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멋진 휴식'을 시립도서관에 무인예약으로 익일 1시전까지 신청한 후, 받아서 읽는다. 왜 이 책을 골랐는가는 그때 고민했으니 받아든 지금은 읽을 때다. 푹 빠져든다. 기억에 새길 만한 내용을 남긴다. 이 글은 영탁이에게, 이 글은 영록이에게, 이 글은 서희에게, 이 글은 치형이에게, 이 글은 장인에게... 이런저런 위함이 생긴다. 자연스럽게 생각되어지고 생각한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 또한 즐거운 경험이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때때로 마음의 평정을 찾고자 쪽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던 것을 아는가?
베토벤이 그렇게 방대한 작곡을 하면서도 오후마다 장시간 산책을 하고 선술집에 들어 신문을 읽었던 것을 아는가?
워라벨의 본질은 시간의 균형이 아니라 '해야 하는 것(work)'과 '하고 싶은 것(life)' 사이의 균형이다. - 문요한, 오티움의 저자
좋은 휴식 뒤에 도약이 일어날 수 있으며, 그렇게 해서 인생은 더 강하고 날카로워진다. - 스토어 철학자 세네카
번아웃(burnout, 탈진, 무기력)은 국제질병분류의 직업 관련 현상에 포함되었다. - 2019년 세계보건기구
설령 하루도 빠짐없이 전력 질주 할 수 있을지라도 그래선 안 된다. 인간이 경험하는 멋진 일들은 대개 쉼과 성찰과 회복의 한복판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수요일 새벽에는 무조건 책상에서 벗어나 취미에 몰두하는 시간을 확보한다. 황홀하게도 두 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가버린다. 의도적으로 이런 시간을 끼워 넣는다.
두 시간 동안 느긋하게 저녁식사를 한다. 배꼽 빠지는 웃음에 나도 덩달아 웃음이 터진다.
지금은 어느 때보다 '인식의 전환'이 절실한 시대가 아닌가.
견실한 쉼은 우리에게 영감과 아이디어와 회복을 전해준다. 의욕을 키우고 열정을 지속하게 한다. 참신한 시각을 얻게 해주는 시간이다.
훌륭한 근로는 요청받을 때마다 일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하겠다고 말한 바를 해내고, 하루치의 공정한 분량만큼 일하며, 일을 존중하고, 고객을 존중하고, 동료를 존중하고,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고, 남이 쓸데없이 일하게 만들지 않고, 스스로 병목이 되지 않는 것이다.
시간을 '의식적으로' 사용하고 삶에 분명한 경계를 세운다.
분주함이 종종 생산성의 반대임을 깨달으며, 숨 돌릴 시간과 거리 두기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다.
분명한 경계를 세우고 더 자주 거절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모두가 삶의 지혜와 아이디어가 싹트는 시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한우물만 좁고 깊게 파는 전문화가 답일까?
(그렇지 않다. 앞으로 전문화된 업무는 인공지능이 더 잘 할 것이기 때문에, 광범위하고 폭넓은 분야에 쏟는 관심이야말로 시대에 뒤처지지 않게 하는 최고의 방법일 수 있다. 이또한 인공지능이 나은 면일 수 있어 한우물을 파는 것이 답일지,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내는 것이 바람직한지 공방을 주고받더라도 정답은 하나다. 이리가든 저리가든 결국 답은 있다는 것이고 살아가듯이 해야한다는 것이며 그 방법은 사실 인공지능과 비교하지 않아도 좋다고 본다.)
... 책을 반납했다. 케이스는 보지 못한 셈이다. 아깝지만 아쉽지는 않다. 이어서 보고 싶은 책을 빌리지 못한 것이 더 아쉽다. 이번주에는 찾을 수 있을까? "아빠, 재밌어요~"
어찌 알았을까?
내가 고른 책을.
"아빠가 고른 건 이거에요. 요괴사냥꾼."
그러게, 한참을 찾았다. 역사, 사회, 이야기, 탐험, 만화, 시리즈, 돌고돌아 결국 괴담, 무서운 이야기 너머 모험이 펼쳐지는 이야기를 찾았다. 가능한 얇고, 큰 글씨가 있는. 돌이켜 보니 참으로 생각이 많았다.
'아.. 아.. 6시에 문을 닫으니 정리를 하기 바랍니다' 라는 방송에도 불구하고, 아니어도 좋은 마음으로 편안한 가운데 골랐는데 한달음에 읽어내려 가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아진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에겐 각자 잘 맞는 재밌는 이야기나 모험, 체험이 필요한 거 같아.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게 아니라 분명 좋아할 거면서 습관처럼 축구장에 피구장에 가잖아. 물론, 그건 그것대로 좋지. 다만, 조금은 확장된 경험을 해도 좋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그래서 영탁이에게 그 말을 주고 싶었나 보다. 도서관에서 책을 고르면서 탐험하듯이 길을 가듯이 여정을 하나씩 짚어보면서 한 걸음 한 걸음 내딪으면서 들쑥날쑥하는 감정을 느껴봐. 패스했다면 그 패스한 이유를 알려줄 것이고 잠시 머물렀다면 그 머문 순간에 대한 원인이 있을테니까. 그저 길을 가듯이 한 걸음 한 걸음 산책하면서 책 제목을 들여다 보면 그 여유로운 가운데 메시지들이 하나씩 둘씩 정리가 되더라.
한 걸음 뒤에 두 걸음을 더 가려하니 멈췄다고 봐. 애써 아직 그런 나이가 아니잖아 하는 아내의 말에 동의하진 못하지만 일면 그런 면도 있기 때문에 시작할 때 정한 30분만 이야기 할까 라는 가이드라인을 지키면서 종료한다.
여러분, 헤어질 시간이네요.
못다한 이야기나 더 듣고 말하고 싶은 주제는 다음 기회에 이어가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하면서 아쉬움 없이 종료하는 강의. 나도 좋고 수강자도 좋다. 결국 이야기나 주고싶은 바는 인연이라면 거듭 얻은 바가 있다면 길고 짧은 시간의 문제는 아니라고 보기 때문에 멈출 때 멈춘다. 어찌 아쉽지 않을까 마는 말이 길어짐에 졸려하는 눈빛이 과연 지금 내가 원하는 바는 무엇일까? 전달일까? 공감일까? 느낌? 채찍질? 격려?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즐겁기를 바란다... 1.
함께 하는 시간이 즐겁기를 바란다.
요것이 1번이기 때문에 내 할 말과 하고자 한 말을 멈춤에 아쉽지만 아쉬워 하지 않는다. 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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