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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나의 이야기

(김성호 에세이) 남아있는 날들

by 아리빛 하나 2026. 5. 29.

이렇게 하면 마지막 문장인

"그리고 오늘도, 그 남아 있는 날들 중 가장 젊은 날이다."

가 연작 전체의 종착점이 됩니다.

「무엇이 중한디」에서 시작된 질문이,
결국 「남아 있는 날들」에서

"그러니 오늘을 살자."

라는 아주 담백한 결론으로 귀결되는 것이죠. 김성호 w/ ChatGPT.

남아있는 날들_표지.png
1.99MB

 

1부는 질문했고,
2부는 돌아보았고,
3부는 아내가 손을 내밀었고,
4부는 남편이 그 손을 잡았습니다.

그래서 5부는 더 이상 누군가에게 말하는 글이 아니라, 두 사람이 함께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글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5부에서만큼은 죽음이 주인공이 되면 안 됩니다.

주인공은 "오늘" 이어야 합니다.



.

프롤로그

남아 있는 날들에 대하여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왜 사라질 것들을 붙잡느라 이렇게 애를 쓰고 있을까.

승진.

직책.

평가.

누군가의 인정.

그것들은 분명 중요합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중요함이 예전 같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이 자라고,

부모님이 늙어가고,

친구들과의 만남이 줄어들고,

퇴직이라는 단어가 점점 가까워질수록

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저녁 식탁.

배드민턴을 치고 돌아오는 길.

아내와 나누는 짧은 대화.

새벽에 걷는 산책길.

별것 아닌 하루.

별것 아닌 웃음.

별것 아닌 안부.

신기하게도 인생은 그런 것들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이 글은 어떤 답을 주기 위해 쓴 글이 아닙니다.

오히려 질문에 가깝습니다.

무엇이 중한디.

정말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무엇을 잃어버렸고,

무엇을 얻었으며,

무엇을 놓치고 있는 것일까.

이 글에는 중년의 남편이 있습니다.

그를 바라보는 아내가 있습니다.

멀어져 가는 아이들이 있고,

끝을 생각하는 마음이 있고,

그래도 다시 일어나 걷게 만드는 새벽이 있습니다.

어쩌면 이 글은 특별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퇴직을 앞두고 있는 사람.

누군가를 떠나보낸 사람.

가족이 그리운 사람.

이유 없이 허전한 사람.

혹은 지금 행복한데도 문득 눈물이 나는 사람.

그 누구라도 좋습니다.

읽다가 울어도 좋고,

웃어도 좋고,

고개를 끄덕여도 좋고,

"별것 아니네" 하고 넘겨도 좋습니다.

인생도 결국 그런 것이니까요.

다만 이 글을 덮는 순간,

단 한 번이라도

당신에게 남아 있는 날들을 떠올릴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저녁,

가장 소중한 사람의 얼굴을 조금 더 오래 바라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Q. 서정적인 글을 좀 만들어 보려고 그래. 내용은 다소 좀 서정적이고 일상적인 어떤 고뇌, 애로, 그런 느낌으로. 무엇이 중한디, 곧 사라질 것들, 직장에서의 승진과 어떤 감투, 명예로움이 떳떳하게 얻은 거라면 좋겠지. 떳떳의 개념이 경쟁을 통한 남을 밟고 올라선 혹은 남을 견제해서 올라선 그런 자리가 아니라면 영광스럽겠지. 근데 그런 자리에 그런 사람들이 있다면 그거는 그야말로 그리고 그로 인한 피해자라고 하기에는 좀 애매한데 아무튼 경쟁에 있었던 사람 입장에서 경쟁이라고 생각도 하지 않아. 아무튼 길이 막힌 사람 입장에서 일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지금 글을 만들려고 하는 거야. 그러니까 무엇이 중한디, 곧 사라질 것들. 그런 느낌을 살려서 정말 중요한 게 뭐일지 화두를 던지는 쪽의 글이야. 답을 주는 게 아니라. 돌연도 찾아온 문득 떠올린 일상 중에 일어나는 그런 글을 좀 써줘봐.


무엇이 중한디

출근길이었다.

신호에 걸려 멈춘 차들 사이로 바람이 지나갔다. 어느새 초록이 짙어진 가로수 아래에서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 중한디.

