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거를 보든 저거를 보든 어제의 달일까? 달일까? 다를까? 다르지. 달라야 하고.
오늘 내 삶이 의미가 있으려면, 달. 저 달은 달빛이지. 지금 내 눈에 보이는 것들은 모두 비추어진 거울과 같지.
시냇물 소리. 시냇물의 고고한 움직임.
유난히 별들이 잘 보이는 새벽. 달빛이 비추고, 달빛이 시냇물에 반사되고, 전등 불빛이 여기저기 거리를 환하게 비추고 있는 시각. 해나와 예티랑 걷고 있고 M브릿지 아래 다리 밑을 지나고 있지. 하얗게(새똥) 여기저기 흩어져서 지저분한 다리 밑은 거꾸로 본다면 새들의 보금자리가 되었고, 그럴 때 회피하게 되는 구간임에도 오늘은 직진. 특별한 이유 따윈 없다.
비교하는 감정이 사라지지 않고 있는 지금, 부러움은 아니고, 나태함 또한 아니고, 그렇다고 포기냐 회피냐 그저 내려놓았을 뿐. 기준을 바꿨을 뿐. 마음먹기에 달렸다 라는 말이 있듯 달이 온전한 달이 아닌 달빛에 지나지 않고 시냇물이 달빛을 반사한다 하더래도 빛 또한 아니 시냇물에 형상 또한 비추어진 모습에 지나지 않는다면 내가 진정 보고 있는 시냇물의 모습, 혹은 지금 나의 모습, 내가 생각하는 상상 이상으로 이상하지 않을까? ...(1)
만들어진 도시.
모든 것이 만들어져 있지. 기획을 했고 설계를 하여 설계 대로 만들어 냈다. 그 안에 살아가며 꾸미는 것 또한 일정한 틀에서 안정감 있게 오늘도 산책을 하고 산책에 집중할 수 있고.
"뛰어? 다시 한 번. 뛸까?"
나오면 이렇게 좋은 것을.... (2)
(출근길 운전 중에)
다르지 않다. 다르지 않다.
그러니까 어제 그런 얘기를 했잖아. 나아가는 마음을 버렸다. 나아가고자 하는 마음을 버렸다. https://meatmarketing.tistory.com/5826
나아간다. 나아간다. 시간이 흐르는 지금 이 시대에는 멈춰 있어도 나아가는 것이지. 앞으로 가든 뒤로? 우리가 얘기하는 뒤로 가진 않겠지. 앞으로 나아가는 거지. 앞으로 가는 거야. 나아간다 라는 의미는 왠지 노력과 열정, 자기의 의지 이런 것들이 담겨있는 듯한 느낌이 들긴 하겠지만, 나아간다. 의지를 담든 담지않든 우리는 계속 나아가는 거지. 차를 돌려 뒤돌아간다고 손치더래도 그것 또한 나아가는 거지. 먼 위에서 보면, 점의 움직임처럼 뺑글뱅글 돌진 모르겠지만, 우선은 나아간다, 앞으로 간다, 왜 뒤로 가지 않는 걸까 라는 의문을 갖고 의문을 풀기 위해 노력은 하고 있지. 왜 나아가면서 하나하나의 연속으로 갈까? 점프는 하지 못할까? 이런 의문을 갖고 연구를 하는 사람도 있지.
(미나리즙을 먹었다. 까먹었다.)
나아간다 라는 얘기를 하다가 머릿속에는 다른 관점 그러니까 절대불변의 법칙이라고 얘기하는 건 아니라 보편타당하다 혹은 생각의 전환을 해야 하지만 생각의 전환을 한다는 얘기는 그 생각이 기초가 되는 그 토대가 있다는 것 아니겠어?
