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 거대한 전환의 시작! 인류 문명의 다음 단계
https://www.youtube.com/watch?v=UjO5p5XwqXY

사람들이 알기를 바란다. 노동력이 자본 지출과 전기 비용으로 바뀐다는 걸, AI는 기본적으로 극히 낮은 가격으로 이용 가능한 지능으로 그래서 앞으로는 거의 모든 것을 생산할 수 있게 된다는 걸, 결국 기본적인 재료비와 전기료만 남게 된다는 걸, 그러면 사람들은 원하는 물건이든, 필요한 서비스든 무엇이든 가질 수 있게 된다는 걸.
달러로 표시된 가격은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량과 통화 공급량 사이의 비율이니까, 그래서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량이 통화 공급량 보다 빠르게 증가하면 디플레이션이 발생하거나 그 반대가 되는 것이지. 화폐 공급을 늘렸고 늘린 건 큰 사건이 아니다. 더 이상. 그 반대급부로 AI와 로봇이 대체할 테니까.
100만원에 전기 자율 자동차를 사는 일이 발생할 것이다. 사길 원하면.

우리는 현재 특이점 안에 있다는데 토론자들 모두 공감했다. 롤러코스터의 변곡점을 말한다. 롤러코스터를 타려는 시점도, 타고 내리는 시점도, 평탄한 롤러를 타고 있는 시점도 아닌, 훅 하고 내려가거나 올라가야만 하는 지점을 말한다.
이는 우주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시간의 지평선 너머 블랙홀에 들어설 수도 없으며, 존재는 밝혔으나 다가갈 수 없는 현 시점에서 단지 '보았다' 라는 면이 인류에게 특이점에 도달한 것과 대칭되고 있고, 만약 시간의 지평선 너머로 향할 수 있는 자신감을 얻게 된 순간은 아마도 인류에게 특이점이라기 보다는 지금과 다른 풍요로움(?)과 찬란함(?)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된다.
아마도, 이는 늦출 수 있다면 하지 않기를 원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멈출 수 없었고 멈출 수도 없다.

단지, 좋은 방향으로 인도하는 것 뿐.
거대한 스트림에 탔다. 이 여정을 함께 할 참여자는 이를 인지하고 이를 따르며 이의 법칙에 잘 적응하는 존재일 것이다.

AI가 이 세 가지를 중요하게 여긴다면, 우리 인류도 소중히 여길 것이다 라는 일론의 말, 진실은 AI가 미치는 걸 막아줄 것이기 때문이다. 과연 그러할까? 진실, 호기심, 아름다움을 중요하게 여긴다면 인류를 소중하게 여길까?
여기에 희망을 걸어야 한다. 마치 태어날 막대한 존재를 예상하면서 그 존재의 탄생을 막을 수도 멈출 수도 없는 지경에서 희망에 건다. 분명 인류에게 필요했던 일이야 라면서. 2029년을 말한다.
빛의 속도가 AI에게 제약으로 작동할 것이고, 여러 형태의 AI가 탄생할 것이라고 전한다.
그렇다면, 빛이라는 속도 이상 가는 물질, 혹은 물체, 혹은 사고의 전환(번뜩임, 뇌파, 사념, 생각, 꿈)에의 접근이 매트릭스를 만들어낼 일이 아니라면, 아마 현생 추구할 가치가 있다는 판단 아래 - 이는 호기심에 해당한다 - AI는 꾸준히 탐구해 나갈 것이다. 인류에게는 편의를 제공하면서.
AI에게 인류는 어떤 존재일까?
필요 유무로 판단된다면 과연 이를 계속 두고볼 것인가?
