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의 시대들 – 1974, 2025, 그리고 2043의 단상
“내가 가장 두려워한 것은 죽음이 아니었다. 고통도, 단절도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망각이었다.”
– 《생존학 개론》 중에서
나는 왜 '생존학 개론'에 몰입했나? https://meatmarketing.tistory.com/8719
1. 1974년 – 기억은 고통이었고, 동시에 뿌리였다
1974년.
흑백 사진 속 사람들은 기억을 품고 살아갔다.
한국은 개발 독재의 그림자 아래 있었고, 베트남 전쟁의 끝자락에서 세계는 이상한 침묵을 공유했다.
기억은 고통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기억을 지워야만 살아갈 수 있었다.
민주주의라는 말을 속으로 삼키고,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뒤에도 삶을 이어가야 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누구였는지를 잊지 않으려 했다.
촌부는 농부로, 어머니는 어머니로, 학생은 꿈꾸는 사람으로 살았다.
기억은 곧 정체성이었고, 그 정체성은 삶의 의미였다.
망각은 죄스러운 일이었고, 자신을 잃는 일은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2. 2025년 – 기억은 정보가 되었고, 개인은 계정이 되었다
2025년.
우리는 이름보다 아이디가 익숙하고, 마음보다 피드백에 예민한 시대에 살고 있다.
모든 것이 기록되고 저장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더 자주 잊는다.
비밀번호를, 계좌번호를, 약속을, 말했던 말을, 했던 감정을.
망각은 기술이 채워주는 영역이 되었다.
캘린더가 기억하고, 클라우드가 보관하며, 인공지능이 대신 추억해준다.
그런데 문득, 질문이 떠오른다.
나는 여전히 나인가?
과잉된 정보 속에서 나는 내 안의 무엇을 놓치고 있는가?
기억의 외주화가 진행되는 동안, 내 마음의 목소리는 점점 희미해져간다.
우리는 살아간다기보다, 업데이트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3. 2043년 – 기억은 선택되고, 정체성은 설계된다
2043년의 세계를 상상해본다.
인간의 기억은 정제되어 이식되고, 뇌의 회로는 클라우드와 연결된다.
감정은 복제되고, 정체성은 디자인된다.
그 시절 누군가는 "망각은 축복이다"라고 했지만, 이제는 망각이 선택되지 않는 상태가 당연한 시대.
그럴수록 인간은 묻는다.
‘내가 진짜 나였던 순간은 언제였는가.’
기억을 저장하고도 자신을 잃는 아이러니 속에서, 우리는 다시 ‘인간성’을 되묻게 될 것이다.
더는 인간 중심이 아니더라도, 인간이라는 존재가 세상에 이로운 변수로 남기 위해,
우리는 여전히 자기 자신을 ‘잊지 않으려는’ 싸움을 이어갈 것이다.
망각, 그것은 인간성의 거울이다
망각은 단지 잊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을 놓아버리는 행위이기도 하며, 세상의 일부가 사라지는 일이기도 하다.
인공지능이 모든 것을 기억하는 시대에, 오히려 인간은 잊지 않기 위한 존재가 될 것이다.
기억의 정확성보다, 무엇을 붙들고 있는가가 중요해질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을 중심에 두지 않더라도,
인간이 이 세상에서 가치를 지닌 존재라는 사실만은 지속적으로 증명해 나가야 한다.
이 세상이 인간을 필요로 하는 이유는,
완전해서가 아니라, 잊지 않으려는 그 연약한 의지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의지가 멈추는 순간,
인간은 잊힌다.
잊힌 존재는, 더 이상 필요치 않다는 인식과 함께 세상에서 지워진다. 김성호 w/ ChatG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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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 태어난 날
2025 작성한 날
2043 그럴듯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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