그 토대가 나아간다, 앞으로 간다 처럼 시간은 흘러간다 라는 개념처럼 나아간다. 뭐 나아간다 라는 말이 좀 거시기하다면 앞으로 간다? 앞으로 간다가 더 웃기지. 뒤로 간다도 있으니까. 나아간다. 간다. 멈춰 세운다. 뭐 말이 장난 같애. 아무튼 이게 일종의 언어유희에 가깝지.
자 아무튼 의도하는 바는 나아간다 그리고 또 하나는 반복한다.
이 두 가지 키워드가 이 세상에 기본적인 토대. 절대 불변에 어떤 원칙이라고는 하지 못하겠지만 이제 양자역학이 어쩌고저쩌고 우주가 어쩌구저쩌구 하는 시대에 노이즈가 끼듯이, 지금 운전 중에 있고 핸들을 잡고 있어야 해. 아직은 자율 주행이 상용화되지 않았어. 그래서 운전대를 잡고 있어야 돼. 왼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오른손으로는 녹음 어플을 켜고 핸드폰을 들고 있어야 돼. 그런데 (차 창에) 서리가 낀단 말이야. 뿌옇게 그럼 어떻게 해야 되겠어. 녹음을 멈추고 버튼을 누르고 26도의 공기가 불어 나오게 해야 되겠지. 그걸 한 거야. 왜 이런 얘기를 하냐? 똑같다 이거지.
나아간다. 반복한다. 이 두 가지의 어떤 기본 토대가 지금 얘기하듯이 김을 불어내고 김은 없애. 아니, 공기를 불어내고 김을 없애. 서리 꼈다라는 서리를 없애. 이 일련의 일들이 뭐 자연스러움 속에 꽉 짜여진 어떤 틀 속에 춥고, 온도 차이가 나면 김이 서린다. 김이 서리면 김을 없애기 위해서 찬 공기 밖의 공기와 똑같이 만들거나, 밖의 공기에 무관하게 내부 온도를 뜨겁게 유지하거나 뭐 여러 가지 그런 것들을 자연의 현상들을 통해 밝혀냈다 라고 봐야 되겠지. 발명 과학 기술 이런 것들은 사실은 토대는 자연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로 찾았다고 봐야 하겠지.
(미나리 한 모금을 먹고) 또 그런 생각이 갑자기 드네. 이렇게 잡생각이 많아. 원래 사람이 희한해. 잡스럽다 이 말이지. 산책길에서 문득 그른 생각이 든 거야. 이동 단속을 당했단 말야. 교통 위반 딱지가 날라올 거야. 그렇다면 이동 단속을 하는 이유는 뭐지? 수입. 노골적으로 본다면 경찰의 수입, 수입원으로서의 재원. 만약에 그게 아니라, 정말 교통안전을 위한 거라면 사실은 뭐 삼각대를 세워두고 어디서 찍든 무슨 상관이 있겠어. 경고의 의미라면 아무 문제가 없지. 왜 그걸 받아든 사람이 경고의 의미로 받아들인다면.
그런데 이동 단속은 경고장이 날라온다 라는 운전자 인식이 있다면 그냥 무시하고 말겠지.
그러니까 내가 주장하려고 하는 건, 이동 단속을 하려고 애쓰지 말고, 우리는 꽉 짜여진 것에 가는 거지. 구간 단속이라는 게 나왔고 구간 단속을 촘촘히 짜면 짤수록 운전자에게는 스트레스. 안전이란 이름 안에 가둬 놓는 거지. 그러니까 이 구간단속도 일정 범위 타당성을 보고 하는 거잖아. 만약 그게 아니라면 그냥 자동차 속도에 제한을 두면 돼. 어느 이상 올라가지 말라고. 어느 구간에 가면 일정 속도 이상 못 밟아도 안 나가게 악셀레더만 엥~ 하는거지. 그런 기술이 없다고? 아니 있어.
