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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이야기 만들기

형님. 문득, ‘순리’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by 큰바위얼굴. 2025. 4. 6.

문득, ‘순리’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별다를 것 없는 하루였는데도 말이지요. 참 이상하지요?
세상은 여전히 살아볼 만하다고 느껴지는데,
그러면서도 아픔은 늘 예고 없이 다가옵니다.
한가로운 날들 속에서도
어김없이 가족 중 누군가의 건강이 무너지고,
치아가 욱신거리거나, 감기로 몸이 축 처지거나,
어디선가 열이 오르고, 관절이 삐끗하고,
혹은 마음마저 어두워지는 날도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부딪히고 감싸며
굴곡진 일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순리’라는 말은 ‘순탄함’을 뜻하는 건 아니지요.
우여곡절이 있더라도,
비틀리고 흔들리더라도 결국 ‘정도’를 걷는 것.
그 많은 시행착오를 품은 채
그래도 삶의 중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채
흘러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겠지요.

만약 바라기만 해도 무엇이든 이루어졌다면
‘순리’라는 말은 아마 필요 없었을 겁니다.
이 말 속엔 얼마나 많은 감정이 숨어 있는지요.
순리를 따른다는 건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살아온 시간들이 결국 순리의 토대 위에 세워졌다는 걸
알고 있다고 해도,
때론 전혀 다른 삶의 장면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 사람은 어떻게 저런 선택을 했을까?”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하지요.
그러나, 어떤 길을 선택하든 그것은 각자의 몫이며,
그로 인해 겪게 되는 결과 역시 그 사람의 삶이겠지요.
누가 대신 걸어줄 수는 없으니까요.
그게 바로 삶이고, 사람이지요.

지금 나는 쉰을 넘긴 나이에
조기 퇴직을 고민하며 새로운 삶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남은 생을 조금 더 젊게,
조금 더 건강하게,
조금 더 나답게 살아보고 싶어서요.
그런데 아내는 요즘 갱년기의 변화로 몸이 많이 힘들어졌습니다.
퇴행성 관절염 진단까지 받았고요.
아이들은 잦은 감기와 다친 인대로 병원 문턱을 오가고…
이 모든 것이 그저 ‘우연’일 뿐이라지만,
결국은 건강이 기본이라는 진실을 다시금 되새기게 됩니다.

무언가를 해보려면,
무언가를 누리려면,
무언가를 나누려면,
우리는 살아 있어야 하고,
건강해야 하니까요.

그래서 이제,
나는 이 삶의 어느 지점에서 멈추지 않고
길고 긴 서사시 같은 이야기를 써내려가려 합니다.
그 안에는 따뜻한 식탁의 풍경이 있고,
아내의 잔잔한 웃음소리가 있고,
아이들의 소란스런 웃음과 때론 아픈 울음도 담기겠지요.
마치 이순신 장군이 적을 맞기 전
고요한 밤, 진중에 앉아 남긴 일기처럼요.

아직은 긴박한 나날들 속에 있지만
그 사이사이에 흐르는 여유를 붙잡아,
지금 이 삶을, 지금 이 ‘순리’를
이야기로 남기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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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보게, 형님.
이건 어느 조용한 새벽, 바람에 흔들리는 창틀 소리와
먼 데서 들려오는 개 짖는 소리를 배경삼아
고요히 써 내려간 한 남자의 순리 일기라네.


《순리日記》
五十을 넘긴 사내의 이마 위에 내려앉은 시간의 안개 속에서


세상은 오늘도 어김없이 돌고 도는구나.
해는 뜨고, 아이들은 감기에 걸리고,
아내는 관절을 매만지며 일어섰고,
나는 아직 남은 시간을 헤아린다.

"순리."
그 말 하나가 떠올랐다.
무슨 대단한 사건도 아닌데,
유난히 가슴 속에 오래 머물렀다.

세상은 말이지, 참으로 살아볼만하더이다.
가끔은 벗들과 웃으며 술잔을 기울이고,
가끔은 자식들 다투는 소리에 가슴이 저며오고,
그 사이사이, 삶은 조용히 흘러간다.

허나, 이게 끝은 아니지.
고요함 뒤에는 늘 파도가 있더이다.
치형이는 학교에서 또 뭔가를 사고쳤고,
영탁이는 훈련소에서 손 편지 하나를 보내왔더구먼.
영록이는 무릎을 부여잡고,
“아빠, 나 왜 이렇게 피곤해?”
하는데, 대답 한마디가 쉽지 않더이다.

아내는 요즘 갱년기인가 보다.
아침에 자주 깨어나더니, 한밤중엔
창밖만 하염없이 바라보며
“내가 너무 늙었나 봐.”
하고 혼잣말을 흘렸다.

그럴 때 나는 속으로 다짐하네.
이 또한 순리다.
꽃도 지고, 새순도 나고,
여기까지 함께 걸어온 이 삶이
그저 멀쩡한 것이 기적이었지.


그래, 형님.
순리란 단지 순탄한 길이 아니더이다.
우여곡절, 시행착오, 아픔과 회복이
뒤섞이고 엉겨서
이제야 비로소 ‘정도(正道)’라 불리는 게지.

누구의 지시도 아니고,
누가 끌어준 것도 아니고,
그저 살아냈더니 여기까지 온 것뿐.


이제 나는 조기 퇴직을 준비하네.
시간이 더 나를 부르기 전에
내가 먼저 삶을 찾아 나서볼까 한다네.
못 가본 땅이 아직 많고,
못 만난 이들이 아직 남았으며,
하고 싶었던 말들이
가슴 안에서 자꾸만 뭉글거린다.

아내와 함께 걷고 싶네.
멀리 제주의 올레길도,
가까운 집 앞 공원도.
아무리 천천히 걸어도 좋으니
함께였으면 하네.

아이들은 점점 자라고
자기 인생의 길로 나아가리라.
나는 그 길목 어귀에서
따뜻한 국 한 그릇
말없이 내어줄 준비를 해두겠네.

그리하여 어느 날,
모든 것이 고요해진 날엔
이렇게 말할 수 있겠지.

“이만하면 참 잘 살아온 거구나.”


바람이 분다.
아직 겨울은 멀었는데
벌써 봄꽃이 질 준비를 한다.
그게 순리인가보다.

다만, 형님.
건강은 지켜야 하네.
아무것도 아닌 듯 흐르던 시간들이
병 하나로 송두리째 달라지니 말이야.

몸을 돌보고, 마음을 보듬고,
사랑하는 이들을 다시 바라보게.
우리가 그토록 원하던 삶은
이미 곁에 있었다네.


이순신 장군이 진중에서 조용히 붓을 들 듯이,
이 나이 든 남자도 오늘, 삶을 기록한다.

순리로 살아온 시간들이여.
앞으로도 순리로 살아가게 하소서.


이런 이야기, 어땠는가?
말끝마다 따뜻한 밥 냄새가 나는 것 같고
흙 묻은 신발 벗겨주던 어머니 손길 같은 느낌이랄까.
이제 형님 이야기를 여기에 보태볼까?
아내와 나눈 소소한 대화,
아이들 걱정, 젊은 날의 한숨 같은 것들 말이야.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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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동생. 너의 ‘순리’를 읽고  https://meatmarketing.tistory.com/8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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