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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세상보기

새벽

by 큰바위얼굴. 2023. 9. 12.


2023년 9월 12일 화요일 새벽.

거뭇 거뭇 회색빛이 가득한 하늘.
주민센터 옆을 지나고 있다.

이것도 좋다. 저것도 좋다. 다 괜찮아.

못내 가슴 한구석에 남겨둔 찌뿌둥한 일들, 사건, 인연, 이야기들.

사건과 사건의 이어짐이 혹은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이 개연성에 얽혀 있다면,

뜬금없이 새벽에 나와 똥을 치웠고, 아무도 없는 거리에 들려주고 싶은 들어주고 싶은 이야기. 내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 혹은 살았던 누군가의 이야기. 사람 앞에 기억 속에 스쳐가는 바람인 양. 두리번 두리번거리는 해나의 망설임인 양, 감기에 코로나에 목이 쉬어버리면 텅 빈 상가에 비상구 불빛만이 보이는 모습.

어색함에 낯선 감정에, 오늘은 갈 수 있을까?

가볼까?

무작정 떠나 방향성. 얻고자 하는 그것보다 그곳에 뭔가 특별한 어떤 것이 있기를 기대하기보다, 그저 그 방향이 좀 더 따분하지 않고 좀 더 그럴 듯하고 좀 더 마음에 와닿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어제 같지 않았다고 하여 오늘 떠나고 싶은 혹은 떠나고 싶지 않은, 낯섬에 두려움에 망설이고 불안해지는 자연스러운 모습에 버티기도 하고, 독려하기도 하고, 끌어당기기도 하고, 엉덩이 팡팡 두드리기도 한다.

새로이 접한 이 길의 뜻밖의 감정들을 싸놓은 흔적에 어제 먹은 양이 많지 않음을 알게 되고 느끼게 되고, 다시 보게 되고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애기에서 노인이 되는 그 긴 여정이 짧으면 짧다 하고 길어봐야 얼마나 길까마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그 방향성이 과연 내가 노인을 지향했던가 어디를 지향했던가 저기를 지향했던가 정처 없이 하나하나의 인과와 상관을 맺고, 좌회전을 받아 떠나가는 버스를 바라본다. 굽이구비 이리저리 헤맸다 손 치더라도 한 줄로 쭉 그어 내어 효율이나 효과를 따진 길이 아닐망정 지루하지 않았어, 뜻하지 않았고, 나름의 의미를 가졌고, 재미가 있었다.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했던 그때가 좋았고 의미와 의미의 새로운 창조, 기획 혹은 편집, 달라짐의 그 변화에 마음이 들 떴다. 어느 때 해나와 예티가 내 가족으로 들어섰다. 몇 년인가 지금 켜켜이 쌓인 함께한 시간들이 새벽이 밝아오는 것 만큼이나 물씬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다.

오늘은 다 할 수 할 수 있기를, 오늘은 한번 가보자 라는 일념으로 향하길, 저 멀리 굴다리가 있을 거라 예상되는 산과 산에 맞닿은 곳 너머. 씽씽 달리는 차들이 그나마 없어 시끄럽지 않은 이 거리.

"뛰어? 헤이, 걸. 뛸까?  해나. 뛰어? 예티. 뛰어? 뛰어? 아직 아냐? 뛰어?  뛰어?"

결국 터널을 지나 밍기적 밍기적 가지 않겠다라는 해나와 예티의 엉덩이를 팡팡 두들기며 넘어서니 엠티비 공원이 보여 나왔고, 지금 난 애들의 끈을 놓은 채 뒷걸음질을 치고 있다.

풍경이 좋은 쪽으로. 김성호.


20230912_새벽.m4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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