지금도 충분히 구현 가능하다는 거지. 근데 자 여기서는 큰 문제가 생겨 구간단속이라는 건 그 구간에서는 너무 위험하니 속도에 제한을 두겠다 라고 했을 때 구간에 대한 그 위치, 지역, 여건에 대한 게 깔려 있어. 그래서 그 여건에 들어가는 사람 에게 달려있지. 그럼 안 가면 되지 라고 하는 어떤 부분들이 깔려있는 거야. 근데 만약에 이게 아니라, 자동차 생산에 대한 속도 제한을 어느 일정 구간별로 두겠다. 자 그렇다면 운전자들은 아니면 차를 사야 하는, 사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엄청난 저항을 할 거야.
왜 제한하느냐? 왜 맘대로 못하게 하느냐? 그게 공익의 어떤 목적이 있느냐? 이건 내 물건이다. 어쩌고저쩌고 해서 불법이 판을 칠 거야. 불법 위법. 아무튼 어떤 말일지 몰라도 속도 제한을 풀고 다니려고 노력하겠지. 그럼 또 단속을 하고 이게 거꾸로 흘러간다는 거야. 자 그렇다면 이게 어떤 과정이야? 길고 긴 구간으로 본다면 기간으로 본다면 뭐가 달라지냐고 기간으로 본다면 사실은 자율주행이 됐어. 난 운전대를 잡지 않아. 차는 어디를 어떻게 가 그러면 이 차가 가는 속도에 대해서는 제한을 뒀다기 보다 어느 구간의 위험 요소들이 파악이 된다면 파악을 할 수 있게 사람이 있다거나 어떤 위험 발생 요인 어디서 급격하게 급하게 다가오는 어떤 차량들이 있다거나 어떤 상황들을 실시간 모니터링하면서 이 차는 운행을 할 것이고. 신호조차 유기적으로 움직일 거라고 봐. 이 차의 어떤 긴급 버튼을 눌렀을 때에는 모든 신호 체계가 올 스톱 되거나 뻥 뚫어 뚫려주겠지. 그리고 자율주행을 하는 어떤 차들이 우회해서 갈 수 있도록 대기하거나 우회할 수 있도록 할 거 같애. 그런 변화가 생기는 거야. 자 그런 변화 속에서 구간 단속이든 이동 단속이든 이런 노력들이 안전을 위한다는 명목하에 이제 누군가의 수입이 되고 있고 어쨌든 자 그런 면에서 자율 주행이 시행이 됐어. 그러면 운전자는 이제 손을 놓지. 차에 대해서는 사실 이동에 대한 수단이라고 밖에 생각하지 않겠지. 지금의 기차나 항공기나 이게 내꺼라고 보지 않거든. 자 그렇다면 뭐가 달라지지? 이게 내 문제가 아니야. 나는 어느 때 어디 갈 때 지하철의 속도를 확인하는 거지. 내가 지하철 속도를 늘리거나 줄이려고 하지 않잖아. 어련히 알아서 잘해주길 기대하는 거지. 그러면 똑같아진다는 거지. 자율주행이 내꺼일 이유가 있나? 어디로 어떻게 가든 대리운전을 하든 콜택시를 하든 어떤 의미의 말이 달라질 용어들이 있겠지만, 소유를 굳이 내가 해야 되나?
자, 중앙 통제 센터에서, 교통안전 중앙통제센터에서 모든 걸 관할하겠지. 자율 주행이든 대중교통이란 의미가 있나요?
없어질 거 같애. 의미가 없거든. 그러면 이 이동하는 사람은 혼자 갈 것이냐, 여럿이 갈 것이냐, 동승을 해도 문제가 없겠느냐, 어떤 이런 프라이버시에 대한 그런 것들을 좀 더 보강을 해서 온전히 헤드셋을 쓰고 있든, 캡슐 안에 들어가든, 어떤 상황에 게임을 하고 있든, 뭔가 조작을 하든, 뭘 하든지 간에 잠을 자든 이동이란 시간에 그렇게 보호받는 거지.
