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복을 차려입고 길을 나섰다. 25주년 기념.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의 오늘 일정에 술 마시기가 포함되어 있어 자동차를 두고 가기로 했다.
1차 장소, 멕시칸 음식을 좋아하는 서희를 위해 선택했다.
세트 매뉴를 시켰다.
한 쌈을 싸서 입에 넣어준다.
배 부르도록 먹고 한 잔을 걸친 후, 우린 2차 장소로 이동 중이다.
라운지 46을 향해.
예약을 했기 때문일까, 야경이 아주 멋진 장소에 소파로 자리를 정해주었다.
빛이 반사되어 아쉽긴 해도 야경과 한껏 부드러운 분위기를 담아내려고 했다.
오늘을 기념하리라
와인 한 잔 마시고, 밀애를 나눈다.
그리고, 우린 준비해온 '25년 전 우리의 시작에게' 라는 편지를 낭독한다.
> 25년 전 우리의 시작에게 https://meatmarketing.tistory.com/8626
25년 전, 서희에게
믿기 힘들겠지만, 지금 너는
어느새 쉰하나가 되어 있어.
갱년기와 관절 통증, 잠 못 드는 밤도 있지만
그래도 꽤 괜찮게, 멋지게 나이 들어가고 있어.
여전히 ‘성호 오빠’와 함께하고 있어.
세 아들을 잘 키워냈고,
오빠는 지금도 아침마다 눈을 뜨면 입맞춤을 해줘.
그리고 “예쁘다”, “사랑한다”는 말을
예전보다 더 자주, 더 진심으로 말해줘.
25년이 쉬웠을 리 없지만,
힘든 순간마다 오빠는 고목나무처럼
묵묵히 바람과 태양을 막아주며
우리 가족을 품어줬어.
가끔 무심해 보일 때도 있을 거야.
그건 표현이 서툴러서일 뿐이니까
의심하거나 시험하지 말고,
그만큼 더 사랑으로 감싸줘.
차분하게, 네 따뜻한 방식으로 알려주면 돼.
돌이켜보면, 그때 오빠도 겨우 스물일곱.
지금 우리 큰아들보다 겨우 두 살 더 많았던 그가
어떻게 가정을 꾸리고 너를 지켜냈을까 싶어.
두려웠겠지만, 너와 아이들 위해
젊음을 아낌없이 바쳤을 그 마음…
이제 와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더 자주 말해주어야겠어.
그리고 너, 서희.
그 어린 나이에 정말 잘 살아왔어.
고생인 줄도 모르고,
애쓰며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달려왔지.
조금 안쓰럽지만 너무 대견해.
네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어.
참 고마워.
그리고…
아직 끝이 아니야.
사랑하는 오빠와 앞으로 더 긴 세월을 함께할 거야.
지금보다 더 깊고 따뜻하게
함께 웃고, 함께 걸을 거야.
혹시. 편지를 읽는 중에
같이 갱년기를 보내는 성호 오빠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면
살포시 다가가 키스해주렴~
결혼 25주년을 맞이하여 중년의 서희가
https://youtu.be/JMQOSuzxF18?si=RE-6ErdKjag6BhC4
큰 아들보다 두 살 많은, 나의 남편 성호에게
아이구… 그 어린 나이에, 참…
겁도 없이 시작했더라.
뭘 제대로 알고 시작했겠니.
그저 곰처럼 우직하게,
앞만 보고 버텨낸 세월이었겠지.
그보다 더 철없던 나의 앙탈까지
말없이 받아주며
참 많이도 고생했어.
그냥 그때
“사랑한다”, “너밖에 없다”
그 마음을 조금만 더 과장해서
자주 말해줬더라면
나는 정말 아무것도 안 바랐을 텐데 말이지.
몰랐던 걸까? 아니면 알고도 부끄러웠던 걸까?
그렇게 서툴고,
참 요령 없었던 젊은 성호였지만
25년이라는 세월을 함께 지나며
지혜로워졌고, 부드러워졌고,
참 괜찮은 중년이 되었어.
아직도 자신을 위해 돈 쓰는 건 아끼고
술은 여전히 좋아하지만
갈수록 당신이 더 마음에 들어.
다음 생이 있다면
또다시 함께 살고 싶을 정도로.
그동안 우리, 참 많이 애쓰며 살아왔잖아.
이제는 조금 더 여유롭게
서로를 위해, 그리고 우리 자신을 위해
살아보자.
사랑을 더 많이 표현하고,
아낌없이 안아주고,
웃는 얼굴로 곁에 있어주자.
https://youtu.be/ujQQ5nxJzdQ?si=V-zvx7LxUUBLtiIs
https://youtube.com/shorts/OfOELb3rfjg?si=aaKzrrJrW6SChW-J
https://youtube.com/shorts/OfOELb3rfjg?si=aaKzrrJrW6SChW-J
우린 그렇게 25주년 기념을 서로의 마음과 몸을 확인하며 보냈다.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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