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짐에 강한 애착을 느낀다.
그런 면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느낀다. 감정이 인다.
그리고, 자각한다. 살아가는 것이 생각 속에 머무는지, 바람인지, 과거인지, 기대인지.
다시 두 눈을 꿈뻑 거리고나서 고개를 흔든다. 그래서 남은 건?
남긴다는 것에 큰 애착은 없다. 아직.
다만, 그래도 살아가는데 흔적은 추억이 되어 그리움으로 간직해도 좋지 않을까 생각되는 때면 적는다. 곰곰이 생각에 잠겨든다. 지금 느끼는 감정에 대해 적는다.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어제 있었던 일들과 오늘 있었던 일들이 빼곡히 적혀있다. 심지어, 앞날에 대한 기대까지 넘쳐난다.
누구나,
누군가.
그리워 한다는 감정에 대해 자세히 묻는다면 글쎄요 라는 답을 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외롭다 라는 감정에 대해서는 아주 깊숙히 찍어 맛본 된장의 진한 맛을 표현하듯이 알려줄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살아 뭣해? 라는 말에 대한 답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 심정에서는.
잠잠하다가도 소용돌이치고, 가슴이 턱 막힌 것이 마치 뚫린 콧구멍으로 숨을 몰아셔야 하는 답답함만 할까마는 이죽거리듯이 변죽을 올리는 감정이란 건 마음을 들었다놨다 한다. 넘어져서 골절이 났다는 소리에 덜컥 거린다. 그럼 엄마는? 노인은 넘어지기 쉽상이요 그러면 부러지기 쉽다는 말을 들어봤음에도 어찌 이리 간과했을꼬 라고 자책한다. 조금 만 더 강하게 말할 껄이란 후회를 한다. 아버님, 이제 좀 의지하면서 사세요. 불안해 미치겠어요. 하는 말을 들려주면 어떨까?
들어주실까?
과연.
마주 못한 삶은 아닌 듯 하다.
편안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듯 하다.
주변엔 온통 움직여 하고 소리쳐도 그저 몸이 편안한 것이 마냥 좋은가 보다.
더할 나위 없이 바랄 것 없다는 걸 몸소 보여준다.
그래서, 나라면?
과연.
종일 누워 있을 수 있겠는가?
그 꼴을 보아넘길까?
어쩌면 지금 내 모습을 바라보면 어떤 걸 떠올리니 하고 묻고 싶어진다. 좋아? 싫어?
이게 정말 좋고 싫고의 문제였어? 하고 반문한다. 시간은 흐르기 마련이고 그 흐름 속에 감당한다는 표현이나 극복은 온전히 자기몫이라고 본다고 해야 할까? 그러면 되었다 했던 것이 착각이었겠지. 사색이 잠긴 시간, 그리고 나와 대화한 시간이 즐거운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나라면?
한 칸 두 칸 세면서 쉬이 놓치 않으려 애쓴다.
달리는 걸 멈추는 순간 왠지 패배자가 된 듯이 싫다고 외친다.
계속 달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간절함이 계속 울린다.
한 칸 두 칸은 어느 사이 일백을 넘어섰고 다시 센다. 백을 떼어내고 세는 순간, 다시 시작하는 기분이 든다. 가만히 들여다본다. 그 느낌을. 그리고 다시 이백에 도달하고 나니 벅차다. 잘 뛰었어 하는 칭찬도 돌아온 그 길도 줄기줄기 뻗어 하늘 거리는 아까시아 나무들도 모두 멍한 정신에 붙잡을 수가 없다. 오히려 조금만 더 뛰자. 그래, 저기야. 하면서 달린다. 그리고 정한 목표에 닿은 순간 그래 좋았어 라면서 비탈길을 걸어 내려간다. 등에선 땀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산다는 것,
사라진다는 건,
죽음을 말하기 보다는
어쩌면 살아있는 지금 이 순간이 '이다지도' 좋을 수가 없는데 하는 감정을 되살려보길 바란다.
그 어떤 것도 무한할 수 없다.
시간이 흘러 나이티가 나는 늙음이 있다면 시간을 비껴간듯이 매끈한 피부 또한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그 뿐. 잠시 머물다가 떠난다. 만났고 헤어진다. 누가 정하지 않았다. 그저 만나 이어져서 가족이 되었고 그 가족이 잘 되기를, 잘 살기를 바랐다. 그리고 헤어짐이 다가올 수록 감정이 무르익는다. 마치, 너도 얼마 남지 않았어 하는 듯이 묻는다.
받아들인다. 맞아. 지금 뛰는 이 노력은 잠시 뿐일 꺼야. 단지, 병들고 지친 몸에 축처진 정신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싫어서 그래. 잘 죽는 것, 잘 죽는 것 또한 노력이라고 봐. 그러니까 뛰는 거야. 난 오늘 이런 생각을 했다.
잘 살아가는 것 못지 않게
잘 죽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살아간다. 계속 산다.
이 말은 달리 말해 죽어간다. 계속 죽는다로 돌려 말할 수 있다. 내가 아니어도 나의 탈을 썼든 환생을 했든 다른 면에서 살든 차원이 다르든 어찌 되었든 죽음은, 사라짐은 끝이 아니라 그 시작점이라고 믿고 싶다. 장인어른, 만나서 즐거웠어요 하는 말을 굳이 전하지 않아도 함께 한 시간만큼 들인 정성과 마음이 같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 마음이,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는, 그 간절함이, 그 안타까움 마저도 말로 전할 수 없어 더 퉁명스러운 것일지 모르겠다. 한 잔 술에 털어넣는 그 모습을, 한 잔 더 받으세요 하며 권했던 그 술 잔이 사라졌듯이 하나씩 차곡차곡 추억이라는 앨범에 쌓였나 보다. 그래 사라진 것이 아니라 쌓은 거다. 보관한 것이고, 기록한 것이다. 그러니 되었다. 지독하게 깊숙히 아파하지 않아도 좋겠어. 몸을 떨지 않아도 좋겠어. 벗어나지 말고 빗나가지 말고 그저 담당히 여기자. 이 또한 연습이요 실전이다.
그래도 못내 아쉬움이 남는 건 아직 크게 뛰는 심장소리 때문일테다. 성호.
> 2019년 9월 13일 대구에서
빈 자리가 아쉽다. 그 놈의 감정이 뭐길래. 그냥 좀 털어. 어차피 죽으면 똥 되는 거여. 뭔 필요여. 소원을 들어줘 라고 바라지나 말고 그냥 햐. 이 놈의 새끼 왜 그런댜. 이 생에서 마주하지 않을 껀가봐. ..
(물론 나도 여기에 포함된다. 굳이, 글쎄 하는 만남이 있기 마련이니. 아쉽고 아쉬워 그 마음을 남은 이들에게 듬뿍 안기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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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自`2022.06.09 08:35
6.3. 응급실 내원 후 입원하여 진단받은 결과, 고관절 골절(대퇴부 경부).
6.9. 10:30 인공 고관절 부분치환 수술. 1주일 입원 후 집근처 외과에서 입원 1주~4주 재활치료로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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