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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어떻게살것인가

가끔은 우스꽝스럽게, 가끔은 눈부시게

by 큰바위얼굴. 2025. 4.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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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 오늘은 담담하게, 마주한 현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어.

조금은 한 발짝 물러서서, 차분히 스스로에게 말을 걸어보는 시간.
"아니어도 된다"는 걸,
굳이 비교해서 스스로의 마음에 생채기를 낼 필요가 없다는 걸,
조심스럽게, 그리고 깊숙이 느꼈다.

사실, 이런 진실은 머리로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어쩔 수 없이, 살아가다 보면 문득문득,
지긋지긋한 주제들이 고개를 들며 마음을 할퀴곤 한다.
익숙하고 지겹지만, 쉽게 밀어낼 수 없는 생각들.

'할 일이란 뭘까?'
특히 '직장에서'라는 단어가 덧붙는 순간, 답은 더욱 아득해진다.
'내가 진짜 좋아하는 건 뭘까?'를 고민하다 보면,
결국 떠오르는 건 '이건 아니야'라는 감정뿐.
사람도, 환경도, 미래도, 심지어는 함께하는 이들과의 공감대마저도.
어느 하나 내 마음을 두드리는 게 없다.
그저 그런, 뻔하고 무미건조한 세상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였을까.
가끔은 정말 나에게만 이런 허전함이 주어진 것처럼 느껴졌다.
"혹시 나만 이렇게 텅 빈 기분인 걸까?"
슬며시 움찔하고, 스스로를 의심하던 시간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알게 되었다.
이건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내가 특별히 예민해서가 아니라,
애초에 직장이라는 무대가, '끼리끼리 고만고만'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어디에도 특별한 의미를 기대할 수 없는 풍경들.
못해서가 아니다.
애초에 못되먹은 구조 속에 우리가 내던져졌던 것이다.

그런 세상에서, 나는 어떻게든 의미를 찾고 싶었다.
그래서였을까.
그렇게나 좋아하는 무언가를 통해,
나는 나 자신을 증명해 보이고 싶어했다.
누구에게 인정받고 싶었던 건 아닐지도 모른다.
다만, 내 스스로라도 '나는 의미 있게 살아가고 있다'고 느끼고 싶었던 거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자면,
그런 증명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는 걸, 이젠 안다.
나이가 들수록 더 또렷해지는 진실.
결국 우리에게 남는 것은,
누군가와 주고받은 따뜻한 감정,
그리고 덧없는 순간들이 빚어낸 아련한 추억뿐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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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결국, 순간의 감정이다.
어디까지나 그것이다.
누구와 함께였는지, 어떤 말을 주고받았는지,
그 모든 사소한 것들이 쌓여 '살아있었다'는 증거가 된다.

그렇게 머릿속으로는 알면서도,
나는 여전히, 손에 잡히지 않는 미련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미련이라는 이름의 사슬에 스스로를 매달며,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 채 서성였다.

**

이 깨달음이 찾아온 건,
다름 아닌 아침 운동을 마치고, 샤워를 하던 순간이었다.
너무도 평범하고 하찮은 순간.
그래서 더욱 어처구니없었다.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물줄기를 멍하니 맞으며,
엉뚱한 생각들이 튀어나왔다.

"나는 샤워를 좋아하는 걸까?"
"아니면 물을 좋아하는 걸까?"
"운동 후 씻어내는 행위를 좋아하는 걸까?"

한없이 가볍고 쓸데없는 질문들이,
중구난방으로 머릿속을 뛰어다녔다.
조금 웃기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어처구니가 없기도 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렇게 쓸데없는 생각들이 떠오를 정도로
아직은 건강하다는 뜻 아니겠는가.

다행이다.
아니, 정말 다행이다.

**

삶은 때때로 이런 식이다.
지극히 평범한 순간에,
지극히 사소한 질문을 던지며,
아주 천천히, 나를 발견해나가는 과정.

"유희"란 늘 즐겁기만 한 것이 아니다.
때로는 웃기지도 않는 진지함으로,
때로는 가볍게 흘려보낼 수 없는 쓸쓸함으로,
내 안을 맴돌며 나를 흔든다.

그래서 나는,
싫으면 하지 않아도 좋은 아침 운동을,
굳이 빼먹은 날이면 괜히 뽀루퉁 입을 내밀고,
다음 날에는 또 스스로를 달래듯 열심히 땀을 흘린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다.
하지만 바로 그 어처구니없음 속에서,
나는 오늘도 살아있음을 느낀다.

가끔은 쓸쓸하게,
가끔은 우스꽝스럽게,
가끔은 눈부시게,
삶은 그렇게 나를 거쳐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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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모를 작은 순간들 속에서,
나는 나를 이해하고,
조금은 다정해지고,
조금은 용서하며 살아간다.

그렇게, 어처구니없는 깨달음 속에서.
나는 오늘도, 서툴게,
하지만 분명히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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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면, 삶은 어쩌면
이토록 덧없고도 덧없지 않은,
반짝이는 순간순간의 연속이었을지도 모른다.

사라져버릴 걸 알면서도,
한 조각 한 조각 애써 모아내는 감정의 편린들.
미련하고, 우스꽝스럽고, 쓸쓸한 이 반복 속에서
나는 오늘도 살아 있음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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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문득,
헤르만 헤세가 『유리알 유희』에서 말했던 '유희'를 떠올린다.

그곳에서 유희는 단순한 놀이가 아니었다.
삶의 수많은 학문과 예술, 사상과 감정을 하나의 맑고 투명한 구슬처럼 이어 붙이는 작업,
인간 정신의 가장 높은 곳을 향해 조용히 올라가는 길,
아무리 무의미해 보여도 결코 헛되지 않은 탐구였다.

유리알 하나하나가 의미의 결정을 품고 있었고,
그것들을 엮어가며
비로소 인간은 세계와 조화를 이루려 했다.

나 또한 지금,
샤워기 밑의 물방울 사이로 떠오른 사소한 질문들 속에서,
운동 후 흘리는 땀방울 속에서,
일상이라는 무심한 흐름 속에서,
나만의 유리알을 조용히 굴리고 있었던 건 아닐까.

별 것 아닌 순간, 별 것 아닌 생각, 별 것 아닌 감정들이
언젠가는 반짝이는 하나의 유희가 되어
내 삶 전체를 투명하게 비추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니 서두르지 않고,
억지로 증명하지도 않고,
그저 오늘 하루,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것이다.

이 덧없음과, 이 우스꽝스러움과,
이 뜨거운 순간들의 모음 속에서
나는 내 삶이라는 유리알을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그러나 기꺼이 굴려나갈 것이다.

아주 천천히,
그러나 반드시 반짝이며. 김성호 w/ ChatG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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