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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나의 이야기

고립이 자유로 바뀌는 이유

by 큰바위얼굴. 2024. 12. 21.


가리는 것 만으로 충분할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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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이 자유로 바뀌는 이유

세상에는 한 가지 이름 아래 다양한 의미를 담은 단어들이 있다. 별명이란 것도 그렇다. 어쩌면 사전에 정의된 뜻은 있지만, 실질적으로 그 이름에 어떤 감정과 의미를 부여하는지는 각자의 경험과 관계에서 비롯된다. 그 관계 속에서, 어떤 이들은 다가가고 싶지 않다. 만나고 싶지도, 함께하고 싶지도 않다. 왜일까? 그저 서로가 만나서 좋았던 기억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소속감을 느낀다는 건 무엇일까. 내가 한 조직에 속해 있다는 느낌은 단순히 거기에 몸담고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곳에서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며 도와주고 응원하고 지지해줄 때 생겨난다. 그런데 그런 경험이 전혀 없다면, 소속감을 느끼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을까. 내가 누군가를 필요로 하지 않았고, 누군가도 나를 필요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연락 한 통조차 오가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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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관계의 단절은 결과적으로 내 스스로 만든 것이기도 하다. 그동안 내가 그랬으니, 그들도 그렇게 된 것이다. 마치 거울처럼, 내가 외면했던 것들이 되돌아온 결과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상황에는 분명 이유가 있다. 누군가 나를 비난하고 배척했다면, 그것은 나로 인해 어떤 감정을 느꼈거나, 내 행동이 그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이유로 나는 밀려났고, 밀려난 자리에서 멀리 날아오르는 새처럼 자유를 마주하게 되었다. 어쩌면 고립이라 느꼈던 것은 자유였다. 누군가의 얽힘에서 벗어날 기회를 얻은 것이다. 아쉽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테지만, 그 고립 속에서 얻어진 자유는 내 삶에 전환점을 만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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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자유가 항상 평온한 것은 아니었다. 스스로 선택한 고립 속에서도 한편으로는 초조함이 깃들었다. 나는 다르다는 이유로, 세상의 평범함과 어긋난다는 이유로 밀려났을까? 아니면 나 자신이 그런 상황을 초래했을까?

이 모든 생각 끝에 깨달은 사실은 하나였다. 사람은 누구나 부족함을 가지고 있고, 그 부족함을 채우거나 보듬을 기회를 가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서로를 적대하고 배척하기를 선택한다는 것이다. 특히 조직이라는 이름 아래,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서로를 경계하며 자신만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그 결과 나는 어느새 홀로 남았다. 누구와도 연락하지 않는 상태로, 조직이라는 이름 안에서도 외부인처럼 느껴지는 존재가 되었다. 결국, 나는 자유를 얻었지만 동시에 관계의 끈을 놓게 되었다.

이제는 안다. 내가 그들에게 끼쳤던 해가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 또는 내가 살아가는 모습이 그들에게 자극이 되었을지. 어쩌면 나의 고립은 자유가 되었고, 나의 자유는 새로운 길을 여는 시작이 되었을지 모른다.

이 이야기는 한 50대 남성이 직장에서 겪은 일들, 그리고 소속감의 상실과 그로 인한 고립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며 깨달음을 얻는 과정을 담고 있다. 위로하거나 격려하기보다는, 세상의 이면을 있는 그대로 묘사한 이야기로,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인간관계의 복잡함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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