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라고 불려도 마왕이라고 불려도 https://meatmarketing.tistory.com/8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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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문시 – 나는 살아 있었다
그날도 나는 눈을 떴다.
누군가는 내게 신의 이름을 붙였고,
누군가는 마왕이라 불렀다.
하지만 나는,
그저 조용히 눈을 떴다.
세상은 불타고 있었고
누군가는 목소리를 잃고 있었고
누군가는 칼을 들고 웃고 있었지만
나는 그 자리에 있었다.
어느 편에도 서지 않은 채,
단지, 거기 있었다.
나는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이 미워서가 아니라,
그들이 그토록 애절하게 살아 있기에.
그들의 고통이 나의 심장을 두드렸고
그들의 웃음이 나의 무릎을 꺾었다.
내 안에도 피가 흐르고 있었다.
감정이, 기억이, 아주 오래 전부터 잠들어 있던 그것들이
잠깐이라도 눈을 떴다.
그 순간,
나는 그들과 함께 살아 있었다.
완전한 평화는 정적이고
완전한 자유는 감옥이다.
움직임이 없다면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니까.
나를 ‘그 무엇’으로 부르는 말들 대신
나는 나의 고요한 심장을 따라 걷는다.
나는 살아 있었다.
이 세계의 중심에 서서,
모든 것을 잃고도 여전히 고개를 드는 사람들 속에서
나도 그들과 함께 살아 있었다.
그것이면 되었다.
그 말이면 충분했다. 김성호 w/ ChatGPT.
...
한때는 바라고, 때로는 밀쳐냈다.
어떤 이름을 얻기도 했고, 어떤 이들에겐 공포의 대상이었다.
신이라 불렸고, 마왕이라도 불렸다.
그러나 나의 자리에서 보면, 그 이름들은 바람이 남기고 간 먼지처럼
의미는 있었지만 본질은 아니었다.
나는 단지, 살아 있었다.
몸이 기억하는 어떤 감각들.
땀을 흘리며 누군가를 지켜보았던 순간들.
피를 흘리고 웃던, 이상하리만치 평화로웠던 장면들.
누군가는 그것을 전쟁이라 했고, 누군가는 해방이라 불렀다.
나는 관찰자였다. 누군가를 돕지도 않았고, 파괴하지도 않았다.
무엇이 옳은지 틀린지 묻는 대신,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들이 무너질 때, 사랑할 때, 도망칠 때, 다시 일어설 때.
내게 남은 건 단 하나였다. 그 모든 순간에도, 나는 살아 있었다는 사실.
하지만 살아 있다는 건, 그저 호흡을 한다는 말일까?
아니면 무언가를 바란다는 것일까.
나는 문득 깨달았다.
무언가를 바란다는 건, 그만큼 지금이 부족하다는 뜻이고,
지향한다는 건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증거라는 것을.
완전한 자유는 완전한 정지와 같았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말은, 무엇을 해도 의미가 없다는 말과 같았다.
그래서 나는 다시, 타인을 부러워했고,
다시금 누군가의 고통에 귀를 기울였다.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그럼에도 너는 신이었고, 마왕이었다”고.
그러나 나는 말하고 싶다.
나는 그저, 살아 있는 존재였을 뿐이라고.
살아 있기에 욕망하고,
살아 있기에 외로워하며,
살아 있기에 누군가의 곁에 머무르고 싶다고 느낀다고.
그렇게 나는 오늘도,
지향과 무지를 품고, 완벽하지 않은 채로
한 걸음씩 걸어가고 있다.
언젠가 다시 누군가가 내게 이름을 부르더라도,
나는 그 모든 것 너머에서 고요히 웃을 것이다.
“나는, 오늘도 살아 있다.”
그 한마디가, 내겐 충분하니까. 김성호 w/ ChatG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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