물론 이동이라는 시간조차 사실은 길고 더 길게 본다면 거주한다, 머문다 라는 개념조차 깨져버릴 거 같애. 이동이라는 건 속도감이 있게 어딘가를 가는 데 있어서의 안전만 확보가 된다면 안전 그리고 그 공간에 있는 사람의 어떤 활동 범위가 충분히 갇혀있지 않다라고 여긴다면, 가령 뭐 가상 게임을 할 때 캡슐 안에 들어가 있다거나, 뭐 좀 더 강하게 표현한다면, 내가 여기에서 뭔가를 조작하거나 활동하는 데 있어서의 범주가 누군가와 티 타임을 하거나 얘기를 하거나 할 때 누군가가 내 옆에 있거나 신체적인 접촉이 아니면 뭔가를 소통한다거나 얘기한다라는 관점으로 본다면 사실은 거리감각, 이동과 거주의 개념은 사라질 거야.
'어디 어느 순간 어느 자리에서도 편히 쉴 수 있습니다' 라는 모토가 나올 거라고. 어느 곳에서나 어느 순간이거나 당신은 편안히 쉴 자유가 있습니다 라고 할 거라고. 이동 중이거나 머물거나 집이 있거나 없거나 어딜 가거나 무료하거나 재미없거나 즐거움을 찾거나 뭔가 원하고 원하거나 이런 모든 순간 상황에 대해서 원하면 제시를 받을 것이고. 원하지 않으면 그냥 쉬면 되는 세상이 열릴 거라는 거지. 뭐 그래도 할 게 있다고? 물론 할 게 있지.
지구의 나이. 모든 건 생성되면 소멸한다. 생성과 소멸이 지구 관점으로 내 인생을 하나의 관점으로 본다면 짧은 구간으로 볼 수 있겠고, 단편으로 보겠지. 편린. 단편. 찰나. 근데 길고 긴 어떤 인간의 역사나 지구의 역사, 우주의 역사로 본다면 이어지고 이어져서 어딘가에 붙고 붙여서 붙여지고 다시 만들어지고 조합이 되네. 긴긴 흐름에 물줄기 속에 콸콸 거센 격랑의 움직이는 시냇물. 강으로 흘러 바다로 갔을 때 그 거친 흐름 속에 속한 물방울 방울에 지나지 않는다. 바다에 갔어. 알갱이가 그 알갱이 하나하나에 정보가 홀로 존재한다라고 볼 것이냐? 있다거나 없다라고 볼 것인가?
age of the earth. Everything is destroyed when it is created. If creation and extinction were to see my life from the perspective of the earth, I would see it as a short section, and I would see it as a short story. piece. snippet. moment. However, if you look at the long history of any human being, the history of the earth, or the history of the universe, it is connected and connected, attached somewhere, pasted, remade, and combined. A moving brook with a roaring roar in the stream in a long stream. When it flows into the river and goes to the sea, it is nothing more than a drop of water belonging to the rough current. went to the sea Would you consider a grain to be that the information exists alone in each grain? Will you see it there or not?
사라진 정보, 합쳐진 정보, 결합이 되고, 만들어지고 다시 다시 시작해 나의 형상이든 너의 형상이든 우리의 형상이든 바위든 바위 또한 바람에 깎이는 정도를 혹은 자리에 있어 움직여지는 움직이게 되는 그런 어떤 계측 혹은 정보, 어떠한 정보든 하찮다 라는 범주는 없다. 뭘 하든 생각이라는 사념, 어떤 추론, 이성, 이런 것들이 필요한 이유는 보기 위한 건 좀 더 기록적인 것. 좀 더 촘촘하게 짜임새 있게 좀 더 현상을 바라보기 위한 것. 이론과 법칙과 가설들이 생기는 이유들도 다 그런 면에서 그리고 족적을 남기고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죽었다. 근데 위인들이 과연 죽었을까? 면면히 이어진다. 정보들이 사람의 정보 누군가의 정보 인물의 정보뿐만 아니라 인물이 해왔던 우주라는 탐험에 대한 탐구에 대한 멈추지 않고 계속 이어진다라는 거지. 재평가를 받고 면만히 이어지는 거야.
