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벚꽃 구경 갈까?"
어머니가 입원한 병원에서 나서며 물었다. 피곤하면 가지 않아도 괜찮다고 덧붙였지만, 그건 선택이 아니었다. 가능하면 가고 싶다는 간절한 표현이었다.
그래서 갔다.

조치원 홈플러스 인근 벚꽃 길. 여러 차례 함께 온 곳이다. 웅성거리는 사람들 속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들어갔다. 꽃 내음이 났다. 번짐 현상을 피하려 애쓰며 셔터를 눌렀다. 생각보다 훨씬 잘 나왔다.

저 멀리 보름달이 떠 있었다. 담고 싶었다. 담았다.





벚꽃은 아직 만개하지 않았다. 아쉬웠다. 그래도 괜찮았다. 짧은 꽃길 산책을 뒤로 하고 집으로 향했다.

지코바를 시켜놓고 소맥을 마셨다.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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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개하지 않아도
벚꽃은 아직 덜 피어 있었다.
길 양쪽으로 늘어선 나무들이 꽃을 품은 채 조금만 더, 조금만 더를 되뇌는 것 같았고, 우리는 그 사이를 걸었다. 서두르지 않고, 딱히 목적지도 없이. 손을 잡으면 손이 거기 있다는 게 느껴지고, 팔짱을 끼면 어깨가 닿아 있다는 게 느껴지는, 그런 걸음이었다.
"올해는 좀 늦나봐."
토요일 비가 올거라는 일기 예보를 듣고 벚꽃 잎이 다 떨어질 새라 서둘렀던 감이 있긴 했다. 목요일 저녁이었으니.
누가 먼저 말했는지도 모른다. 꽃보다 서로를 더 자주 바라보며, 오는 길에 있었던 일, 요즘 마음에 걸리는 것들, 별것 아닌 이야기들을 주고받았다. 가지 끝마다 봉오리가 맺혀 있었고, 그것들은 아직 터지지 않은 말처럼 부풀어 있었다.
아쉬웠냐고 하면, 아쉬웠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아쉬움이 나쁘지 않았다. 만개한 꽃 앞에서는 그저 감탄하고 마는데, 덜 핀 꽃 앞에서는 기다리게 된다. 더 오고 싶어진다. 좀 더 간절해진다. 그 간절함이 오히려 기분을 한 뼘쯤 들어올렸다.
집에 돌아오는 길이 그리 짧지 않았음에도, 돌아오고 싶지 않다고 느꼈다. 오고 감의 고됨보다, 그 사이에 끼어 있던 짧은 순간이 훨씬 컸기 때문이다.
벚꽃은 아직 덜 피어 있었다. 그래도 충분히 아름다웠다. 아니, 어쩌면 덜 피었기 때문에 더 아름다웠는지도 모른다. 꽃이 아니라 기다림이, 기다림이 아니라 함께였던 것이 — 오늘을 오늘답게 만들어줬으니까. 김성호 w/ So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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