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산책을 나서며 '홀로 나선' 기분을 풀어낸다. (음성 듣기) https://youtu.be/UbzFZtJoFoU
라 라라 라 라라
아픈 손가락이라. 아픈 손가락. 해나 서희 영록 영탁 치형 그리고 나. 나만 보더라도 언젠가 왼쪽 허벅지였던 걸로 기억한다.
왼쪽 허벅지가 당겨서 달리지 못했다. 그리고 다음은 오른쪽 무릎이 결려서 달리지 못했고, 지금은 왼쪽 발에 새끼 발가락, 발톱인 양 살이 들이 찬 것을 떼내니 피가 펑펑, 걷는 지금은 많이 나은 느낌. 오른쪽 두 번째 손가락, 힘으로 뜯어낸 상처로 인해 찌릿찌릿 아품이 전달된다.
서희가 느끼는 방황과 욕심이, 영록이가 경험한 밑바닥이, 영탁이가 느낀 고뇌와 실행이, 치영이가 느낀 반복된 지겨움이나 장난스러움이, 해나에겐 고관절에 대한 아픔이, 예티에게는 글쎄 딱히 보이진 않지만 뭔가 시원스러운 건 아닌, 누구에게나 아픈 손가락이 있다.
"저 좀 봐주세요." 하는 느낌처럼 찌릿찌릿 알린다. 자기 몸이 귀한 줄은 알고 함께 공생하는 관계라고 봐야 되겠지. 오늘은 해나의 눈망울이 산책길을 나오는 그때, 배웅을 나온, 배웅을 하려고 했진 않았겠지만 (함께 산책 가고 잎어서) 그런데 차마 정하지 못한 부분 - 취위, 절뚝거림 - 이 있기 때문에 갔다가 온다고 인사를 하고 나섰다.
언제였던가?
9월 28일인가?
그쯤 시작된 5시 새벽, 아침 산책길이 어제와 오늘 11월 8일. 이전과 달리 이틀째 홀로 걷는 홀로 나선 길. 딱히 바뀐 거 같진 않지만 왠지 허전하다. 신경씀이 덜해진 걸음걸음이 어제도 그러더니, 오늘도 이어진다. 뭔 그런 기억들을 더듬거리는 건지 계속해서 더듬고 더듬어 집으로 추억으로 함께 했던 어떤 순간들을 그 느낌들을 떠올리면서 위안을 삼기도 하고, 가슴을 달래기도 한다. 솔직히 어찌 할 바를 모르겠다. 마냥 뛰어놀고 가고 오고 아침 산책길이 근 한 시간이 걸리는 그 시간 동안 걷고 뛰고 달리고 무척 좋았는데. 좋아하지. 그렇게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을 애써 억누른다.
우리가 비켜준 자리에 다른 부부와 강아지 한 마리가 다가온다. 목줄조차 하지 않아 나와 마주하는 그때 강아지를 안아든다. 어찌 바라봐야 될지, 어찌 해야 할지, 산책이라는 이 시간이 나와 해나와 예티가 교감하고 함께 한 시간이라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만약 그렇다면, 달리기를 함께 하고 동네를 몇 바퀴를 돌며 시원한 쾌변을 보게 한 후 발바닥을 닦인 다음, 난 다시 하천변으로 향하면 어떨까? 대안 중의 하나를 떠올린다. 다소 번잡하지만 함께 한다 라는 시간을 소중히 여긴다면 뭔들 못 할까.
그럼에도 사뭇 망설이는 건 썩 맘에 들지 않다는 것. 난 함께 달리고 싶다고! 함께 하고 싶다고, 따로따로 해서 그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다고, 이런 감정이 결정을 미루게 한다.
쩔뚝거리는 걸 보면서 운동량을 줄여야겠지 생각한다. 가다 멈추면 기다려 줘야 되겠지. 거기까지 배우는 시간이 꽤나 걸렸음에도 이제 함께 나서지 못한 이 길이 참으로 다르게 다가온다. 저 멀리 다리 밑 나무가 보이는 이 시점, 내게 어떤 의미가 있었음이 분명한데, 나무가 왜소하고 작고 그래서 신경이 쓰이고 신경을 쓰고 있는 줄 모르겠다만 다시 또 정해야 하겠지. 정해서 이 아픔, 이 고뇌, 이 고민을, 이러한 걱정들을 내려놓으려고 낮추려고 노력하겠지. 그렇게 정하고 정하다 그 안에서 나름대로의 만족? 뭐라고 할까?
난 어쩌면 이미 최대치를 맛보았을지 모르겠다.
걷고 뛰고 달리고, 따라오지 않는 예티에게 소리치고 눈에 힘을 주고 다가갔을 때 느꼈을 그런 감정들이 올라오는 두 번째 날. 이렇게 떠오르는 것을 보면 참으로 참으로 요상하다. See U.
(반환점을 돌아 달린다.)