Disappeared information, merged information, combined, created, and started over There is no category of good or bad. No matter what you do, the thought of thinking, a certain reasoning, reason, the reason why you need these things is to see more records. It is to look at the phenomenon more closely and in a more structured way. The reasons why theories, laws, and hypotheses arise are all dead in that respect and leaving traces, which we commonly talk about. But did the greats really die? it goes smoothly It means that the information continues without stopping for the exploration of the universe that the person has been doing, as well as the person's information, someone's information, and the person's information. It will be re-evaluated and continue unabated.
큰 거대한 물줄기로 봤을 때 어떤 사업이라는 것들이 그걸 하자고 했을 때 계속 부풀려지고 커지면서 탄탄해지고, 짜임새 있게 생성되겠지. 당연히 물론 스스로 정리할 줄도 알아야하겠고. 가지를 쳐내고 온전히 근원에 대한 본질, 본질에 대한 의미를 찾아야 되겠지.
Looking at it as a large, huge stream, when certain businesses are asked to do it, it will continue to inflate, grow, become solid, and will be created in a structured way. Of course, you also need to know how to organize yourself. You have to cut off the branches and find the essence of the source and the meaning of the essence.
이력제가 질병 방역의 어떤 본래 목적이라기보다는 활용 관점으로 넘어가 있듯이 이왕 한 거 버릴 수 없잖아. 정보라는 어떤 측면에서 볼 때 활용 관점에서 볼 때 활용이라는 개념이 들어가는 순간 이미 전환된 거라고 봐야지. 아깝잖아. 만들기가 어렵지. 만들어진 걸 없앤다? 이건 좀 오히려 좀 더 빅데이터 관점에 좀 더 나아가는 측면에 그 개개인의 어떤 자유 의지나 어떤 의욕, 이런 거를 속박한다는 개념이 아니라 좀 더 우리가 공적인 관점에서의 빅데이터. 보다 큰 도도한 흐름 속에 개개인의 알갱이의 정보로 남겨두지 않는 측면에서 접근하는 노력들로 본다면 뭐 물론 지금은 구축하는 데 더 힘을 쓰고 있는 거긴 한데, 또 하나의 또 반론은 그래서 뭐가 달라졌는데 할 수 있겠지만, 그런데 연구자들은 항상 요구하지. 뭔가를 보려면 좀 더 현실에 현실적인 데이터들이 필요하다고. 그러니까 어떤 현실에 대한 데이터만 제대로 제공이 된다면 연구할 사람은 넘치고 넘쳤지. 못 보는 게 아니라, 볼 수 있는 도구를 준다면 그걸 못하겠어 이런 관점으로 보자는 거지.
그게 과연 피드백 됐을 때 좋고 나쁘냐, 그냥 내버려 둬 라는 관점으로 본다면 다 쓸데없는 면 또한 있겠지만, 아니 그래 내버려뒀더니 여전히 상황이나 처지가 아닌거야. 밀사 라든지 돈사에 들어가 봐라 눈을 뜰 수 있느냐? 코를 벌렁일 수 있느냐? 이런 것조차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해결을 못하는 거야? 안 하는 거야?
안 하는 거라고 보는 거지. 못하는 게 아니라. 할 이유를 못 찾는 거지. 돈은 더 투입되는 데 있어서 망할 수 있으니까.