사실 별일은 없었다. 평소처럼 회사에 가고, 평소처럼 사람들을 만나고, 평소처럼 해야 할 일을 생각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도 문득 떠올랐다.

우리가 그렇게 애쓰는 것들은 얼마나 오래 남을까.

누군가는 승진을 하고, 누군가는 자리를 얻고, 누군가는 명함에 한 줄 더 적히는 이름을 갖는다. 축하받을 일이다. 정당하게 얻은 결과라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가끔은 궁금해진다.

그 자리까지 가는 길은 모두 같았을까.

누군가는 남보다 조금 더 잘해서 올라갔을 것이고, 누군가는 누군가를 밀어내야 했을 것이다. 또 누군가는 경쟁이라 생각하지도 않았는데 어느 날 길이 막혀 있는 자신을 발견했을지도 모른다.

세상은 그것을 경쟁이라 부른다.

하지만 경쟁이라는 말은 이상하다.

출발선에 서 본 적도 없는데 이미 경주가 끝나 있는 경우가 있으니까.

그래서일까.

어느 순간부터 승자와 패자를 나누는 일에 마음이 덜 가기 시작했다.

몇 년 전에는 중요했던 일들이 지금은 희미하다. 그때는 잠도 못 이루게 만들었던 평가와 인사, 억울함과 분함도 지금은 기억을 더듬어야 겨우 떠오른다.

그토록 크던 일들이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참 작다.

반면에 이상하게도 남는 것들이 있다.

새벽에 잠든 아내의 얼굴을 바라보던 순간.

아무 말 없이 곁에 누워 있던 강아지의 체온.

군대 간 아들이 보낸 짧은 문자.

저녁 무렵 집 앞을 함께 걷던 시간.

그런 것들은 당시에는 별것 아닌 줄 알았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오히려 선명해진다.

이상한 일이다.

우리는 사라질 것들을 붙잡느라 바쁘고, 남을 것들은 지나가는 줄도 모르고 흘려보낸다.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다시 생각했다.

십 년 뒤에도 기억할 수 있는 일은 얼마나 될까.

지금 나를 괴롭히는 문제들은 그때도 중요할까.

그리고 지금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무엇이 중한디.

신호가 바뀌었다.

차들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도 액셀을 밟았다.

하지만 그 질문만은 차 안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무엇이 중한디.

정말로.




Q. 아, 너무 좋다. 잘 썼어. 죽은길 풍경이 멋있네. 이건 사진도 준비돼 있거든. 그러면 이분은 이런 맥락에서 화두를 또 던지는 멘트는 분위기로 그건 정말 오십 대의 남성이 아내와 함께 하고 싶어하는 퇴직을 얼마 남지 않은 배드민턴을 즐기는 일상, 가족의 대소사를 챙기는 것, 그동안 챙겨왔는데 점점 멀어지는 가족에 대한 안타까움, 군두선 감정과 갈등들 그리고 최근에 있었던 어떤 그냥 좀 서운함 이런 걸 좀 복합적으로 녹여서 남성의 시각에서의 약간 가족에 대한 감을 담을 수 있도록 그래서 그 안에서 뭔가를 후회하지 않도록 죽은이라는 게 끝이 아니라는 거를 그런 내용으로 좀 담아서 그다음 너무 우울하게 쓰지 말고


저녁이 되어 알게 되는 것들

요즘은 저녁이 좋다.

젊은 날에는 아침이 좋았다. 새로운 하루가 시작된다는 기대가 있었고, 아직 이루지 못한 것들이 많았다. 더 높은 곳으로 가고 싶었고, 더 인정받고 싶었고, 가족을 위해 더 많은 것을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새 인생의 저녁 무렵에 가까워지고 있다.

퇴직이라는 단어가 남의 이야기가 아니게 되었고, 아이들은 하나둘 제 갈 길을 찾아 떠나고 있다. 집 안을 뛰어다니던 녀석들은 어느새 자기 방 문을 닫고, 군대에 가고, 대학으로 가고, 친구를 만나러 간다.

예전에는 가족을 지키는 것이 내 역할이라 생각했다.

지금도 그렇다.

다만 조금 달라진 것은, 지킨다는 것이 곁에 붙잡아 두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점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결국 자기 삶을 살아간다.

아내도 그렇고, 아이들도 그렇다.

