와 8시 영화 약속이 있어 7시 40분에 만나기로 했다며 잠깐 들렀다고 했다. 나는 치킨 상자를 열어 한 조각 집어 먹게 했다. 삼각김밥도 권했고 콜라도 따라 주었다.
잠깐이었지만 함께 먹는 모습이 괜히 반가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영탁과 서희가 도착했다.
카카오톡으로 부탁했던 불판 석쇠 한치와 쥐포, 그리고 라면 끓일 물까지 챙겨 들고 왔다. 자리에 앉자마자 이야기가 시작됐다.
주제는 당연히 선거운동이었다.
하루 종일 거리에서 있었던 일들, 함께 일하는 사람들 이야기, 황당했던 에피소드들, 웃겼던 순간들.
둘은 신이 나서 이야기했고 나는 듣는 것만으로도 재미있었다.
그러다 서희가 웃으며 말했다.
"영탁이 의외로 되게 유머러스하더라."
새로운 모습을 봤다는 말이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괜히 흐뭇했다. "엄마의 새로운 면도 봐서 저 또한 좋았어요." 라는 영탁이.
아이들은 늘 내 기억 속에 머물러 있는데, 어느새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며 새로운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먹고 마시고 이야기했다.
혹시 부족할까 싶어 넉넉하게 준비해 간 맥주 여덟 캔과 소주 두 병을 비웠다. 마지막에는 기네스 흑맥주가 조금 남았다.
연못에는 어둠이 내려앉고, 사람들의 웃음소리는 점점 잦아들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살면서 기억에 남는 날들이 꼭 특별한 날들만은 아닌 것 같다.
누군가 상을 받은 날도 아니고,
큰돈을 번 날도 아니고,
대단한 여행을 떠난 날도 아니다.
그저 치킨 한 마리와 맥주 몇 캔을 펼쳐 놓고,
가족이 하나둘 모여 앉아,
시시한 이야기로 웃고 떠들던 저녁.
어쩌면 그런 날들이 오래 남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연못에 비친 불빛이 유난히 따뜻해 보였다.
그리고 문득 생각했다.
이런 날이,
내가 나중에 그리워하게 될 풍경일지도 모르겠다고.

아직은 몰랐다. 에세이를 쓰게 될 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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