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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나의 이야기

6시 1분

by 아리빛 하나 2025. 1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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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오늘은 직진, 쭉 뻗은 길로 가고 싶어 하는 마음이 든다.

흔들리지 않는, 사방으로 열린 길이 있는데, 왼쪽, 오른쪽, 혹은 되돌아가는 길도 있다. 그래서 시계를 봤다. 6시를 기준으로 5분 전이면 오른쪽으로 가야겠다고 마음먹고 시계를 들여다보는 순간, 46분이었으니 14분이 남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배수지까지는 30분, 40분을 잡아야 하니 시간의 여유가 생겼다. 배수지까지는 아니더라도 말이다.

그래서 발걸음을 옮겼다. 이때, 예티는 엉덩이에 힘을 주었고, 한 발 들고, 다 컸지, 발 들 줄도 알고.

아, 시원하다. 바람이 시원하다. 현관문을 나서면서 부스럭거리는 두 봉지. 봉지를 들고 안경을 닦을까 망설였는데 손이 없었다. 엘리베이터는 도착했고, 현관문을 나섰고, 안경 닦기는 잠시 미뤄두었다.

좋다. 시원하다. 그리고 옷을 입히기를 잘했구나. 어제는 특히나 목욕을 했기 때문에. 옷을 입힐 땐 '나도 이렇게 껴입었는데'라는 생각도 들고, '오늘은 춥지 않을까? 어젯밤에 추웠나?' 같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간다.

자전거 세워진 안장에 목줄 두 개를 매어두고, 두 봉투 안에 들어있는 쓰레기를 버려 분리수거, 아니 분리 배출했다.

아, 그리고 두리번두리번 빛을 찾게 된다. 첫 번째 드는 생각, 왜 빛을 찾았을까? 분명히 해나와 예티가 똥을 쌀 것이고, 대변이 안 보이면 치우기가 난감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선 길이다.

쭉 직진해서 CU가 있는 편의점 사거리까지 왔고, 예티가 두 번째 엉덩이에 힘을 주네. 해나는 더 그렇게 궁금한지 코를 갖다 대고 있다. 일단 가까이 가면 안 좋은 점은 줄을 더럽힐 수 있고, 또 줄이 방해를 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줄을 씻어야 한다는 막연한 걱정, 뭐 이런 것들이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게 해서 줄을 챘다.

길 건너 배수지 위로 올라가는 길이 보이고, 깜깜하다. 가로등 불빛이 있다 하더라도 대체로 어둡다. 그 맞은편 오른쪽엔 빨갛게 불꽃이 피어올랐다가 사그라들었다가 하는 불꽃 하나가 보인다. 담배 피는 아저씨. 그리고 '따르릉 따르릉'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 '따르릉 따르릉'. 그래서 오른쪽으로 해나와 예티를 인도했다.

생각보다 춥지 않다. 그렇다고 애들 옷 입힌 걸 후회하냐고? 아니야. 후회까지는 아니다. 그리고 내가 느끼는 온도가 어쩌면 옷을 많이 껴입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옷 좀 입는다고, 해나, 더워?"

부지런히 걸음을 옮겨 크게 도는 아파트, 15단지를 끼고 크게 돌고 있거든. 아까 얘기했던 6시 안에 들어가려면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겨야 한다.

노란 점멸등, 노란 조형물에 비친 불빛. 저 멀리 사거리에 빨간 신호 빛이 어둠을 노랗고 빨갛고 초록빛으로 물들였다.

빛과 어둠이 있다. 있고 없음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빛과 어둠으로 옮겨갔지. 빛이 형상을 나타낸다면 어두운 곳도 있지 않을까? 존재의 유무에 상관없이 어둠을 섬기는. 물론 어둠 속에서 발달된 존재로 거듭날 수 있긴 하겠다. 그럼에도 굳이 어둠이라는 대칭 구조를 만들어 낸 것이다. 있을 것만 같은 미래에 대한 '있음'의 반대편. 없는 미래에 대한 접근을, 과거 돌아온 지나온 흔적이 나의 현재를 나타내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그 무엇 하나.

지금 내가 하고자 하는 것,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것, 하지 않고 싶은 것, 하지 못하는 것. '한다'라는, '하지 않는다'라는 이 관념들이 가만히 있을 때 느끼는 지루함과 따분함, 막연함과 불안감, 심지어 우울함, 슬픔, 아픔으로 이어진다.

"너는 나에게 관심이 있니 없니?"라는 물음처럼 들려오는 가족과의 관계. 종종 가끔 소식을 전할 때 느끼는 아련한 반가움.

