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려주는 음악 소리가 없었다면, 보여주는 글과 그림이 없었다면,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기는 한때의 몽상이 없었다면, 과연 내 모습은 어떠했을까?
움직임조차 최소한도로 줄이고, 이동 동선까지 계산하고, 걸음거리마다 주의할 점을 인지한 상태, 출퇴근을 하는 날이 아니면 회사까지 걸어가기 싫어하지만 기다리던 버스가 10분 넘게 남았다고 정류소가 알려주면 그냥 걷고 마는, 마치 수동적인 사람.
걸으면서 마주치는 사람들을 비껴 걷다가 가끔 푸른 하늘을 보고, 언제는 찌푸린 먹구름을 보고 '비가 오려나!'하는 생각을 해보고, 군포소방소 4거리 옆에 있는 낮은 지대의 넓다란 공원을 흙으로 메워가는 광경을 보면서 '메우는 걸까? 무엇하는 걸까?' 쓸데없는 참견을 하는 사람.
수의사로 대학을 졸업한 후 축산물품질평가사로 10여년을 살아가고 있는 지금, 근 3년 가까이 유통에 대한 놀라운 집중력 끝에 여러 책들을 내보기도 하고, 이젠 "책 = 김성호"라는 등식이 성립된 모양.
부던히 통찰력을 갖고자 노력하던 어느 날, 어두컴컴했던 세상이 밝아져 보인다고 할까? 어떠한 생각을 하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순간의 잔상들, 그리고 알게되는 놀라운 지식의 향연.
내가 특별해서 갖게된 생각이라기 보다는 누구보다 갖기를 원했기 때문에 '세상에 접속'했다고 보는, 마치 잘난 거 없는데 그거 하나는 이생에서 얻었던 듯. 깊이있게 넓고넓게 파고드는 자세로부터 모든 일이 시작되었음을,
그리고 홀로 무엇인가 끊임없이 갈구하다보니 남들에게서 듣는 말로는 집중력, 분석력, 끈기, 집요함, 매서움, 강한 주장, 그리고 무엇보다도 '대의'.
'세상에 접속'하면서 그나마 다행스러웠던 것은 나 보다는 대의를 생각했다라는 것,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부족한 인격체를 그나마 회사 속에, 가족 속에, 세상 속에 머물 수 있게 해줬다고 보는데, 무엇을 할까? 어떻게 할까? 궁금하면 파고들어보는 것이야말로 모든 일의 시작. 부딪힘 속에 살아야 하는 이유가 있다는데.
'틀려도 좋아, 일단 해봐, 그리고 마치 그렇다는 듯이 보는 것을 경계해'. 우린 너무나 자주 마치 그런 듯한 말과 행동을 반복하고 있고, 아기가 잘 놀다가 조용해지면 드는 부모의 생각, 사고? 초등학생 아이가 공부하다가 조용해지면 드는 부모의 생각, 딴짓? 그리고 확인.
확인받고 인정받고 칭찬받고 잘 살고 있음을 갈구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것에 지나치게 매달리지는 말았으면 좋겠고, '난 무료해', '난 이대로 족해', '난 멍청해', '삶에 변화가 없어' 라는 등의 쓸데없는 잡념은 버리고 무념무상한 삶이 바로 행복이라는 것을 느꼈으면 싶은데.
사건사고를 겪어야 인생의 참맛이 있을까? 이미 내 속에 들어온 많은 것들이 겪고 있는 갈등과 화해, 그리고 미래 만으로도 너무 벅찬데, 외견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슬퍼하거나 아파하거나 때론 인생포기까지 거론할 정도가 되면 그것이야 말로 덜익은 사과꼴. 아직도 앙금이 남아있는 모양.
들려주는 음악 소리가 없었다면, 그리고 보여주는 글과 그림이 없었다면,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기는 한때의 일탈적인 몽상이 없었다면, 과연 현세의 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리고, 지금의 내 모습은 과연 나일까? 과거의 나는? 그리고 바로 내일의 나는? 5년, 10년, 20년을 끊어서 보면 마치 낯설어지는데, 그래서 시간의 흐름 속에 무뎌지는 것이겠지. 다행하달까.