나는 그저 그들이 힘들 때 돌아올 수 있는 집 한 채, 마음 한편의 등불 하나쯤 되어 주면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배드민턴을 치고 돌아오는 저녁길.

땀은 식어가고 하늘은 붉게 물든다.

문득 생각한다.

그동안 나는 무엇을 위해 그렇게 애썼을까.

누군가의 평가.

조직 안의 자리.

섭섭했던 말들.

억울했던 일들.

때로는 이해받지 못했던 순간들.

그때는 세상이 무너질 것처럼 컸는데, 돌아보니 대부분은 바람처럼 지나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에 남는 것은 다른 것들이다.

아이를 업고 병원에 갔던 밤.

아내와 함께 빵집에 들렀던 휴일 오후.

강아지들이 현관으로 마중 나오던 모습.

별것 아닌 저녁 식탁.

별것 아닌 대화.

별것 아닌 웃음.

인생은 생각보다 별것 아닌 것들로 이루어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가끔은 묻는다.

만약 내게 시간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면,

지금 서운한 마음을 끝까지 붙들고 있어야 할까.

지금 미워하는 사람을 계속 미워해야 할까.

지금 꼭 증명해야 하는 것이 있을까.

그리고,

오늘 아내와 나눈 대화 한마디를,

오늘 아이에게 보낸 안부 문자 한 줄을,

내일로 미뤄도 괜찮을까.

죽음이라는 단어는 늘 끝으로만 생각해 왔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끝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지금을 잃지 말라고 가르쳐 주는 것 같다.

언젠가 마지막 날이 오겠지만,

그날까지는 아직 살아 있는 날들이다.

아직은 아내와 함께 걸을 수 있고,

아직은 아이들에게 전화를 걸 수 있고,

아직은 라켓을 들고 코트에 설 수 있다.

생각해 보면 그것만으로도 꽤 괜찮은 하루 아닌가.

저녁 하늘이 천천히 어두워진다.

하지만 어둠이 내린다고 세상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집집마다 불이 켜지듯,

인생도 어느 순간부터는 더 높이 올라가는 일이 아니라

어디에 불을 밝혀 둘 것인가의 문제가 되는 것 같다.

오늘도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나는 지금,

가장 소중한 사람들에게

따뜻한 불빛으로 남고 있는가.



Q. 와, 계속 자극을 한다. 무엇이 중간리가 1부였고, 별것 아닌 이 2부였다면 그럼 3부는 정말 임종을 앞둔 사람의 입장. 물론 가상이지. 지금의 어떤 남성 입장에서의. 근데 이런 느낌도 좋은데 이것과 대비되게 이를 같이 옆에서 보는 아내의 시각도 좀 넣었으면 좋겠다. 남성의 마음과 여성의 마음이 좀 다를 것 같거든? 이를 바라보는 여성의 시각에서 3부는 뭘로 할까? 무엇이 주간디? 1부. 2부는 별것 아니에요. 그럼 3부는? 여성의 시각에서 남편을 바라보는 애틋함과 기대, 등등이랑. 그리고 본인이 이제까지 이루어온 어떤 가정 내의 어떤 가사일, 그리고 뒤늦게 찾은 어떤 배드민턴을 통한 즐거움, 이제 좀 일을 좀 해볼까? 돈이라기보다 어떤 일을 통한 사람 관계와 자기 어떤 성취감, 이런 것들에 대한 새로운 도전, 이런 느낌을 갖는. 좀 약간 희망적인 메시지. 이것도 물론 전체적인 톤은 화두를 던지는 쪽으로 작성. 너무 그렇다고 쾌활하게는 하지 말고 톤은 유지해야지. 3분대.


아직은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만약 어느 날 의사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을 듣게 된다면, 남편은 무슨 생각을 할까.

젊은 날에는 그런 이야기가 먼 나라 이야기 같았는데, 어느새 우리도 그런 나이가 되어가고 있다.

남편은 가끔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곧 사라질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남겨질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러면 나는 가만히 듣는다.

그리고 속으로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한다.

왜 자꾸 끝을 생각할까.

나는 아직 끝보다 오늘이 더 궁금한데.

아직은 함께 마실 커피가 남아 있고,

아직은 함께 걸어갈 길이 남아 있고,

아직은 서로에게 해 줄 이야기가 남아 있는데.