어떤 시급한 일이 생기면 다른 일정들이 뒤로 밀린다. 어제 저녁 영록이는 수능 문제를 풀다가 걱정이 되었단다. 금리 인상, 빚 부담, 힘든 가계상황에 대한 걱정 때문에 저녁 6시 이른 퇴실을 하고 부모와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세계 경제에 대한, 대출을 감당할 수 있는지에 대한, 뭔가 큰 일이 일어날 거 같은 그런 걱정을 묻고 답한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부부는 종종 그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어서 대답을 한결 수월하게 해낸다.
나라면...?
나라면?
이 상황을 어떻게 하겠느냐?
나라면 이 상황을 어떻게 활용하겠느냐?
전하고자 하는 바는 나라면? 이란 측면에서 이를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것. 닭 목을 비틀어도 기절만 시켜야지 아예 죽어버리면 안 되지 하는 기본을 놓고 판단한 생각을 주거니 받거니 대화를 나눈다. 암, 그렇게 보면 멀지 않았다. 그 생각을 전달한다. 크게 걱정할 일은 없다며.
누군가에게 세상의 굴레라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기회로 받아들여지는 그 차이.
손 끝에서 이는 통증으로 그 아픔 때문에 온 몸을 둘러보게 된 것처럼 아픈 손가락은 공생관계. 함께 살고 알게 하고 알아서 상대적인 관심을 갖게 하는 그 신호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숙명처럼 한 목숨처럼 귀하게 여겨지니 떼내려는 순간 혹은 떼어진 순간 딱 붙어있던 그때 그 기억이 봇물처럼 쏟아져 다른 생각할 겨를을 주지 않은 채, 푹 담근 맛 좋은 김치를 먹고 싶어질 때 아련하게 담근 이를 떠올리게 만들어 내듯이 여운에 취하여 아쉬움으로부터 시작한 감정은 함께 할 수 없다는 감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파문을 일으킨다. 아프다. 싫다. 함께 하고 싶다. 외롭다. 다시 만날 때를 기대한다. 좋은 감정, 아련하게 다가온 감정에 숙연해지고 뛰던 걸음을 잠시 늦추게 만든다. 징검다리를 건너며 함께 건넌 그 기억이 새록새록 튀어 오르고 시냇물을 건넌 후 아쉬움을 뒤로 하고 계속 나아가면서 다시 만날 때를 고대하듯이 앞으로 있을 혹은 바로 지금 걸어가며 마주하는 사람들, 자연, 바람, 물소리, 더 나아가니 자동차소리가 들리는 거리에서 마음은 벌써 도착한 양 개 짖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언젠가 완주할 수 있기를 하는 바람 혹은 기대, 함께 산책하고 싶다는 기대 혹은 아쉬움. 언젠가 해나와 예티 외 가족과 함께 산책하고 싶다는 바람에 이르기까지 어떤 바람과 기대, 또한 함께 온 아쉬움과 의욕이 집에 도착하자마자 꼬리를 흔들며 다가온 해나와 예티를 안아들고 쓰다듬고 목줄을 찾아 채워 땀이 찬 잠바를 벗어두고 곧바로 다시 되돌려 나선 건, '아픈 손가락' 일망정 아프지만 흔쾌히 수용하겠다 라는 반증이 아닐까.
생각한 대로.
느낀 대로.
하고싶은 대로.
이끈 대로.
아프면 아픈대로.
좋으면 좋은대로.
그렇게 하고나니 한결 기분이 좋다. 내게 아픈 손가락이 있어 그 통증 때문에 다시 겪긴 싫다지만 어찌 버릴 수 있을까. 왼쪽 허벅지가, 오른쪽 무릎이, 그리고 오른쪽 손가락이 어떤 의미에선 서희가 느끼고 준, 영록이가 주고 있는, 영탁이가 퉁퉁 거리는 투박한 행동조차, 치형이가 놀자며 자꾸 안겨들고 장난치는 모습은 각자의 아픈 손가락을 숨긴 채 기꺼이 감싸주기 위한 다가감이 아니었을까.
"힘들지 않으세요?"
영록이가 물어본 말에 한 쪽 가슴 깊숙히 간직한 숨긴 감정이 치유되는 느낌이다. 잘 되기를 바라며 훌륭하게 잘 자라준 아이들. 어느 새 다 자라 부모와 '경제' 이야기를 주고받는 나이. 둘째 영탁이에게 몸소 실천하며 살아갈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음에 대하여 칭찬 보다는 툭툭 하고 거는 장난을 더 이상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어떤 의미에서건 아내가 정답이다. 그냥 따라도 좋겠다. 자꾸 잊어서 다툰다.
아픈 손가락을 숨기지 않기로 한다. 아프면 아프다고 전하기로 한다. 내가 아니어도 산책길에서 느낄 그 감정은 누구에게나 있으니 함께 풀어보아도 좋겠다고 생각한다. 이제 하나를 풀었으니 두번째 과제를 풀고자 한다. 그거면 되었다. 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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