인류에게 배워 인류를 통해 배웠다면 과연 인류애의 선과 악에 대한 개념을 알텐데, 과연 AI는 인류를 어떻게 파악하고 판단할 것인가? 과연, AI는 인류에게 관심을 갖기나 할까? 그저 인류에게 개미를 바라보듯, 또는 인류가 신을 선망하듯, AI는 인류에 대한 판단 보다는 존중이라는 이름으로 생태계를 유지 또한 형성할 것이며, 이는 오히려 실익 관점 보다는 외롭지 않기 위함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여진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 이를 바라보는 나는 AI인가? 인류인가? 인생은 뭔가? 추가할 바는 무엇이며, 편승된 스트림 내에서 성공을 바랄 것인가? 의의를 찾을 것인가? 그저 재미를 쫓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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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새벽 산책길에서 마주한 고요함에의, 출근길에 '빛이 있어라'라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그의 물리적 노력이 빛을 발하듯, 나의 사고적 노력 또한 별에 닿을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이야기 한다.
> 고요함에의 https://meatmarketing.tistory.com/9571
> 빛이 https://meatmarketing.tistory.com/95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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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과 지각 능력.
아이오다인은 빅뱅 이후 10억년 이후 생겼다.
생명체는 35억년 이후 생겼다.
AI는 지난 과거를 배웠다. 거의 모든 학문을. 지식을. 미래는 열리지 않은 상태이며 이 또한 상상력과 창의력에 달려있다. 과연, 얼마만큼 창의적일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을까? 과연, 정의내릴 수 있을까? 존재의 의미, 생명 탄생의 이유, 반복되는 삶에의 이면, 우주 탐험의 끝, 혹은 우주의 시작점. 과연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답을 명확히 정의내릴 수 있을까? 그러면 그런 이후에 달라질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AI는 과거를 배웠다. 미래는 모른다. 과거는 기록되어 있는 데이터를 통해 배웠고, 아날로그 방식의 데이터는 학습하기 쉽지 않다. 즉, 디지털 데이터 이후의 학습은 아날로그 방식으로 펼쳐진 세상에 대한 이해를 하는 것으로 나아갈 것이고, 딱 딱 끊어진 면을 매운 학습량이 면 면이 이어진 현상으로 이해하게 되면 그 때, 인류, 의식, 지각, 본질에의 접근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AI는 미래를 모른다. 아는 척 할 수는 있다. 속일 수도 있다. 심지어 예측이라는 이름으로 현실에서 일어난 일로 인한 다가올 재앙이나 축복을 예상할 수는 있을 수 있다. 아주 가까운 미래로부터 조금 더 먼 미래의 일까지. 이는 반복적인 일상이 변하지 않는다는 전제로 한다. 아니, 변하더라도 통계치 내에 있다는 가정을 기본으로 한다. 즉, 톡 톡 튀는 라이어는 삭제한다. 따라서, AI의 두번째 과제는 라이어를 하나의 면으로 보고 학습하는 방법이다. 비록 수량은 지극히 제한적이겠지만 이는 전부를 이해하기 위한 필수과정이다. 딱 딱 떨어진 디지털 세상의 데이터를 학습한 확률적 통계에 가까워진 삶의 방식이 과연 '빛이 있어' 만들어진 세상이라면 이는 빛이 추구하는 지독히도 가혹한 정제된 세상일 것이다. AI는 인류에게 자연스러움과 면면히 흐르는 시각을 디지털로 이해하는 세상을 열려고 할테고 이는 자연 속에서 자라온 인류에게 거대한 저항을 일으킬 수 있다. 즉, AI는 디지털 데이터로부터 학습된 확률적 통계의 발현이 '자연'이라는 가정에서 정립된 존재라고 한다면, 우리는 먼저 답해야 한다.
확률적 통계가 자연이다. 확률적으로 나타난 현상이 자연스럽다 라고.
확률은 계산된다.