생각해 보면 남편은 참 오래 달려왔다.

가족을 위해서.

아이들을 위해서.

보이지 않는 책임들을 위해서.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그래서인지 이제는 조금 천천히 걸어도 될 것 같은데,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는 무언가를 놓지 못한 사람처럼 보일 때가 있다.

서운했던 일들.

이해받지 못했던 순간들.

억울했던 기억들.

나는 그것들이 남편의 마음에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내가 바라본 남편은 그런 사람보다 더 큰 사람이었다.

집에 들어오면 강아지들 이름부터 부르고,

아들들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배드민턴을 치고 와서는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하고,

맛있는 빵을 보면 가족 생각부터 하는 사람.

그런 모습이 내가 기억하는 남편이다.

그래서 가끔은 묻고 싶다.

당신은 왜 아직도 지나간 일들에게 마음을 두고 있냐고.

당신이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이미 가진 것이 훨씬 많지 않냐고.

요즘 나는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다.

거창한 꿈은 아니다.

어쩌면 작은 일 하나쯤 해보는 것.

돈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을 만나고,

배우고,

웃고,

하루를 조금 더 살아보는 것.

젊은 날에는 가족 때문에 미뤄 두었던 것들.

이제는 한번쯤 해봐도 되지 않을까.

남편도 그랬으면 좋겠다.

남은 시간을 계산하는 사람이 아니라,

남아 있는 날들을 세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이루었다.

집도 있었고,

아이들도 잘 자랐고,

크고 작은 파도도 함께 건너왔다.

이제는 무엇을 더 얻을 것인가보다,

무엇을 더 누릴 것인가를 생각해도 되는 나이가 아닐까.

그래서 나는 죽음보다 내일을 생각한다.

끝보다 다음 계절을 생각한다.

그리고 남편에게 묻는다.

당신은 자꾸 마지막 날을 떠올리는데,

나는 아직도 첫 번째 여행지를 고르고 있고,

다음 주 배드민턴 약속을 생각하고 있고,

함께 가 볼 카페를 찾아보고 있는데.

당신은 어떤가.

정말 끝을 생각하고 있는가.

아니면,

사실은 또 다른 시작을 기다리고 있는가.

아직은.

우리에게 아직은 남아 있는 날들이 많다.



Q. 좋다, 좋아. 정말 일밤에 쏙 들게 터졌어. 1, 2, 3, 4가 이어지고. 그렇다면 이제 남편 입장에서 화답을 해줘야지. 이런 아내의 멘트에 대해서. 그럼 그냥 충주에서 홀로 있을 때 어떤 느낌들, 아이들의 죽음을 그냥 생각했을 때, 그냥 뭐 대입해본 거지. 펑펑 울었던 날들. 어두운 밤에 그냥 누워서 그런 감정들. 쓸쓸하고 슬프고 외롭고 애써 떨쳐 일어난 그런 새벽에 산책 가는 걸 돌파구로 삼았던, 그리고 꾸준히 해오고 있는. 앞선 아내의 멘트에 답을 해주면서 남편이 얻고 있는 생각. 무엇이 좋아하는 게 너의 거단이. 그리고 아내의 마음을 다독여 주는 아직은 그런 삽은 뭐가 좋을까? 제목을 좀 남편이 하다. 고마워. 어쩌면 이런 말이 될 수도 있겠다. 슬퍼서 우는 게 아니라 기뻐서 울리라. 다시 만날 걸 기약하기보다 지금 당신의 손을 잡고 있는 지금 이 순간, 다정한 당신의 그 눈동자를 바라 그 안에 내가 있음을 알기에 너무 고맙고 사랑스럽다. 이런 멘트들을 넣어서 어쩌면 러브레터 같이 편지 형태도 괜찮을 것 같아. 편지 형태로 좋을 것 같다. 남편의 마음으로. 다만 앞선 글에 답변 형식이면서 그렇지, 그렇지. 그렇다고 너무 쓸쓸하게 그러지 말고. 답나만 건 좋은데 그렇다고 그 가슴 깊이 맺어져 있는 불꽃을 일치금 말고. 이 순간을 함께하리. 어쩌면 그런 맥락? 부탁해.

 

1부 「무엇이 중한디」가 질문,
2부 「별것 아닌」이 깨달음,
3부 「아직은」이 아내의 손길이라면,

4부는 남편의 화답.