끊임없이 투입을 뭔들 못하겠어. 할려고 하면, 하지. 내 그럴만한 의지나 열정, 그걸 이루어나갈 때 쟁취할 고고한 흐름 속에 어떤 본질에 가깝고 더불어 살아가는 동물 복지에 근접한다면, 누군가 인정이 정말 감탄사를 일으키고 단지 돈의 이유가 아니라 정말 본질에 가깝다라는 사람들에 대한 칭찬과 존경, 그리고 존중의 의미를 담아야 된다라고 볼 때 인생 뭐 있어 라고 볼 때의 관점으로 본다면, 정말 돈은 흘러가는 그 고고한 격랑 넘치는 물줄기를 일으키는 낚싯바늘에 지나지 않지.
혹은 돈이라는 건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 내기 위하고, 흘러가게 하기 위한 엄청난 발명품임에는 분명한데, 본질이 아닌 것 또한 맞잖아. 그냥 껍데기라구.
시냇물에 비친 달빛 만도 못하다고 내가 본 달조차 반사된 빛인데 그 반사된 빛에 비친 시냇물에 달빛이 얼마나 가치 있겠어?
Even the moon I saw is not as good as the moonlight reflected in the stream. It is a reflected light. How valuable is the moonlight in the stream reflected in the reflected light?
근데 우리는 그 달빛을 보고 환희에 젖지. 너라면 그렇게 살고 싶니? 대화라는 관점으로 접근했을 때 너라면 그렇게 죽고 싶니 라는 관점으로 접근했을 때, 본질에 가깝다고 본다. 좀 더 나라면 아니야. 난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 어딘가에 확 처박혀가지고 그래 공통의 목표, 공통의 목적, 뭔가를 이루려고 노력하는 나름대로의 열정과 노력을 다하겠지. 그 안에서 끼리끼리 좀 더 복돋으면서 나아가려고 하겠지. 그게 목적이야. 본래 목적의 취지에 맞다라고 보겠지.
But we see the moonlight and get wet with joy. Would you like to live like that? When approached from the point of view of conversation, when approached from the point of view of “would you want to die like that?”, I think it is close to the essence. If it's a little more country, it's not. I don't want to live like that, I'm stuck somewhere. Inside of it, we will try to move forward while encouraging each other a little more. that's the purpose It seems to fit the purpose of the original purpose.
그럼 이력제가 데이터가 되어 활용범주로 넘어가 다시 피드백 한다라는 달콤한 열매처럼 2008년. 과거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앞으로 만들어가는 세상의 어떤 흐름, 좀 더 정확한 세상을 보기 위한 도구.
Then, 2008 is like the sweet fruit that the resume system becomes data and goes to the category of utilization and gives feedback again. A tool to see a certain flow of the world from the past to the present, a more accurate world.
(미나리를 많이 먹었다. 일부러 먹었다.) 잠시 생각에 잠겼다고 봐야 되겠지.
내가 나를 바로 세운다.
나아간다. 반복한다. 거개 덧붙이는 말이 손질한다. 일종의 가지치고 솎아낸다 라는 말이 될 수도 있고, 재단한다 라고 할 수 있겠지.
꾸민다, 편집한다라는 느낌보다 가지치기, 섞아낸다, 그게 맞다고 본다. 나약한 심성, 합리화하는 매순간, 일어나기 싫어할 때 드는 어떤 생각들은 나 자신을 옭아매지. 충분히 그럴 수 있어 라고 내게 속삭이지. 그래 오늘은, 오늘 정도는, 오늘은 쉬어도 좋아 라는 말로 속삭잊. 그럼에도 에이씨 그냥 일어나! 이게 몸을 일으키게 하고 움직이게 한다. 다 왔다. See U. 성호.
(사무실에 도착해서) 정리한다.
나아간다와 반복한다 라는 개념을 내가 아닌 우리, 혹은 우주 만물의 흐름에서 봐라보니 용어를 바꾸게 된다.
나아간다 -> 흘러간다.
반복한다 -> 반복된다.
여기에 기술을 더한다.
가지친다.
수용한다.
기준을 바꾼다.
중심을 내게 둔다.
그러면 된다. 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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