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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우리가족 이야기

아내에게 엄마와 남편이란

by 큰바위얼굴. 2021. 4. 22.

나는 엄마에게 참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엄마가 할 수 있는 방법 중 최선의 것으로 항상 물신양면 50이 되어가는 딸을 미성년의 아이처럼 살뜰히도 챙겨 주신다.
주변의 여느 엄마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게,,, 사람들은 부러워한다.
넉넉하게 챙겨주심이 이제 내게는 어쩌면 당연하게 느껴지는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 와중에 엄마에게 바라는 것이 생겨 버린다.
부족한 부분에 대한 염려나 걱정 대신 그럼에도 잘하고 있다는 격려가 있었으면 좋겠고,
나와 내 가족에 대한 평가가 사뭇 동생네와 비교됨이 느껴지는 것에 대한 내 열등감,,,,
예를 들어 가게 문닫고,,혹은 김서방 혼자서,,,,,,, 민석이는 힘들어서 안된다.
그리고 함께 여행가자는 말에 대해 힘겨워 못 간다 잘라 말하시곤 며느리의 제안에 흔쾌히 응하심에 대해,,, 물론 실제 여행을 가시지는 않으셨지만....

 

민석이네 첫째아들 부성이의 돌 축하의 자리


우리 엄마는 내게 항상 말하신다.
“쟤들은 조금만 챙겨줬어~~” “택배도 너한테만 보내~~”
눈으로 보지 않았지만,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데,,,, 가끔 원교가 하는 말속에서 확인되는 사실과 별도로,,,,
왜 내 눈치를 보실까? 나는 지난 20년간 참 많이 받았는데 ,,, 이제 걔들이 앞으로 20년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르는 데,,,, 내가 샘을 낼 것처럼 보였을까? 욕심쟁이로 봤을까?

왜 난 항상 엄마에게 짠한... 가여운... 고생스러운,,,, 뭐 그런 딸일까?
결혼 십년 차에 울면서 대들어 “너 하나 희생하지 않으려고 살았다”는 말로부터 벗어났었고,
내 남편은 내게 너무나 소중한 사람이니 제발 내게 흠잡지 말아달라고 부탁했었는데,,,
(당신이 읽게 된다면 오해하지 말길,, 그때 당시 당신이 삭삭하지 못함에 대한 언급이,,,,)
이제 다시 10년이 되어 가니 잊혀지신걸까?

물론, 그때 이후로 본인이 선택한 삶에 대해 내게 짐지우시는 말씀을 더 이상 하시지는 않고,
내 남편에 대해 더 많이 챙겨 주시고 칭찬도 많이 해주신다.
내 남편은 진심으로 장인 장모를 위한다. 내가 시댁에 하는 것에 비할 바 안되게,
어쩌면 나는 남편에게 비하면 진심보다는 의무감에 더 가까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간혹 느껴지는 내 힘겨움에 대한 원망이 남편이나 아이들에게 쏠리는 때에,,
나는 와르르 무너지는 심정임을 엄마는 모르시는 것 같다.
나도 힘겨울 때가 있다. 감당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내아이들과 내 남편은 내 자존심이며 나 그 자체이다.
지금의 내 상황이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괜찮지 않다.... 난 괜찮지 않다.
들키고 싶지 않았는데 엄마한테 딱 들켜버린 때문일까,,,, 마음이 나락으로 떨어져 버린다.


물론, 어떤 마음에서 그러시는지,, 왜 그러시는지,,, 심지어 예민한 눈치까지,,,,
이해 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나는 서운함을 입 밖으로 내지 않는다. 못했다.
순간의 감정에 쏠려 뱉어버린 말들을 이후에 수습하기도 어렵고, 밑천이 그렇게 까지 들어나는것도 싫어서겠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대단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가 어렵다.
지금 내 모습이 이렇더라도 내 본질은 이와 다르며, 차후의 나는 지금과 다를 것이다.
이 허황된 생각을 내려 놓아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만, 그것은 생각일 뿐 실제로 받아들이기기 어렵다.

내 아이가 삼수생인 것
내 아이가 공부에 소질이 없다는 것 그래서 고졸의 평범한 인생을 살아갈 것 같은 막연한 두려움
내 남편이 억울하게 한직에서 고생하고 있고, 주말 부부를 기약 없이 해야 하는 것,
내가 돈도 못 버는 보잘 것 없는 블록방 사장이라는 것,
내가 수의사지만 그 전공을 살리지 못한 것
내가 20년을 고생해서 자산을 일구었다지만, 실체를 알 수 없고, 나는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가난하다 생각되고 그로인해 인색해지며 여유를 찾을 수 없다.
양가 부모님으로부터 그 역할이 줄어들면서 당연히 주도권을 빼앗긴 것 같은 느낌도 인정하기 힘들다.
이것이 나인데,,,

나는
큰아이가 그래도 들어보면 알만한 대학에 입학하기를 바라고
둘째가 명문대는 아니어도 적어도 충대는 갔으면 좋겠고, 그 와중에 좋아하는 일을 찾았으면 좋겠고
남편은 본원으로 다시 돌아와 얘전처럼 호기롭게 일을 꾸려 갔으면 좋겠으며
내 블록방은 얼른 처분하고
주말에 가족들과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거나아니면 빈둥거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니라면 뭔가 새로운 일을 도모하면서 내 모든 것을 갈아 넣을 열정적인 일을 찾아도 좋겠다.