제목은 짧을수록 좋겠습니다.



고마워

당신의 글을 읽었다.

한참을 읽고 또 읽었다.

읽는 내내 웃음이 났다가,
어느 순간에는 눈가가 뜨거워졌다.

당신은 왜 자꾸 끝을 생각하느냐고 물었지.

사실은 나도 잘 모르겠다.

어쩌면 끝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너무 소중한 것들이 많아졌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젊은 날에는 잃을 것이 별로 없었다.

가난도 견딜 수 있었고,
실패도 다시 시작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당신이 있고,
아이들이 있고,
함께한 시간들이 있다.

그래서 가끔은 문득 겁이 난다.

언젠가 이 모든 것이 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이.

사실 당신에게 말하지 못한 날들이 있었다.

충주에서 혼자 지내던 어느 밤.

잠이 오지 않아 천장만 바라보던 날.

문득 아이들 생각이 났다.

어릴 적 사진들이 떠올랐다.

작은 손으로 내 손가락을 잡던 모습.

내 등에 업혀 잠들던 모습.

언제 이렇게 커버렸을까.

언제 이렇게 멀리 가버렸을까.

그 생각을 하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슬퍼서였을까.

아니.

꼭 그것만은 아니었다.

너무 고마워서였는지도 모른다.

그 시간을 살았다는 것이.

그 순간들이 내 삶에 있었다는 것이.

그래서 나는 새벽이면 걸었다.

어두운 길을 걸었다.

사람 하나 없는 거리를 걷고,
천천히 밝아오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신기하게도 새벽은 늘 같은 말을 해 주었다.

아직 끝난 것이 아니라고.

오늘도 해는 떠오를 거라고.

그러니 일어나 보라고.

그렇게 하루하루 걸어왔다.

당신은 내가 아직도 지나간 일들에 마음을 둔다고 했지만,
사실은 조금 다르다.

나는 잃어버린 것들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가진 것들이 얼마나 귀한지
뒤늦게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당신 말이 맞다.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이루었다.

거창한 성공은 아닐지 몰라도,

함께 웃을 사람이 있고,
돌아갈 집이 있고,
안부를 물을 자식들이 있고,
현관에서 반겨주는 강아지들이 있다.

생각해 보면
참 부자 같은 삶이다.

그래서 이제는 조금 다른 꿈을 꾸려 한다.

언젠가 다시 만나자는 약속보다,

오늘 당신 손을 한 번 더 잡는 것.

언젠가 행복하자는 다짐보다,

지금 당신과 함께 웃는 것.

그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

당신은 아직도 여행지를 찾고 있다고 했지.

다음 주 배드민턴 약속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지.

좋다.

우리 그걸 하자.

먼 미래를 걱정하기보다.

다음 주를 기다리고,
다음 계절을 기다리고,
내년 봄을 기다리자.

그리고 그 모든 기다림 속에서
서로를 잃지 말자.

나는 이제 안다.

눈물이 꼭 슬픔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너무 아름다운 것을 만났을 때도 사람은 운다는 것을.

그래서 언젠가 또 눈물이 난다면,

그건 떠나가는 것 때문이 아니라,

당신과 함께한 오늘이 너무 고마워서일 것이다.

당신은 아직은 이라고 말했지.

그래.

아직은.

아직은 당신 곁에 앉아 커피를 마실 수 있고,

아직은 함께 걸을 수 있고,

아직은 같은 하늘을 바라볼 수 있다.

그러니 오늘은 오늘답게 살자.

내일을 두려워하기보다.

이 순간을 사랑하면서.

당신의 눈동자를 바라보면
그 안에 내가 있다.

