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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우리가족 이야기

악몽

by 큰바위얼굴. 2021. 11. 8.

불길하고 무서운 꿈.

차라리 꿈이었으면 싶은 끔찍한 상황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악몽을 꿨다.

 

오늘도 악몽을 꾼다. 몸을 혹사시키기를 몇 달째 차라리 꿈을 벗어나는 것이 맞다싶어 시작했던 일이 다시 일어난다.

악몽은 되풀이 된다. 끊임없이.

가두고 채찍질을 한다.

비우고 아닌 척 하더라도 이조차 버겁다. 헤이, 게임 한 판 할까? 하는 연락이 반갑다.

 

악몽 (惡夢)

1. 불길하고 무서운 꿈.
2. 차라리 꿈이었으면 싶은 끔찍한 상황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악몽은 언제 꿀까?

 

악몽은 몰렸을 때 혹은 몰아세울 때 꾼다. 자신을 혹사시키면 어김없이 찾아온다. 몸이 부실하니 령이 흔들려 어찌할 수 없다. 악몽은 그렇게나 현실도피를 다시 힘들게 만든다. 잠조차 편치 않다.

 

(지금 내가 악몽을 꿨다는 것이 아닌 '악몽'에 대한 의견이다)

 

길몽 (吉夢)

좋은 징조의 꿈.

 

길몽을 바란다. 그렇다면 부실한 몸부터 채운다. 그리고 웃는다.

 

몽은 망으로부터 나와 자유를 찾을 때 나타난다. 령이 떠나는지 령이 그림을 그리는 지는 알 수 없지만 왠지 그럴 듯하다.

 

2016년 12월 14일 새벽 난 언어의 유희, '망'에 대해 빠져든다.

 

망. 잊을 망. 잊고 지운 흔적. 되살리지 못할 새김. 후회조차 없이 깔끔한. 반복되면 멍 해지는. 가볍지만 찝찝한 기분. 억울할 것 많은 속시원함. 잊은 거. 잊는 거. 잊을 거. 망신은 몸을 잊은 거. 초월이면 족하게 평온하면 족할. 망했다는 건 잊었다는 말. 잊음은 지운 것과 다른. ..

댓글 4일상기록/우리가족 이야기2016. 12. 14.

 

영록아, 네게 필요한 것이 어쩌면 망일 수도 있겠구나 싶다.

나 또한 힘들었고 견디고 아닌 척 견고한 척 있는 척 했는데 버거우니 비우게 되더라. 잊어도 되살아나 악몽으로 나타나고 벗어나려면 할 수록 나를 괴롭히더라. 벗어나고 싶다는 간절함이 결국 해법을 찾듯이 '망'에 연결되더라.

 

네 마음을 '망'에 기대어 한 번 쭈욱 써내려가보렴. 그리고 되뇌이고 되뇌이다 보면 '망'의 원인으로부터 벗어나 있을 꺼야. 내가 그러했듯이. 사실 '집착'이 강한 우리, 책임감 또한 무겁다. 가볍고 새털처럼 편히 살아도 좋을 것을. 어찌 그리 무겁고 힘들게 걸으려 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더라. 그래. 어쩔 수 없더라. 그렇다고 가벼워 지지는 않더라. 다만 마음가짐이 달라지기를 몇 번. 결국 찾은 답은 굳이 나중에 라는 말을 빼고 지금 할 수 있는 만큼 으로 정리를 하니 그렇게나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한결 나아지더라.

 

망은 망하기 위해 고추할 언어가 아니니 탓하려거든 '망'에 기대지 말고 그냥 지금처럼 지내도 좋겠다. 일상은 사실 너의 괴로움이든 아니든 마음과 상관없이 잘도 돌아간다. 언제 다시 일상을 맞이하여 일상을 일상답게 살아갈지 모를 일이다만 사실 그때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나 변할 것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모두 마음에 달린 일임이니.

 

부던히 숙고한다. 망에 대하여 공에 대하여. 그러다보니 거꾸로 찾아오는 반대의 말들. 결국 돌고 도는 것이 인생인 양 비우면 채워지고 채우면 비우게 하는 반복이 일상처럼 일어나더라. 한 가득 돈이 들어오는 걸 바라고 바라다보면 얻게 되는 날이 있기 마련이고 하염없이 주고 또 주니 그 만큼 또 들어오는 것이 돈이더라. 인심이 이와 다를까? 사람 마음이 다를까? 모두 같은 이치더라. 

 

무슨 이유에선지 모두가 쓴 건 뱉고 단 걸 찿더라

시련에는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다만 그 이유 보다는 이후 삶에 대한 달라진 자신으로서 살아가는 몫이 생각만큼 쉽게 살아지지 않기 때문에 시련이라고 칭하는 것이니 사실 아니 왔으면 하는 되새김 보다는 새로이 태어났다 여기는 것이 어쩌면 그 시련의 이유를 궁금해 하는 과거 자신의 발자취를 쫓아 끊임없이 고뇌하는 면과 같다. 어느 것 하나 같은 면이 없으니 이를 다르다 한다. 그렇게 다른 면 때문에 주변에 영향을 끼치니 어찌 고마운 대상이 아닐까. 자신으로 인한 아픔을 진하게 간직한다는 면은 애정이라는 바탕에 지극히 닿았음이니 어찌 이번 생이 실패라 여길까. 그 누가 애정을 진하게 느낄까. 다 이유가 있기 마련이니 자신몫으로만 여기지 말고 숨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그렇게 살아가면 되리라. 눈물은 아프기 때문..