문제는 내가 바라는 것의 대부분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
그로 인해 내 가족들이 힘들다고 한다.
근데 나는 나와 내 가족을 분리하는 게 불가능한 것 같다.
그게 가능한건가?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선물을 받고 많은 이벤트가 있었던 이번 생일에 나는 그 만큼 행복했었던가?
행복한 것에 익숙하지 못한 내 스스로의 문제가 아닐까?
다시 오지 않을 그날인데,,, 뭐가 중해서 그렇게 보냈을까?
완벽했던 그 며칠이 인생에 몇 번이나 온다고~~
아이고야 답답이 곽서희야~~~


행복도 공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므로 나는 순간순간 깨어 있고 충분한 노력을 해야 한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데 익숙한 나는 앞도 뒤도 보지않고 당장만 생각해도 좋겠다.
효율, 가성비,, 이제 그런거 좀 내려놓자
나도 20만원짜리 신발을 신어도 되고 딱 한 개 말고 여러 개 가져도 된다.
지금부터 흥청망청(가능할까?내가?) 쓴다해도 어쩌면 죽을 때 까지 다 쓰지 못 할 수도 있는데...
꼭 죽을 고비를 겪어봐야 알 것인가,
그냥 이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만약 내게 삶이 딱1년만 주어져 있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삶을 대하고 내 주변 사람들을 대할 것인가?

지난 주말에 여러차례 생파를 했음에도 당일은 당일의 맛이 있다며
저녁에 야식과 함께 생일축하를 하자는 영록이의 제안을 이런 저런 이유로 미뤘다.
아,,,,, 나는 우리 엄마 딸이 맞다... 어쩜 그렇게 닮았을까?
위하는 마음은 알아주지 못하고, 가성비, 효율을 우선시 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생일도 아니고, 돈도 아니고 메뉴도 아니고 준비하는 큰아이의 마음일것인데,,
아빠가 없으면 본인이 대장같은 느낌이라 좋단다. 그래서 얼른 가장이 되고 싶단다,,
철없다 생각들다가도 ,,, 참 엄마아빠 많이도 닮았다 싶다.

글이 산으로 간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보자

“부족한 부분에 대한 염려나 걱정 대신 그럼에도 잘하고 있다는 격려가 있었으면 좋겠고,
나와 내 가족에 대한 평가가 사뭇 동생네와 비교됨이 느껴지는 것에 대한 내 열등감,,,,“

내가 엄마한테 바라는것과,,,
어쩌면 우리 아이들이 내게 바라는 것이 동일한 것이 아닐까싶다.

내려 놓음이란 것이 실제로 가능할까?
내어 놓은 빨래 속 영탁이 양말 안에 있던 휴지,,,,, 뒷꿈치를 까내다 도저히 그냥 걷기 어려운 상황이 아니었을까 짐작하며 가슴이 아파온다.

본인인들 공부를 잘하고 싶지 않을까?
다가오는 미래가 두렵지 않을까?
엄격한 기준을 가진 엄마 아래 얼마나 속이 아팠을까?

아이들이 완벽하길 바라고, 그 기대에 맞추길 재촉하는 나,,,,
혹시나 부족하면 채워줄 수 있는,,, 뒷배가 되어줄 능력이 되는,,,,그런 내가 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영록이는 자신을 세운듯하고 어찌되었건 좌충우돌 본인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 같고,
우리 탁이는 기센 엄마,, 둥지 밖으로 밀어내는 어미새 같은 엄마덕에 속이 썼었을 거 같다.
탁이가 더 이상 눈치 보지 않고 공부를 하든, 놀든, 뭘 하든 더 이상 눈치보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다. 근데,, 이것에도 전제가 있으니,,,(뭐가 되었건 열심히 해야한다,,,는 나의,,,,,)
사람이 어찌 단숨에 바뀔까,,, 흠,,,,

평생 알바만 할까 걱정되었던 윤호
카센타, 간호사 하면서 잘 살고 있는 친구
택배 방과후선생님 하면서 잘 살고 있는 정숙
야가다 하면서 벤츠타는 정아네

물론 민석이네처럼 그럴듯한 직장과 사업체를 가짐 삶이 부럽긴하지만.
그건 내것이 아닌데,...

나와 남편은 아이들의 뒷배가 되어줄 능력을 가지고 있으니 그 얼마나 다행인가?

아,,, 민석이,,,,원교,,,,
원교가 내 동생 민석이의 짝이라 아랫사람이지만,
한 사업체의 대표이사이고 친정은 부자고,,, 그럼에도 인성도 좋은 훌륭한 사람
내 동생 민석이는 누구의 도움 없이 스스로 공부하고 대기업에 들어가고
타고난 사회성으로 한자리 잘 꾀어찬 능력있는 사람,,,
이런 두사람과 나를 비교하지 말자,

월수입이 나의 두 배 이상이면 나보다 더 쓸 수도 있고.
나보다 더 많은 것을 해주는 아들에게 더 많이 해주고 마음 쓰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
손자를 봐준다는말에 깜놀하긴 했지만,,,뭐,, 무튼,,, 그것은 부모님과 그들의 관계이므로 나는 제 3자,, 나한테 봐달라 하지 않은 것에 감사할일~

그리고,,
이름 석자 쓰기만 해도 가슴 먹먹해지는 우리 남편 김, 성, 호
가끔씩 속을 뒤집어 놓는 구석이 있지만, 그 순간조차 내게 진심인 이사람
세월이 가면 갈수록, 그 마음의 깊이를 도대체 알기 힘든 이 남자
20년을 한결같이 예쁘다 해줘서 고맙고,
속 좁은 나를 어르고 달래 여태 함께 해준 이사람,,,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표현이 서툰 적은 있어도 진심이 아닌 적이 없는 내 남자,,
다음 생에도 같이 살고 싶은데 쉽게 허락하지 않는 도도한 내 남자,,,
여보~ 많이 고마워~~ 사랑해~~

2021.04.22




> 고맙다. 사랑해. 그리고 사랑하고 사랑할께. 성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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