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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영탁 이야기

영탁에게

by 큰바위얼굴. 2025. 5. 14.

영탁아.

요즘은 어떤 하루들을 보내고 있니.
군대라는 곳에서 네 시간을 묵묵히 살아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참 대견하다는 생각이 든다.

문득 네가 앞으로 어떤 길을 걸어갈까 생각해본다.
다시 학교로 돌아갈 수도 있고, 아니면 전혀 다른 방향으로 마음이 움직일 수도 있겠지.
꼭 정해진 길을 따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
그러니까 만약 네가 꼭 대학에 복귀해야 한다는 부담 같은 걸 느낀다면, 그런 건 잠깐 내려놔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그간 너의 손끝에서 시작됐던 시나 산문들, 잘 지내고 있니.
한동안 네가 그렇게 쓰고 싶다고 말하던 시간이 자주 떠올랐다.
그건 정말 너만의 세상이었고,
나는 그걸 참 멋지다고 생각했단다.

네가 보낸 '강아지똥' 이야기,
그리고 내가 쓴 ‘모자’ 글을 다시 꺼내 읽어봤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 다른 곳에 있어도,
가끔은 같은 걸 바라보고 있구나 싶더라.



세상을 살아가면서 정말 중요한 게 뭘까 생각해보면,
나는 ‘표현’이라고 느껴.
꼭 글쓰기일 필요는 없지만,
글쓰기는 네 마음 안의 말들을 꺼내볼 수 있는 좋은 방식이거든.
읽고, 쓰고, 말하고, 만들고,
그런 표현들을 통해 우리는 스스로를 더 잘 이해하게 되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도 조금씩 넓어지지.

네가 그 길을 향해 나아가려 했던 건 분명히 좋은 선택이었어.
다만, 알다시피 정답을 안다고 바로 이루어지는 건 아니니까
조금 쉬어가도 괜찮고, 방향을 바꿔도 괜찮아.
길은 언제든 새로 나니까 말이야.

결국 삶의 어느 순간,
스스로에게 “잘 살았어, 영탁아”라고 말할 수 있는 순간이 올 거야.
그 말이 진심으로 와닿는 날,
그게 바로 ‘네가 네 인생을 잘 살고 있다’는 증거 아닐까.

지금은 군대라는 특별한 시기에 있지만,
이 또한 표현의 재료가 될 수 있어.
강하게 느낀 것들, 가만히 흘려보낸 순간들,
다 쓸 만한 소재들이니까 말이야.

무리하지 않아도 돼.
세상은 넓고, 시간은 길고, 너는 아직 충분히 젊어.
오늘 하루 괜찮았다면, 그걸로도 꽤 괜찮은 하루야.

언제나처럼
여기서 너를 생각하는
아빠가.




'모자' : 너와 내가 같은 곳을 바라볼 때  https://meatmarketing.tistory.com/8223

아들이 보낸 '강아지똥'  https://meatmarketing.tistory.com/8211



..



From 영탁

뭐랄까..
오늘도 충분했어요.
기분이 좋기도, 나쁘기도, 속상하기도, 즐겁기도 하다가도 그 감정에 조금 맡겨 시간을 지내니까 결국에 제가 남더라구요.
어제도 그랬고, 일주일 전에도 그랬고, 언제나 그래왔던 것처럼요. 군대는 제게 당장의 큰 문제가 되질 못하는 것 같아요.
어디서든 얻을건 있고, 못 얻었다 생각해도 저여서요.

다만 언젠가 그랬듯이 나중엔 조금 더 멋있는 저이기만을 바라는 것 같아요.

오늘도 좋았구요, 내일도 좋길 바래요.
아빠도 그러길 바래요. 사랑해요.





To. 서희

저번 영록이에게 편지를 썼던 때 영탁에게도 보낸 편지에 대한 답장이 왔어.
이 글을 읽고 나서 산책 중에 한참을 그냥 조용히 앉아 있었어.
짧지 않은 문장이었는데, 참 조용하게 마음을 흔들더라.

“오늘도 충분했어요.”
그 첫마디부터 그렇지 않니?
기분이 좋기도, 나쁘기도, 속상하기도 했지만
그 감정에 스스로를 맡기고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결국엔 ‘내가 남더라’는 말.
어느 날은 눈부시게 성숙해 보이고,
어느 날은 마음 한구석이 쓸쓸한 것 같고,
그 모든 감정과 생각을 이렇게 조리 있게 표현하는 걸 보면,
아, 이 아이가 자기 자신을 꽤 깊이 들여다보고 있구나 싶은 거야.

영탁이는 지금, 단순히 군 생활을 ‘버티고’ 있는 게 아니더라.
자기를 관찰하고, 감정을 해석하고, 의미를 찾으려 하고 있어.
그리고 그걸 조용히, 묵묵히 써내려가고 있는 거지.
"군대는 제게 당장의 큰 문제가 되질 못하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지만,
사실은 그 안에서 스스로를 조금씩 정돈하고 있는 거라고 느꼈어.

마지막 문장이 살짝 마음에 걸렸어.
“다만 언젠가 그랬듯이, 나중엔 조금 더 멋있는 저이기만을 바라는 것 같아요.”
이건 어쩌면… 자신을 밀어붙이지 않으면서도,
조금 더 나은 자신을 향한 바람이 여전히 마음속에 있다는 말이겠지.
부담도, 다짐도, 희망도 함께 있는 말.

서희야, 우리가 바라는 건 결국,
그 아이가 자기를 잃지 않고 살아가는 거잖아.
지금 영탁이는 잘 해내고 있어.
부족한 것도, 흔들리는 것도 있지만
그걸 감추지 않고 표현할 줄 아는 건
이미 큰 힘이자 지혜라고 생각해.

나는 그냥 이 모든 과정을 겪고 있는 영탁이가 참 기특하고, 고마워.
너도 이 아이의 말들을 한 번 찬찬히 읽어봤으면 해.
우리 둘 다, 아이들 앞에서는 괜찮은 어른이 되어야 하니까.

오늘도 수고했어.
이 밤, 이 아침. 너도 잘 자기를, 잘 일어나기를.
그리고 우리 둘 다 내일도 좋길 바래.

– 당신 남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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