가슴이 저며 온다. 참 촉촉히 젖어들지. 못다 한 것에 대한. 아, 그리고 "후회하지 않겠노라" 말하는 것처럼. 때늦은 다짐이 반성이 되어 나의 가슴에 스며들지라도.

예티, 왜 이렇게 또 헐떡거리셔? 어, 세 번째 털었나? 여러 이유 중 하나는, 까끌한 옷을 입어서 그렇다는 것, 긴 털이 옷과 마찰을 일으킨다는 것, 옷이 가렵게 만든 것, 평상시 입지 않던 옷이 어색한 것, 혹은 추운 것.

왜, 뭐 있어, 예티? 똥봉투 버리는 위치에서 보니 6시 5분. 늦었네.  김성호.


* 원문(음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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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락 가방을 들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자동으로 열린 문을 나설 때 내 모습을 잠시 유추해 봤어요.

괜찮습니다. 삶의 궤적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보입니다. 모호한 바람(소망).

가상, 가정, 뭐 이런 거 다 빼고,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그냥 쭉 나열하면. 강아지 산책, 출근, 그리고 편집하고 기록하는 일, 뭔가 주어진 일을 처리하는 일. 가끔 관심을 주기도 하고. 그리고 앞으로 있을 만한, 오늘 있을 배드민턴 어울림, 잠, 종종 게임. 퇴근 후에는 소설, 웹툰, 그리고 사색, 독백.

이게 지금의 내 인생. 다르지 않은.

어제와 같은 비슷한 유형의. 어제는 좀 달랐나? 아침 9시 반, 저녁 5시, 그리고 그 앞서 '시선'이라는 커피숍을 서희와 간 것. 배드민턴을 9시 반과 5시 두 번에 걸쳐 했더니 많이 피곤하다는 지형이.

이건 또 대구에 가게 됨에 따라 보강을 했던 거고. 대구에 가게 된 이유는 장모님. 너무 좋아하셨지. 이렇게 연이어 이어 이어 이어 이어지지.

궤적을 잇는 것처럼. 다른 공간, 시간, 장소에 있음에도 이어지는 순간.

좋습니다. 기쁩니다. 함께 할 수 없기 때문에, 함께 하지 않기 때문에, 함께 하지 않아서.

반가움. 진한 여운과 같은 관심.

기원. 한풀 꺾인 세상을 이롭게 한다라는 생각이 내 가족에게 이롭게 하기를. 연을 이어간다.

저 앞에 보이는 거대한 트럭. 일정 속도를 내기 전까지는 한참 느릴 거고. 줄줄이 늘어선 자동차들. 아침 저녁으로 왔다 갔다 하지. 이게 일상의 모습입니다. 이 안에 있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은 오늘 하루를 깊게 보내기를 바라면서, 혹은 어제 피곤함에 가고 싶지 않은 길을 가는 것처럼, 때때로 달라진 마음 상태에 따라서 가고 오는 것을 반복하면서.

가끔은 뭐 전자 혹은 양자, 원자핵을 가지고 이리저리 조합을 해 보기도 합니다. 성질을 이용하는 거죠. 그 성질은 이치에 맞닿아 있고, 그 이치는 세상을 이룬 근원. 그건 내가 왜 태어났는지, 내가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궁금증. 끊임없는 갈구. 본질, 본성에 대한 의문이었군요.

1 더하기 1은 2입니다.

하나와 둘이 아니, 하나와 하나를 더했을 때 부피가 커지는 부분. 그리고 하나와 하나가 더했을 때 사라지는 부분. 하나와 하나를 더하는 행위가 물질과 물질이 만나는 단지 그것뿐.

허상과 허상을 더하면. 허와 허를 더했을 때 그게 과연. 무수히 많은 조합이 가능해. 이걸 현상으로 풀어내서 이용을 하는 게 전기, 전자. 그리고 이제 전자의 시기에서 양자.

양자, 양자라... 그렇다면 이제 양자를 넘어선 무엇인가? 상호 작용인데? 원자와 원자가, 아니면 원자와 주위에 둘러싼 무엇인가가. 물체, 물체가 견고한 어떤 형태를 띠고 있단 말이야. 그 견고한 형태를 원자와 어떤 단위로 활용할 수 있다. 통째로 쓰임새를 본다기보다는, 휘발하는.

지금도 내 몸의 세포가 날아갑니다. 날아가는 어떤 세포들을 붙잡아 두거나, 그 일어나는 현상을. 먼지로 돌아가는 그 현상을 그냥 노화라고 보지 말고, 다른 방식으로 잰다. 그렇게.  김성호.


* 원문(음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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