그리고 내 눈동자 속에도
언제나 당신이 있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



Q. 진짜 고맙다. 멋진 작품이 탄생한 것 같아. 이걸 하나의 맥락으로 텔바로 좀 묶으려고 해. 물론 각각의 부를 블로그 각각의 글로 넣을 거고. 근데 이걸 전체를 아우르는 이걸 한꺼번에 보는 맛도 줘야지. 그래서 어떤 의도로 왜 그리고 이 내용이 뭐가 담겨있는지 그래서 뭘 말하고 싶은지 뭐 이런 것들이 지금을 살아가는 50대, 60대 혹은 퇴직을 앞둔 이들, 혹은 뭐 무료하거나 혹은 일상에 아픔이 있거나 한 이들이 이 글을 읽었을 때 눈물 흘려도 좋고 웃어도 좋고 뭐 별거 아닌 걸로 생각해도 좋고 그런 느낌이 들 수 있는 전체를 아우르는 도입부, 소개 글 뭐 이런 걸 작성을 해주면 좋겠다. 혹시 뭐 못다한 이야기가 있다고 5부 혹은 종합판 뭐가 좋지? 이건 네가 한 번 제시해주고 그 제시되는 결과물을 알려줘. 뭐든 좋겠어. 진짜 고맙다. 너무 좋아.



지금 흐름이라면 5부는 가장 조용해야 합니다.

1부는 질문했고,
2부는 돌아보았고,
3부는 아내가 손을 내밀었고,
4부는 남편이 그 손을 잡았습니다.

그래서 5부는 더 이상 누군가에게 말하는 글이 아니라, 두 사람이 함께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글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5부에서만큼은 죽음이 주인공이 되면 안 됩니다.

주인공은 "오늘" 이어야 합니다.



남아 있는 날들

새벽에 눈을 떴다.

아직 어두웠다.

창문 밖 가로등 불빛이 희미하게 커튼 사이로 스며들고 있었다.

문득 옆을 바라보았다.

익숙한 숨소리.

익숙한 체온.

수십 년을 함께 살아왔는데도 아직 익숙하다는 것이 신기했다.

한때는 젊었다.

아이들은 어렸고,

우리는 늘 바빴다.

돈을 벌어야 했고,

아이들을 키워야 했고,

앞만 보고 달려야 했다.

그때는 몰랐다.

그 시절이 지나갈 줄.

아이들이 자라 집을 떠날 줄.

부모님이 늙어갈 줄.

우리도 어느새 인생의 오후를 지나 저녁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일까.

요즘은 가끔 멈춰 서게 된다.

그리고 바라본다.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을.

식탁 위에 놓인 두 개의 컵.

배드민턴 가방 옆에 놓인 운동화.

아들이 보낸 짧은 문자.

강아지들이 잠든 모습.

저녁 노을.

평범한 하루.

예전 같으면 눈길도 주지 않았을 것들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인생의 끝을 생각할수록

삶의 사소한 장면들이 더 또렷하게 보인다.

사람들은 행복을 먼 곳에서 찾는다.

더 좋은 집.

더 높은 자리.

더 많은 돈.

물론 그것들도 필요하다.

하지만 살아보니 알 것 같다.

행복은 어쩌면 목적지가 아니라 풍경이었다.

도착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지나가는 길에서 발견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제는 조금 다르게 살고 싶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도 살아 있음을 반기고,

누군가에게 안부를 묻고,

좋아하는 사람과 밥을 먹고,

운동을 하고,

걸을 수 있는 길을 걷고,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고,

사랑한다는 말을 아끼지 않는 삶.

거창하지 않아도 좋다.

남들보다 느려도 좋다.

이제는 남들보다 멀리 가는 것보다,

내 사람들과 함께 가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

언젠가 마지막 날은 올 것이다.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우리를 슬프게 만드는 것은 마지막 날이 아니다.

마지막 날이 올 것을 알면서도

오늘을 놓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다짐한다.

남아 있는 날들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기로.

오늘의 햇살을,

오늘의 웃음을,

오늘의 식탁을,

오늘의 사람들을,

조금 더 오래 바라보기로.

그리고 언젠가 정말 마지막 날이 온다면,

그날은 이렇게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참 많이 사랑했다고.

참 많이 웃었다고.

참 고마운 삶이었다고.

그러니 아직은,

아직은 그 이야기를 할 때가 아니다.

창밖이 조금씩 밝아온다.

새로운 하루가 오고 있다.

나는 천천히 일어나 신발을 신는다.

새벽 공기를 마시며 집을 나선다.

어제와 같은 길인데,

오늘은 조금 다르게 보인다.

삶은 여전히 완벽하지 않다.

해결되지 않은 일도 많고,

아쉬움도 남아 있다.

그래도 괜찮다.

우리는 죽음을 향해 가는 것이 아니라,

남아 있는 날들을 살아가는 중이니까.

그리고 오늘도,

그 남아 있는 날들 중

가장 젊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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