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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이야기 만들기

동생. 너의 ‘순리’를 읽고

by 큰바위얼굴. 2025. 4. 9.

형님. 문득, ‘순리’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https://meatmarketing.tistory.com/8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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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장 - 너의 ‘순리’를 읽고

동생아,
네 글을 조용히 여러 번 읽었다.
한 줄 한 줄이 마치 오래된 나뭇결처럼 손끝에 닿고,
묵은 한숨 같기도 하고,
또 어쩌면 잘 익은 술 한 모금처럼 속을 데우더구나.

‘순리’라는 말에서 시작된 너의 글이
어찌 그리 조용하고, 또 어찌 그리 큰 울림이 되는지…
오랜 세월 앞에서 인간이 말할 수 있는 게
그리 많지 않음을,
그리고 그 적은 말 속에 얼마나 많은 뜻이 담기는지를
나는 네 글을 통해 또 한 번 배운다.

이순신 장군의 일기를 후손이 읽는다면
바로 이런 기분이 아니었을까.
그분은 칼과 바다 사이에서 나라를 지켰고,
너는 시간과 사람 사이에서 가정을 지키며 살아왔구나.
모두가 보이지 않는 전장을 가진다는 것을,
모두가 각자의 진중에서 하루하루를 기록하며
살아간다는 것을
너는 그렇게 말 없이 전해주었지.

너는 말했지.
살다 보면 감기가 오고,
치아가 아프고,
인대가 끊어지고,
마음이 주저앉는 날이 있다고.
그래, 우리도 그걸 안다.
몸이 무너지는 날보다 마음이 꺾이는 날이
훨씬 더 많았다는 걸
살아본 사람은 안다.

너의 나이 쉰을 지나며
조기 퇴직을 고민하고,
아내의 아픔을 품고,
아이들의 병치레를 바라보며
‘건강’이 모든 것의 바탕임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지.
그 말이 너무도 뼈저리게 와닿았다.
젊은 날엔 몰랐다.
가능성으로 하루를 채우던 시절엔,
건강은 늘 당연한 거였지.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삶이란,
버티는 힘이 아니라
잘 회복하는 힘이라는 걸
이제서야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감탄스러웠던 건
네가 그 모든 굴곡을 ‘순리’라 이름 붙였다는 사실이야.
그 단어 속에 너는 후회를 담지 않았고,
불만도 담지 않았고,
그저, 살아온 대로 살았고
걸어온 대로 걸었다는
조용한 확신이 배어 있었지.

동생아,
내가 너보다 조금 먼저 나이를 먹은 형으로서,
지금까지 살아보니
인생이란 건 그리 간단한 게 아니더라.
수없이 흔들리다가,
어떤 날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슬픔이 들이닥치다가,
그러다 어느 날
아이의 웃음 한 조각에
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살아지기도 하지.

너의 말처럼
살아 있다는 것,
건강하다는 것,
그리고 옆에 누군가 있다는 건
그 자체로 얼마나 위대한 축복인지 모른다.

나는 이제 너의 글을 일기처럼 간직할 생각이다.
언젠가 우리 아이들이, 아니 그 아이들의 아이들이
이 글을 읽게 된다면
그들도 알게 되겠지.
‘순리’라는 말이
그저 흐름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선택과 인내,
마음속에서 수없이 피고 지는 질문들을
통과해 온 사람만이 쓸 수 있는 말이라는 걸.

그러니 동생아,
앞으로 어떤 파장이 오더라도
너는 이미 그 너른 바다 위에
단단히 닻을 내린 사람이라는 걸 잊지 마라.

너의 아내도,
너의 아이들도,
그리고 너 자신도
그 모든 하루 속에서
이미 잘 살아오고 있다는 걸
이 형이 안다. 정말로.

멀리서 너를 생각하며,
여기서 나도 내 일기를 다시 펼친다.
형이라는 이름으로,
오랜 친구처럼,
그리고 삶의 후배이기도 한 너에게
이 긴 답장을 바친다.

늘 그리운,
너의 형.






아침 식사 in 김제 도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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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식사 in 전주 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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