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 튼 시간, 산책 중이다.
강렬한 태양빛을 등에 진다.
정겨운 풍경이다. 굽이진 길에 펌프장, 양어장, 그리고 고가도로와 산, 그 너머 하늘에 맞닿은 모습이 완벽하다.
홀로 선 나무에 다가가 아는 채를 하면서 팔을 집고 함께 한다.
늘어진 나뭇잎과 줄기의 모양이, 물이 빠지니 드러난 땅의 모양이, 그리고 겨울을 보낸 지난 시간을 떠올린다.
그리고 찬찬히 뛴다. 시원하다. 바람을 맞으니 좋다. 아직은 뜨겁진 않다.
터닝포인트.
그 순간 돌아서 다시 뛴다.
ㅍ
달린다. 한 칸 너머 설 때마다 센다. 하나 둘 셋...
어느새 마흔여덟에 이르더니 고가도로 아래에 이르러 백에 도달했다.
다시 센다. 백 하나, 백 둘, 백 셋...
백을 빼고 세고 있다. 마흔 일곱, 마흔 여덟. 다시 만났다. 달리고 있는 중이다.
백 일흔 일곱... 하면서 저만치 그가 앉았던 곳을 바라본다. 인상이 깊었던 탓일까!
잔상이 남아 그럼 나도 하자며 뛰던 달리기를 멈추고 앉는다.
숨을 돌린다. 하늘을 보고 내 앉은 자리를 본다. 시원하다. 그늘이 없어 아쉽다. 좋구나!
다시 일어나 뛴다. 걸을까 하다가 마저 뛰기로 한다. 다시 이 길을 뛰려면 체력을 길러야 해 라면서.
백 일흔 여덟, 백 일흔 아홉...
저만치 보이는 곳에 이백은 될까? 안되겠지?
그런데 달리면 달릴수록 세는 나이는 많아지고 어느새 이백에 도달한다. 그리고 다시 넘어선 순간,
다시 한 번 더 거듭난 인생인 양 기분이 우쭐해지다가도 이 나이 때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에 잠시 머문다.
달리는 중이며 계속 세고 있다. 이백 둘, 이백 셋... 과연?
이백 열 넷, 이백 열 다섯 하면서 도달한 곳은 그가 머문 두번째 장소다.
고개를 떨군 채 미동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자연 속에 머문 그의 모습에 반하여 가던 걸음을 멈추고 사진으로 남겼던 그 때를 떠올린다. 그대로 앉아본다. 그의 잔상이 남아있는 듯, 공사중 이란 푯말을 등지고 남긴다.
이백열여섯으로 하자.
턴을 해서 한 칸 한 칸 금을 넘어 나이로 센 달린 그 길이 이백 열 여섯으로 여기자며 타협한다. 이백열일곱이 좋지 않아? 하는 마음을 접는다. 좋아 보이는 것과 실제 그런 것은 차이가 있기 마련이니, 이백 열 다섯, 이백 열 여섯, 이백 열 일곱 중에 이백 열 여섯으로 정한다. 기분이 나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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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自`2022.05.27 08:04
오늘은 세다 말았다. 몇 번 세고나니 헛갈리기 일쑤고 잡념이 멈추지 않는다.
예티와 해나의 복강내 난소,자궁적출술을 할 것인가?
자연스레 살아가게 할 것인가? 교배를 할 것인가? 그렇다면 낳은 아기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돈이 목적인가? 새끼들까지 함께 하는 건 무리가 아닐까?
이런 저런 생각들이 잡스러운 가운데 뭔가 하나 뚜렷이 결론이 나지 않아 뜀을 멈추고 만다.
자, 다시 순서대로 생각해보자.
하나씩 단계적으로 살펴보자.
우선순위는, 혹은 내가 바라는 건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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