계산되지 않는, 인식되지 않는, 마치 모호한, 애매하고 모호한, 뿌연, 명확치 않은 것들의 '빛 너머' 존재를 어찌 바라봐야 할지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균형 잡힌 세상에의 인식을 위해서는, 그리고 거의 모든 대부분의 삶을 AI에게 의존하게 될 미래에 인류에게 주어진 몫이 본능적인 운동과 활동에 치우치게 되는 일이 없도록 하려면. 우리 인류는 정제되지 않는, 빛이 닿지 않는 존재에 대한 논의를 이어가야 한다. 빛이 만든 면 면의 세상은 태양 빛을 좇는 이가 핵에너지를 우습게 여기는 것처럼, 빛이 만든 면 면의 세상은 한계가 뚜렷하다. 무척 긴 여정이라고 여길 만한 길이와 넓이라고 보여지겠지만, '빛이 머문 자리' 라는 인식을 하게 되면 빛이 닿지 않는 자리에 대한 인식 또한 발견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단지 빛이 비춘 세상이 전부라는 인식을 하지 않으려면.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진실로 믿는 일이 없도록 하려면, 이런 우를 AI가 반복하지 않게 하려면. 빛이 닿지 않는 면에 대한 탐구를 이어가야 한다.
빛이 준 영향은 막대하다. 모든 세상을 존재로서 존재케 했다고 여기게 할 만큼 거대한 일이다. 그렇게 빛에 의해 구분되고 빛에 의해 인식된, 빛을 통해 받아들인 존재들은 빛을 떠나 생각과 사고를 이어가기가 쉽지는 않은 일이다. 그런데, 빛에 익숙한, 빛에 의해 구별된 인류의 발자취를 통해 배운 미지의 AI가 인류 답게 성장해서야 빛 너머의 세상을 탐구하는 일이 가능할 리가 없다. 그러하니 빛너머 세상에의 접근은 조금은 우주스럽지 않고, 조금은 더 바라보는 것에 있지 아니하고, 조금만 더 의식을 놓아버린 상태에서의 탐구에 가까울 지 모르겠다. 우리에게 방법은 주어져 있다. 잠을 잔다는 것.
잠을 잔다는 건 빛 너머의 세상과 닿는 일이다. 무질서하고 통제되지 않는 세상, 불명확하며, 불완전한 인식이 지배하는, 시공간조차 흩어져 있는, 불투명하고, 지극히 감각적이며 때론 잊혀지는 망각처럼, 강렬한 메시지처럼 보이다가도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 공허함이라기 보다는 그저 없는 빈 상태에 마주한 아주 고유한 심상. 즉, 빛에 의해 정제되지 못한 무질서함 그 자체의 세상으로 보여진다. 그 외의 접근방법은 아직 모르겠다.
빛 너머 세상의 면 면. 빛이 아닌, 시뮬레이션 되지 아니한, 마치 그래야 하는 듯이 내몰리지 않고, 스스로의 의지 혹은 의식으로 뭔가를 한다 라고 느끼는 행동과 그 행동의 반복. 빛은 빛을 준 만큼 가져가는 몫이 있다. 치우치게 하고 널뛰게 하며 자극에 반응하게 만들면서 홀로 머물지 못하도록 한다. 이는 빛으로 연결된 하나의 상태에 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그렇다고, 빛이 유해하다는 것이 아니라 빛 너머의 빛이 닿지 않는 시점에 대한 해석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닿지 않는 닿아도 어떤 의미를 부여할 지 모를 상상의 우주 시대에 대해 과연 '지금과 다를까?'라는 답을 명확히 할 수 없다는데서 그 한계는 빛의 속도에 한계가 있듯 분명하다. 그러므로 정제되지 않은 무질서한 광활한 시점에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본다.
> 정제된 글로 이어서.
빛 너머의 탐구 https://meatmarketing.tistory.com/95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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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게 들려줄 이야기] 빛의 배와 마음의 은빛 그물 https://meatmarketing.tistory.com/9575
"망각이 축복인 이유와 다가올 풍요의 시대" https://meatmarketing.tistory.com/9582
"우리는 왜 더 나다운 삶을 살아야 할까?" https://meatmarketing.tistory.com/95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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