아이들이 자라면서 자기 삶의 이유를 유전적인, 또는 혈통에서 찾는 우는 범하지 말았으면 좋겠는데, 그리고 내게서 받았으면 하고 바라는 것은 바로 '세상에 접속'하는 자세라고나 할까?
후회없도록, 그리고 아직 아내, 아이들에 얽힌 생명의 끈을 놓치는 못하고 있지만 언젠가 모두 내려놓게 되었을때는 담당히 눈을 감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 미치도록 살았다. 지치고 지쳐 알아주는 이 하나 없을때 그때 비로소 성공과 실태의 한끝 차이를 알게 되었고, 그저 일의 형상을 담당히 보게 되었음을.
앞으로 있을 기대감조차 기분을 좋게 하는 훈훈한 정도. 과연 그것으로 충분히 족하다고나 할까!
정말 땅이 팔리고 가계의 운영이 안정되고 탄탄해지면 뭐하지? 미치도록 사랑을 해볼까? 세상을 돌아볼까? 끊임없이 갈구한 끝에 도달할 그 무엇이 없는, 유통과는 다른 세상을 들었다가 놨으면 싶은데, 아직 웅심이 남아있나 보다. 사내라서인지 몰라도.
얽히섥힌 유통을 풀어내는 손놀림으로 무엇을 해볼까? 대한민국 경제실록에서 들려주는 유통의 역사를 바라다 보면서 등장하는 인물들이 행한 흔적이 한마디로 요약됨을 볼 때, 1970년대 오일쇼크에도 불구하고 백화점을 세웠고 이어 호텔이 들어서고 그렇게 이어지는데 난 유통실태 표준화작업에 빠져있으니 과연 뭘까? 나도 규모의 행위를 하고 싶은 것일까? 아니면, 과거를 지나 미래로 향하는 바로 이때 가장 필요하다고 느낀 '세상의 주문'이었을까!
축산물 유통실태를 바로보는 일이 2012년에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없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까? 글쎄. 하나의 가교역할이 되기를.
논문행태도 바뀌고 자료공유방식도 바뀌고 지식소유권도 바뀌고 더불어 '활용'하는 지식의 향연을 누리기를 바라건만 하긴 결국 나 또한 늙어 힘에 부치다보면 이뤄놓은 무엇인가를 놓고 우려먹겠지, 후후. 그저 세상이 변하는데 틀만 바뀌고 그 알맹이가 그대로이니 과연 학위와 역사, 지식의 계승이 언제부터 이렇게 정해졌나 몰라. 이 시대가 가고나면 정리되겠지.
읽어볼만한지 쓸데없는 것인지, 그나마 보존가치가 있는지. 그렇게 평가받고 분류되겠지.
지식의 함정에 빠지지 말고, 정책에 편승하지 말고 올곧이 학문만으로 존재할 수 있을까? 과연, 그러하다면 그것이 정답일까?
학문의 독주나 정책과 따로가는 학문은 왜 필요하지 하는, 그러면서도 드는 생각은 '유리알 유희'라니 참으로 알다가도모를 머리속.
최소한 진솔한 면은 갖고 있어야 하겠지. 무엇이 거짓이고 참인지 정도는 구분할 수 있어야 하겠지 하고 '글'에 대해 바래본다.
- 2013 축산물 유통실태의 편집을 마감지으면서, 군포에서. 김성호.
'일기 > 우리가족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머뭇거림 (0) | 2013.10.27 |
---|---|
하품 쩌어억 (0) | 2013.10.23 |
행복하다는 것에 대해 (0) | 2013.10.18 |
2013년 10월 16일 오후 07:05 (0) | 2013.10.16 |
2013년 10월 10일 오후 09:01 (0) | 2013.10.1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