댓글 2일상기록/궁극(Reach the end)2021. 11. 7.

 

우리가 어찌 이치를 모른다 할까. 다만 비껴가길 바라고 바라는 마음이 가득하니 벗어나지 못함이지. 그만 바라면 좋겠다. 악몽 또한 바라는 바요 길몽 또한 바라는 바는 똑같다. 흔히 단 걸 찾기 마련이듯 우린 길몽에 환희에 찬 소리를 지른다. 그런데 알고 보면 일상이 길몽의 연속은 아니지. 그러니 바라겠지. 일상이 길몽을 원치 않을 만큼 충분하다면 사실 길몽을 바랄 일 또한 없을 것인데 우린 자꾸 바라더라 이 말이다. 바란 마음이 간절함이 사실 힘의 원천임은 부인하지 못하겠다. 다만, 그 바람이 사실 너의 몫이 아닌 경우에는 부질없다는 것 또한 너무 잘 알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걸 하고 있으니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지. 사실 마음가는 대로 사는 사람이 그 얼마나 될까? 

만일, 마음가는 대로 사는 사람들이 많다면 수많은 종교나 수많은 이해갈등이 생길 이유조차 없지. 아니, 그렇다고 바라는 마음을 행으로 옮기는 걸 게을리 하면 안되지. 바라는 만큼 행한다. 그냥 지금 하면 된다 라는 말처럼 중한 것이 없는디. 사실 답은 모두 알고 있다. 부질없다는 걸, 연연할 필요가 없다는 걸. 그런데도 미련을 떠는 건 우리 자체가 미련스럽기 그지 없기 때문이 아닐까. 미련스럽지 아니하면 어찌 발전이 있을까? 미련스러우니까 자꾸 바꾸려하고 개중에 성공작이 나와 그나마 영향을 끼쳐 다시 나아가고 다시 나아가는 일이 반복되는 것이 아닐까. 즉, 원천은 미련스럽다에 있다고 본다. 삶의 원천이 훌륭함에 있다면 그 얼마나 재미 없을까 상상해봐. 

 

미련스러우니 우린 나아갈 수 있는 것이야.

괴로움을 아니 피하기라도 하려고 그리 애쓰는 것이야.

아프지 말라고 눈물을 흘리는 공감은 그래서 소중한 것이지.

알든 모르든 눈물이 마를 날이 없이 계속 부모의 부모, 부모, 그리고 가족에게 그 소중함을 알게 하는 너의 몸짓이 그래서 소중한 것이지.

아프지 말라고 힘들면 쉬라고 하는 말처럼.

 

"저는 얻고 싶지 않아요."

"굳이 해야만 하는 걸까요" 하는 너의 말이 이처럼 와 닿는다.

 

"그래. 얻고 싶지 않으면 얻지 않아도 좋다. 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좋다."

이는 그 마음을 어느 정도 알기 때문이지 않을까. 내 시간, 너의 시간이 하염없이 반복되고 반복되어 무르익어 간다. 과거의 어느 때 나를 그렇게나 괴롭히던 것들이 이젠 깨어지고 얻은 것을 충만하게 하여 한 걸음 더 내딪어 볼까 하는 지금, 사실 그들이 보는 시야든 관심이든 그게 무슨 상관이지 싶다. 별반 다를 거 없다. 사실 그들은 나를 그렇게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라는 것이 답임을 안다. 이렇게 신경쓰는 건 그들이 문제의 대상이 아니라 내 마음의 내킴이나 그동안 반성하며 되돌아 보며 되새겼던 수 많은 부침의 언어들이 나를 또다시 힘들게 하는 정체겠지. 정했으니 벗어나길 거부하는 것처럼.

 

정하지 않는다. 너무 어렵다.

정한다. 너무 쉽다. 정하면 무척 쉽다. 정한 걸 다시 바꾸는 게 힘들다.

정하지 않는다. 방향만 정한다. 살아가는 방향. 함께할 사람들. 관심사. 꿈. 바람. 이런 것들을 함께 할 이들과 함께할 시간들을 정한다. 그것이면 된다.

 

하등의 가치없는 것이 나를 해꼬지 했던 그들이라고 보는 것이지.

나를 가둔 악몽은 사실 내가 만든 것이듯이 그 악몽은 사실 길몽이었던 것이더라 라는 걸 나중에야 지나서야 안다. 

 

아픈 만큼 성숙한다 라는 말처럼. 김성호.

 

 

 

한 폭의 그림처럼

 

가을을 걷는다. 손에 손 잡고.

어머니, 딸, 아들 셋이서. (어제 소소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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