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혼식을 맞아 우린 일정을 짰다. https://meatmarketing.tistory.com/8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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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전 우리의 시작에게
성호가 서희에게
2025년 5월 7일, 우리 결혼 25주년을 맞이해.
그날을 기념하며, 우리는 “25년 전 우리에게 편지 쓰기”를 하기로 했어.
지금의 우리가 그때의 우리에게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까, 궁금하거든.
나는 네게 다가가기까지의 여정을 떠올려 봤어.
대학교 4학년, 수의학과 재학 중이었고, 수의사 국가시험을 준비하면서 충남대학교 국가고시준비위원장을 맡고 있었지.
그때 경북대학교 위원장에게 부탁해서 미팅을 주선받았고, 그렇게 널 만났어.
반 장난처럼 “만나게 해줘” 했던 그 부탁이 지금의 인생을 좌우하게 될 줄이야. 참 놀라운 일이야.
물론 순탄치만은 않았어.
4학년 1학기, 네가 포함된 네 명의 여자를 만났지.
간호장교, 대학 후배, 소개팅, 그리고 너.
참 다사다난한 한 학기였어.
그땐 뭔가 열려 있었던 시기였어.
모든 걸 내려놓고, 나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냈던 때.
지금처럼 무겁고 책임감 있는 모습보다는 가볍고 있는 그대로의 나.
그런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이라면 평생 함께하고 싶다고 생각했지.
모토롤라 휴대폰의 무게조차 가볍게 느껴질 만큼,
우린 열정적으로 사랑했고, 배터리가 다 닳도록 밤새 통화했어.
하지만 알고 있었지. 그 뜨거움이 오래 지속되기란 어렵다는 걸.
그 시기, 국가고시 준비는 모든 걸 압도했어.
족보를 만들기 위해 돈을 쓰고, 친구들을 동원해 바쁘게 지내면서
이성과의 관계는 점점 소원해졌고, 결국 자연스레 이별이 이어졌어.
그녀들에게 참 미안해.
친구처럼 편하길 기대했지만, 우린 어쩌면 처음부터 무게가 달랐는지도 몰라.
결혼을 전제로 한 교제는 우리 모두에게 벅찼던 것 같아.
그때 선물을 모두 돌려주며 이별을 말했던 일들…
지금 돌아보면 비겁했지.
그래도 진심이었어. 한때는 정말 좋았어.
복잡하고 엉뚱했지만, 그래도 열심히 살았던 시절이었지.
그리고 여름방학 즈음, 모두 정리됐고
2학기 개강과 함께 다시 너와 다시 연결됐어.
술에 취해, 모토롤라 휴대폰에 대고 소리쳤던 그날 기억나?
"너무 섹시해서 감당이 안 돼.
결혼은 자신 없어.”
그게 진심이었을까?
몰랐지, 네 가슴이 모유 수유로 작아질 거란 것도.
하지만 여전히 섹시하잖아.
그래서 난 여전히 널 갈망해.
사랑은 지극한 채움보다
기회와 기다림으로 이어가는 거라 믿게 됐어.
무심한 듯 스쳐가는 순간,
문득 네 뒷모습에 안기고 싶은 충동.
그게 우리 사이를 잇는 끈이었는지도 몰라.
만약 25년 전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조금 더 너를 알기 위해 노력했을 거야.
많이 대화하고, 많이 듣고, 많이 나누며.
대전 남자와 대구 여자의 차이를,
결혼 후에야 삶을 통해 깨닫게 될 줄이야.
그래도 난 버텼고, 넌 내 곁에 있지.
지금의 우리가 있어서, 참 감사해.
"당신과는 말이 안 통해."
가끔 네가 그렇게 말해도,
그래도 좋아.
함께하는 지금이 소중한 건 변하지 않으니까.
장모님과는 여전히 대화가 어렵지만,
괜찮아. 난 지금이 좋거든.
☘️ 성호야, 너에게 묻는다.
서희는 너에게 어떤 존재니?
양관식이가 애순이를 그렇게도 좋아했던 것처럼,
서희를 바라보는 너의 눈빛은 순정 그 자체.
성호야,
서희는 너에게 어떤 의미냐고 묻는다면,
말하겠어.
"내 심장을 뛰게 하는 여자."
서희는 섹시하고, 사랑스럽고,
나를 설레게 하고,
나를 웃게 하고,
때로는 미치게 만드는 여자야.
서희는 섹시하다.
꾸밀 줄 알기에 더 그렇다.
거울 앞에서 엉덩이를 흔들며 맵시를 보는 모습,
웨이브가 들어간 머릿결이 찰랑이는 모습,
부엌에서 또각또각 요리하는 뒷모습,
잠든 얼굴에서 느껴지는 충동까지—
모두가 너를 설레게 하지.
비난과 핀잔조차도 너에겐 사랑스러운 감정이야.
함께 고민하고, 함께 노력하는 모습,
아이들 책상에 나란히 앉아 공부를 도와주는 모습은
네가 못하는 일이라며 감탄하게 만들잖아.
넌 ‘아빠와 마주 이야기’도 했지.
공룡 시리즈는 반짝 인기를 끌었지만,
연재는 실패했잖아. 그래도 했다는 게 중요한 거야.
🕊️ 25년 전의 나에게
제발 두 눈을 크게 떠.
가슴도 마음도 한껏 열고, 세상을 마주해.
같이 보낸 시간 위에 서로의 환경을 덮어
공감할 수 있는 여유를 마련해 줘.
함께 해. 진심으로 함께 해.
술집만 찾지 말고,
등산, 바다, 고을, 유적지, 박물관, 미술관,
기차여행, 선박여행, 도서관, 영화관, 연극, 카페…
그리고 매 순간 뜨거운 밤도 함께 해라.
몸의 경계마저 뛰어넘어 “그래, 이 여자다!” 싶은 순간,
그때 고백해.
“한평생 함께하자.”
“아이 셋은 무조건 낳자. 영록, 영탁, 치형.”
지켜줄 거라고.
그래서 말해주고 싶어.
25년 전의 나에게.
그리고 지금 여기 있는 너에게.
"지금처럼. 변함없이.
서로를 바라보고 사랑하자."
내 삶에 너여서 참 고맙다.
내 곁에 너여서 참 행복하다.
성호가,
2025년 5월 7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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